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하루에서 시작되는 질문들 02.
우리 집 거울 속 나
거리에 비친 나
엘리베이터 안의 나
휴대폰 검은 액정 속 나
프로필 사진의 나
sns에서의 나
포토부스 속 잘 고른 나
엄마가 찍어준 나
친구가 몰래 찍은 나
옆자리 스쳐간 누군가의 기억 속 나
너의 눈에 나
100명의 눈의 나
1억 명이 판별한 평균값의 내 얼굴
AI가 보는 나라는 인간
그리고,
난 한 번도 본 적 없는
'나'
눈을 감았다 떴을 때 보이는 건,
내 두 손, 그 뿌리를 찾아 올라오면
보이는 어깨의 일부,
그 아래에 무릎,
그 밑에 발 두 개.
그리고 시야를 방해하지 않을 정도의 흐릿한 코끝,
입을 쭉 – 내밀면 나오는 동그란 것.
그게 내가 나에 대해 볼 수 있는 전부이다.
‘나’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거울을 보는 것.
그런데, 거울 속 나는 매번 진짜 나와 정반대 손을 든다.
인간은 자신을 반드시 ‘도구’를 통해서만 볼 수 있다.
그래서 내가 아는 나는 언제나
반사된 나, 간접적인 나다.
그러니 ‘나’는 타인을 통해서 ‘나’를 봐야 한다.
그건 타인도 마찬가지.
마주 보는 인간은 서로의 거울이 되어
서로를 바라본다. 시선을 의식한다. 그러다 눈을 돌린다. 다시 마주친다. 전과 후를 비교하고, 신경 쓴다.
스캔하고, 안을 꿰뚫는다. 왜곡한다. 왜곡된 겉을 훑어서 판단한다. 그걸 다시 나에게 투영한다.
이 거미줄에 엉키면 빠져나올 수 없다.
그렇게 타인은 지옥이 된다.
내가 나를 인식하는 순간, 그 안엔 이미
타인의 시선이 들어와 있다. 타인을 뺀 나는 0 이니까,
내가 나를 아는 것은 영영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인간의 눈이 360도로 회전해서 타인을 보듯,
나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구조라면
어땠을까?
'나'를 완벽하게 아는 순간, ‘나’는 고정될 것이다.
고정된 ‘나’는 고착화된다.
고착화된 존재는 고립된다.
혼자가 된다는 건, 닫힌 공간이다.
사물이 눈에 너무 가까이 있으면
그 어떤 것도 볼 수 없듯이,
형체를 분명히 알아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봐야 한다.
이제, 인간이 왜 자기 자신을 볼 수 없게
설계되었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이 구조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잘 안 보이게 함으로써,
오히려 잘 보도록 만든다.
자기 자신조차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보면서
그렇게 한 번 걸러진 나를 의심하고, 되묻고, 노력하기를 반복하며 ‘나’를 구성하라는 것처럼 느껴진다.
자아는 관계 속에서만 드러나니까,
인간은 자신을 알아가기 위해
예술을 하고, 철학을 하고, 사랑을 한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스친다.
인간이 진화든 창조든, 어떤 방식으로든
설계된 존재라면,
그리고 그 설계에 최소한의 가능성들이 고려되었다면
‘자기 얼굴을 못 보게 만드는 방법’은 왜 하필 지금의
형태로 주어졌을까?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는 건 꼭 1인칭 시점일
때만은 아니다.
만약 생물학적 구조 자체가 의식이 몸 바깥에서
시작되는 3인칭 시점으로 진화했다면 어땠을까.
예컨대 게임에서 내 캐릭터의 뒷모습을 보며
움직이는 건 익숙한 일이다.
카메라가 나를 따라오듯 외부에서 나를 바라보는
낯선 구조이지만, 어떤 시점이든
우리는 그 캐릭터를 곧 ‘나’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1인칭의 시점으로 고정되어 있다.
왜 인생에는 나의 전체 모습을 보여주는
실루엣도, 미니맵도 없는 걸까?
인생이 감독자의 3인칭 시점이라면,
모든 선택 앞에서 조금 더 냉정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 자신도 풍경 속 일부가 되면서
‘타인의 시선 속 나’와 ‘내가 아는 나’ 사이의
간극도 자연스레 좁혀진다.
넘어지는 실수를 미리 감지하거나,
사람들 앞에서 우스운 모습을 줄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는 철저히 내 시선으로만 보이도록
설계되어 있다.
내가 보는 것만 보이고,
내 머리 움직임에 따라 시야가 흔들리며
그 위에 감정과 고통, 생각이 덧씌워진다.
나는 내 경험의 중심이자, 우주의 중심이지만
정작 얼굴과 등 뒤는 볼 수 없다.
내가 어떤 모습인지는 끝내 알 수 없다.
세상의 중심이 되어, 모든 것을 느끼고 판단하지만
정작 중심인 자기 자신은 직접 보지 못하는
절묘한 모순이다.
영원히 타자를 통해서만 나를 보는 이 세계는,
동시에 나의 눈으로만 열린다.
내가 눈을 감으면 세상은 사라지고,
눈을 뜨면 다시 출현한다.
나는 나를 볼 수 없지만,
오로지 내 시점으로만 세상을 시작하는 구조에서는
묘한 배려가 느껴진다.
모든 게 선명할 땐 질문이 없다.
적당히 흐릿해야 여백을 상상하고 의미를 생각한다.
완전함은 닫힌 문이니까.
보이지 않는 나,
설명되지 않는 감정,
타인에게 말할 수 없는 어떤 상처와 생각들.
손에 잡히지 않는 그것들을 통제하려 하지 않고
때로는 그저 흐르게 둘 때,
우리는 모호함이라는 문을 열고
자기만의 리듬과 방식으로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자아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매 순간 새로 쓰이는 해석의 과정이라는,
이 간극을 자각할 때, 오히려 나와 가까워지게 된다.
오직 1인칭 시점으로만 존재하는 당신의 삶은,
그래서 세상의 모든 가능성이 시작되는 유일한 곳이다.
질문 부스러기 # 2
당신은 누구의 눈으로 자신을 가장 많이
구성하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