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꽃부리의 이야기 (2020. 11. 4.)
아침잠이 깨여 누워서 옆지기 잠자는 모습을 바라본다.
50여 년 아무 탈 없이 한 가정을 치다꺼리하며 부지런히, 검소히
살아오느라 얼마나 풍진 세상을 어찌 살아왔을까 생각하니
갑자기 측은지심이 발동을 한다.
부지런히 일어나서 밥을 하고 반찬을 챙기고, 커피와 고구마를 굽고
소풍 갈 준비를 한다.
귤도 2개, 요구르트도 챙기고 때 늦은 나들이 준비를 하고
" 여보! 어서 일어나요, 오늘 우리 생태공원으로 소풍 갑시다"
" 아니, 이 추운 날 무슨 번개 소풍이야"
그래도 싫지는 않은지 준비를 하고 나선다.
두툼하게 입어서 그런지 그렇게 춥지도 않고 나들이할 만한 날씨이다.
기분 좋게 출발이다.
어디 먼 곳을 즐겁게 떠나듯 와인 부부는 나선다.
" 내가 미쳤지, 이 추운 날 마누라가 가자고 하니 이렇게 선뜩 나서다니"
그냥 하는 소리인지, 즐거워서 한 번 해 본 소린지 귀에 들리지만
싫지 않은 소리이다.
코로나 때문에 앉아있을 곳은 다 테이프를 쳐 놓아서 생태공원은
을씨년스러웠고, 단풍이 거의 시들은 공원은 사람마저 없어 황량한
초겨울 바람만 분다.
사람이 많지 않은 공원 길을 맑은 공기 속에 걸어가니 기분은 상쾌 해
진다. 군데군데 남아있는 단풍 끝자락이 운치를 돋우는 아름다운 풍광
그 길을 걸으며 양지바른 곳이 어디인가 찾는다.
정성스레 싸 온 점심 도시락을 먹기 위해서 늦가을 햇살 가득한 빈 의자
에 짐을 푼다.
꼭 어린 시절 소풍 온 기분이다.
"여보! 이렇게 나오니 참 좋지?"
"그러네, 기분이 공연히 좋네"
따뜻한 물 한 잔을 따라 마시며 마음을 풀고, 우리 닮은 계절을 만끽한다.
밑반찬으로 싼 도시락을 맛있게도 먹는다.
"여보! 이렇게 먹으니 진짜 맛있지"
고개를 끄덕거리며 맛있게도 먹는다. 싸 온 생김치도 맛있고 밥 위에
턱 얻은 김도 꿀맛이다.
오븐에 구워온 군고마를 생김치에 곁들여 먹는 맛도 일품이라
꼭 어린 시절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친구와 맛있게 먹던 기분이
든다. 타 온 뜨거운 커피를 한 잔씩 딸아 마시며 청명한 하늘에
눈을 둔다. 참 맑고 아름다운 늦가을 노부부의 하루가 너무 아름
답다.
"여보 내가 당신한테 소풍 선물한 거야, 고맙지"
그냥 끄덕끄덕하며 "그냥 좋네"
마누라 긴 세월 옆에 있어 하찮은 즐거움을 선물하며 쫑알대는
모습이 좋았을 것이고 나이를 어디로 먹었나 철없어 보이는
낙천주의자 지켜줌이 흐뭇했으리라. 아직도 가을 길을
수놓고 있는 보라, 노랑, 자주 빛의 국화꽃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지나가는 길손을 반기는 듯 작은 바람에 나풀거리며 을씨년스러운
길을 수놓고 구경 온 객을 즐겁게 맞이한다.
몇 풍경 남지 않은 가을 끝자리 안간힘을 다 해 분위기를 끌고 가는 자리에
와인 부부는 앉아서
보아주는 이 없어도 다 시든 외로움 속에서도 외로이 남아서 최선을
다 하는 나무를 보며 우리도 저리 멋지게 늙어가야지 생각을 한다.
곳곳에 깃들고 있는 스승의 모습에 경의를 표한다.
아침에 법문 구절을 적어 내려가며 그렇지 그렇지 하던 생각이 난다.
"염라국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요, 바로 자신이 살고 있는 집 울안이요
명부 사자가 바로 가족과 친척들이고 가까운 사람들이라"
나머지 삶을 어느 곳에 중점을 두고 살다 가야 하는지 답이 나온다.
먼 곳을 응시하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깊은 사색에 잠긴 외조자의
손을 꼭 잡으며 난 이렇게 속으로 감사를 표한다.
"여보 부처님, 참 고마워요, 어설프고 보잘것없는 나 데려다
마음공부하게 해 주고, 시서화로 삶을 즐기는
여류 만들어 편하게 끌어주고, 마음고생 안 시켜서 고맙습니다."
알아듣는 듯 눈길 주는 모습이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 뭘 보살님, 오늘 잘 먹고 함께여서 고맙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