나와 같이하는 것들

21. 꽃부리의 이야기 (2020. 9월 30일)

by 임선영

아침부터 오늘은 분주하다.

몇 년 동안 핑계 아닌 핑계로 잘 살피지 못한 베란다에 꽃들이 나를 부른다.

"이 답답함과 괴로움을 말로 할 수 없으니 어찌하오리까, 물만 먹고는 못 살겠어요."

정신을 차리고 서서히 살펴보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익명 속에 숨어서 자기 속내 드러낸

생명체들 아픈 감정이 전염되고 화분 속에 꽉 찬 뿌리들이 뾰족이 고객을 내밀며

"살려주세요" 그냥 절규다. 오늘은 제발 갈아주자, 흙을 샀다.

분갈이를 하는 과정에 뽑힌 뿌리가 한 대야이다. 물 먹고 뭉치여 살자고 얽히고설켜

살아남자고 애쓴 흔적을 가위로 자르며 그냥 가슴 뭉클하다.

그들 살의 일부를 잘라내며 "정말 미안하구나, 내 이리 게을러 너희들 무척이나 아팠겠구나"

말을 알아듯는듯 털털 털어내는 붙어있는 것들이 가벼운지 쫑긋 이파리가 갑자기 진초록으로

변한 듯하다. 흙을 갈아 꼭꼭 눌러주고 물을 주며 닦아주는 잎을 보며 "미안해 시원하지"

무언으로 고맙다 인사하는 듯 한 생명 자리 마련 해 준 듯 흐뭇하다.

나와 이 자연과 같이하는 인연들 무정물조차도 갈고닦아야 오래오래 내 곁에서 빛을 내주듯이

하물며 숨을 쉬는 유정물이야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겠던가.

내 집 베란다 한쪽 구석을 찾아 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주는 물을 받아먹으며 그 공을 갚기 위해

있는 힘을 다 해 피워내는 꽃의 향연, 베란다를 열면 은은히 풍겨오는 그 향기 어느 귀한 선비의

무언으로 들려주는 그 위엄이려니... 내 어찌 저 한 생명체의 난 보다 잘났다 뽑 낼 수 있으리오.

좁은 구석에서 뿌리며 적셔주는 물만 마시고 피워내는 고귀한 그 꽃 향기를 기억해 내며 말 못 하는

식물 앞에 미안하다는 말을 하며 쓸어주고 닦아준다.

말없이 우리에게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언으로 들려주는 자리에서 보잘것없는

자신을 추스르지 않을 수 없다. 세상천지에 무언 무착의 스승이 꽉 차 있다. 꾸밈없는 자연 그대로의

나 자신을 기억, 끄집어 내 보며 반성의 시간을 가져본다.

화분 갈이 후 뿌려지는 물 바람 따라 살랑살랑 고맙다 인사하는 난 이파리들 바라다보기만 해도

오늘은 그저 포근하고 흐뭇하다.

왜 그리 마음이 시원하고 홀가분한지 그저 개운하다는 말은 이때 써먹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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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들 상존하지 않는 인연들 없던가.

무정물이라고 그냥 지나치는 것들이 주는 흐뭇한 느낌을 안겨주는 일 들은 얼마나 많던가?

외조자가 운동 삼아 뭐 살 거 없나 시장을 돌다 보면 한쪽 구석에서 팔다 안 팔려서 쪼그라져 누가 감히

사가랴 하는 물건들이 많다 한다.

오늘도 선물하고 차례 지낼 과일을 장만해 가지고 지나가는데 한 아주머니가 포도 4 상자를 쌓아 놓고

내일이면 추석인데 오늘 안 팔리면 버릴 수도 없는 물건이니 싸게 떨이로 드릴 테니 가져가라고 쪼글쪼글

해진 포도를 내밀어서 안쓰러워서 사 왔다고 집에 갔다 부린다.

열어보니 정말 쪼글쪼글해서 먹기는 그렇고 짬이나 만들자 해서 큰 양푼에 한가득 따 놓았다.

추석 차례 준비도 바쁜데 다른 일거리를 가져온 남편을 탓하기 전에 시장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아주머니가 가여워 사 왔다는 그 말이 가슴에 와닿아 여기 까지는 도와줄 것이니 오늘 추석 준비로

너무 피곤하여 일찍 자야겠기에 나머지는 외조자에게 맡기고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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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일찍 일어나 식탁 위에를 보니 이렇게 아름다운 선물이 추석 날을 맑히고 있었다.

6병의 포도잼 밤새 날을 새 가며 만들어 놓은 정성이 정을 뚝뚝 떨구며 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외조자의 코 고는 소리가 달콤한 것은 그의 사랑의 결정체이리라.

또 하나 장만해 놓아 진 흐뭇함을 어찌 표현해야 할까.

" 당신은 주고 싶은 사람부터 생각나지?" 하며 씽긋 웃는 외조자와 맞이하는 추석 아침의 화려함은

돈 주고는 못 사는 큰 행운이려니.... 얼씨구 멋진 삶을 터 주는 인연 당신도 나에게는 바로 부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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