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진짜를 보고 있는 걸까?

보통의 하루에서 시작되는 질문들 03.

by 슴순
밤에 잠들지 못하는 날이 있다.
빛이 채워주지 않는 어두운 공간이
다른 세계의 입구 같은 상상을 부추겨 그런 걸까.
분명 같은 공간인데도 불 꺼진 방에서는
낯선 불편함이 느껴진다.
그럴 땐 팟캐스트 한 편을 틀어보고, 그래도
잠들지 못하면 삼국지 설명회를 재생한다.
마지막 궁극기를 쓴 셈이다.
그 영상의 끝자락까지 두 귀가 열린 날은
유난히 고단하다.
내일의 피로가 밤을 뚫고 먼저 찾아오는
생각이 실타래처럼 엉킨 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뒤척거림은
해가 떠오르고 빛이 따뜻하게 방을 비추고 난 뒤,
그제야 끝이 난다.


인간은 낮 동안 스스로를 거대하게 느낀다.

하늘 아래 개성을 드러내고,

보이는 것에 이름을 붙이다 보면

세상을 모두 이해한 듯한 피로와 오만함에

잠기곤 한다.

그럴 때 밤은 한 번씩 인간의 한계를 일깨우러 온다.

해가 떠 있을 때 각자의 색과 개성을 뽐내던 것들은

밤이 오면 너나 할 거 없이 모두 어둠으로 스민다.

눈은 다채로움을 잃고

끝내 차이를 가려내지 못한다.


‘인간은 빛이 있어야지만 사물을 볼 수 있는 존재’

가끔 그게 수상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빛이 없는 공간은 눈을 감는 공간과 일치한다니.

빛이 있어야만 볼 수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걸 놓치며 살아가는지 알 것 같다.

사실 ‘빛 자체’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루를 함께하는 커피가 편안한 갈색빛을 띠는 건,

커피의 표면이 여러 색 중 갈색 파장만 내보내고

나머지는 삼켜버렸기 때문인데, 우리의 눈은 그 반사된

파장을 보고 커피의 본래 색이라 착각한다.

이토록 친숙한 커피도, 본래 모습이 있다면

노랑이나 형광 핑크, 혹은

우리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색일 수 있다.


그러니 우리는 거대한 지구 스크린에 앉아,

태양이라는 빔 프로젝터가 쏘는

일생 길이의 필름, 그 영화를 보는 관객이다.

누구도 온전히 붙잡을 수 없는 양자역학의 세계는

이 영화관을 한층 더 기묘하게 만든다.

영화는 관객이 눈을 뜨기 전까지는 재생되지 않는,

모든 장면이 겹쳐진 무한한 가능성의 필름이었다가

우리가 ‘본다’는 그 순간, 단 하나의 장면으로 정해진다.

관객의 시선이 장면에 영향을 미치는 영화를

어떻게 다 설명할 수 있을까—

수많은 가능성 속에서 단 하나 분명한 건,

여전히 모른다는 것이다.

빛이 있어야만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존재,
우리는 얼마나 취약하게 태어난 걸까?



뱀은 우리가 만들 수 있는 어떤 센서보다도 정밀하게 적외선을 감지한다.

돌고래는 눈을 가려도 초음파로 공간을 그리며,

박쥐에게는 소리마저 곧 시야가 되듯,

그들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감각으로 세상을 읽어낸다.

그에 비해 인간은 넓은 스펙트럼 중

단 한 줌만을 감지한다.

‘가시광선’.

그래서일까. 보이는 것에 너무 쉽게 흔들린다.

외부 시선에 의지해 나를 채우고,

가짜로 포장된 영상에 홀리기도 하며

SNS 속 연출을 진실이라 믿고 만다.

보이는 세계는 전체의 조각일 뿐인데도,

그것을 전부라 믿는다.


존재한다는 건 눈에 감지된다는 뜻,

인간은 보이기 위해 존재하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사람도, 사랑도, 기억도

눈앞에 없으면 금세 희미해져 버려

늘 드러남에 의존하고 목말라한다.

마음을 들여다볼 때조차 인간은 빛의 은유를 떠올린다.

내면이 어둡다고 하고, 생각이 훤히 보인다고 한다.

눈에 잡히지 않는 것을 느끼면서도,

빛에 익숙해진 우리는 빛에 기댄 언어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고차원적인 그들은
빛이 아니라 말로 옮길 수 없는 예감으로,
빛 보다 더 미세한 잔향으로,
경계 없는 모호함으로
세계를 인지하지 않을까?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사유는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고, 감각하고, 믿는 능력을 품고 있다.

눈을 감으면 우리는 상상을 본다.

어두운 방에서 괴물을 그려내고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장면이 꿈에 나타난다.

보이지 않는 것들에 이끌려 예술의 세계를 만든다.

시야의 경계선에서도 끝없이— 그 너머의

가능성을 떠올리며 잠드는 생물.


왜 가시광선에 갇힌 감각을 가지고서도

상상을 하도록 주어진 걸까.

당연하게 여기는 ‘보는 행위’ 에도 얼마나 많은

한계와 맹점, 오만과 편견이 숨어 있는지

인간은 알지 못한다.



질문 부스러기 #3


우리의 감각이 무한한 가능성 속에서

단 하나만 보게 하는 '선택된 필터'라면,

오늘 당신은 무엇을 놓치고 무엇을 보았나요?

수,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