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3. 꽃불의 이야기 < 2022년 10월 3일>
물든 나뭇잎 아래서 / 임 선영
지나온 날들이 걸쳐있는 나뭇가지
거기엔 풋풋한 어리광도 있었고
산들산들 어리광 떨든 연둣빛도 있었지
정열을 지우지 못해 꽃 피워 설레게 하던 너
이제 무엇에 지쳐 축 처진체
황혼으로 물들어 애간장을 녹이는가
황혼으로 물든 자네의 모습에 같이하며
슬픈 마음을 헤아릴 수 없구나.
황혼 길을 멋지게 걸으라 물들어 있는가
슬픈 듯 고운 그 길에 들어서 보니
가진 것도 품은 것도 다 부질없으니 어이할꼬
길기만 한 것 같던 일생도
잠깐 잠들다 눈 뜬 듯 찰나인 것을
조금 알 것 같아 정신 차리고 보니
이렇게 황혼빛이 가득한 길이 고나
붉게 물든 황혼 길
티 없이 말없이 남은 생
살다가라 일러오며
탐욕도 성냄도 어이타 부질없으니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같이 살다 가라 하네
가진 것 하나 둘 털고 버리니
발아래 수북한 색 고운 낙엽
바스락 바스락 낮은 곳에서 부서지는 하모니
애달픈 인생 떠나는 장단 소리
위에서 물들다 지며 가는 소리
하늘과 친구 하며 수 놓다
땅에서도 곱게 물들다
흙으로
돌아가는 순리
말없이 받아들이는 한 생
너와 나도 과거도 돌아 올 미래도
생각하지 않고 다만 오늘 하루
곱게 물들다 가야 하리라.
푸른 하늘 아래 시름시름 앓고 있는 나무처럼
산다는 것이 뭘까 하고 문득 중얼거릴 때
나뭇잎 지듯 우리 마음도 우수수 떨어져 가랑잎으로 구르다 지겠지.
단풍은 우릴 보고 이리 곱게 물들며 살다 가라 하고
가을바람은 날 보고 이렇게 부드럽게 살랑대다 가라 하네
찬란한 석양이 함께 물들다 보면 그 환희 꿈만 같아
지는 것이 피는것 같이 아름답게 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