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하루에서 시작되는 질문들 01.
넘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
그것이 우리를 숨 가쁘게 달리게 하면서도, 정작 앞은 보지 못하게 만든다. 시선은 끊임없이 뒤를 향하고, 옆을 곁눈질하고, 발밑으로 꺾인다.
경기장을 채우는 것은 숨소리와 함성이 아닌,
모두의 머릿속에서 울리는
날카로운 계산기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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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가치가 기능으로 환산되는 사회에서 ‘쓸모’는 가장 효율적인 판단 기준이 되었다.
쓸모가 없어지면 나를 보는 시선도, 의미도 사라지고 만다.
그렇게 존재는,
가치를 잃으면 사라지는 가벼운 가루가 되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물들은 모두 이유가 있다.
글씨를 또렷이 보기 위한 안경,
발이 미끄러지지 않는 편한 신발,
하루 종일 더위를 식히는 선풍기의 바람.
세상에 나온 이유가 있는 모든 것들 한가운데서
오직 나만 태어나기를 먼저 했다.
인간은 태어나, 스스로 존재의 이유를
만들어가야 하기에 마음 한켠에 불안을 품고 산다.
그 불안을 없애기 위해서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것들을
‘쓸모’라는 기준으로 재단한다.
이 쓸모는 너무나 강력해서, 마치 인간 사회의 중심을
움켜쥔 거대한 자석처럼 움직인다.
자기장들은 그 중심에 끌리기 위해서,
소멸하지 않기 위해서
끝없는 자기 증명을 해내야 한다.
쓸모가 무엇이길래 이토록 절대적인 것일까?
처음에 인간은 '살아남기'
그거면 충분했다.
먹을 수 있는 열매를 고르고, 쓸 만한
돌을 찾는 것 위주였다.
문명이 발달한 인간은
살아남기보다 '더 잘 살아남기'를 해야 했다.
더 잘 살아남기 위해 더 위에 서는 것이 목표가 되면서 일상에 비교라는 구조가 생겨났다.
비교는 내가 어디쯤에 있는지를 단숨에 드러냈고,
그래서 스스로를 조건부로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세상을 물질로 환원하고
존재를 원자 단위로 해석하는 데 익숙해졌다.
쓸모는 '측정 가능한 것'만이 신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측정 가능한 보이는 것이 진짜,
보이지 않는 것은 허상.
사람은 자원,
관계는 자산,
시간은 투자 대상.
세상은 물질, 계산, 기능의 합으로 설명된다.
모든 것은 수치화된 결과가 나와야 가치 있고
인간의 행동은 데이터로,
뇌는 화학물질로,
감정은 도파민, 사랑은 옥시토신으로 말할 수 있는
‘쓸모’ 있는 세상이다.
그런데 대뜸 이런 생각이 든다.
세상이 원자인게 나랑 무슨 상관이 있지?
세상은 설명할 수 있을 만큼 발전되었지만
그 설명이 나를 살린 적은 없었다.
삶이 너무나도 버거울 때,
다시 숨 쉴 수 있도록 만드는 건
원자에 담기지 않는 꼬깃꼬깃한 것들이었다.
쓸모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무기력함, 공허함,
멍 때리는 순간은 얼른 빠져나와야 하는
비효율적인 시간이겠지만,
그 감정은 나를 잠시 멈추게 하고 돌아보게 해서,
다른 선택을 하도록 만드는 놓치면 안 될 기점들이다.
인간의 확신은 보이지 않는 것을 못 보게 만들어
핵심이 될 열쇠를 놓치게 만든다.
문명의 발달과 세상의 법과 질서는
측정할 수 없는 가치 위에서 생겨났는데도 말이다.
그렇담, 무엇이 쓸모일까?
과거에는 ‘노동력’이 쓸모의 기준이었다.
산업혁명 이후에는 ‘빠른 생산성’이,
지금의 디지털 시대에는 ‘클릭 수, 알고리즘,
팔로워 수’가 쓸모를 판단하는 지표가 되었다.
세상의 중심이 신이던 시절,
자연과학은 쓸모없는 무용한 의심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과학은 모든 판단 기준 위에
군림하며 쓸모를 가르는 자리에 있다.
가장 쓸모없어 보이던 한 사유 —
‘지구는 중심이 아니다‘는 한 문장은 코페르니쿠스의 위대한 전환이라는 이름으로 남았다.
쓸모란 것은 시대마다 얼굴을 바꿔왔고,
언제나 ‘가장 보편적인 진리’인 척 위장한 채,
우리를 길들여왔다.
우리가 아무 의심 없이 따르는 이 기준은
누군가에게만 유리하도록 설계된 판 위에서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라고 밀어세운다.
그리고 그 기준에서 벗어난 모든 것은 ‘쓸모없다’는
이름 아래 버려졌다.
아무 성과 없이 헤매는 사람
진로라는 단어 앞에 오래 머무는 사람
남들과 다른 속도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
누구의 눈길도 사로잡지 못하고.
아무런 수익도 내지 못하며,
결과를 내기까지 오랜 사유만 반복하는 것들.
쓸모없다고 여겨져 버려진 것 속에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가능성은 없었을까?
쓸모는 ‘시대’ 안에 있지 않다.
'진짜 쓸모'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 발견될 가능성 안에 존재한다.
거짓된 쓸모를 없애면,
쓸모가 내 의지를 가리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조건 없는 내 존재 자체가 드러난다.
철학은 항상 ‘쓸모’의 바깥에 존재해 왔다.
그래서 누군가 묻는다. “요즘 같은 시대에 취업도 안 되는 철학이 무슨 의미가 있지?”
이 질문이 나올 때마다 철학은 심장이 뛴다.
가장 당연한 것들에 처음 물음표를 던진 것도,
가장 오래 의심을 품었던 것도 바로 철학이었다.
세상이 아무리 빨라져도,
인간은 다시 사유하고 질문하기를 반복한다.
그때 단 하나의 질문이 패러다임을 바꾸는
시작점이 됐다.
그리고 그 질문은 결코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철학은 거대 담론이 아니라,
모두가 삶에서 마주치는
불확실한 흔들림으로부터 시작된다.
결국 인간은 과학의 끝에서 다시 철학을 찾고
철학의 질문으로부터 다시 과학을 시작한다.
언젠가 이 빠른 세상이 멈칫할 때,
우리가 외면했던 쓸모의 바깥은 어느새
가장 깊은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사라질 뻔한 어떤 마음들이 말이 되기 시작하면서.
질문 부스러기 #1
남들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이상하게 당신의
가슴을 뛰게 하는 '쓸모없는' 일이 있다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