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하루에서 시작되는 질문들 04.
여름의 기억은 유독 오래 남는다.
매해 무지하게 더웠고
더위를 피하려 애썼고
온통 살아있는 것들의 소리로 가득했고
그래서인지 모든 감각이 살아있었다.
모기 물린 자국, 땀자국, 그을린 자국.
여름이 닿은 흔적과 함께 쓴 일기를 보면
그때의 공기와 그늘 냄새, 바람의 온도, 옷차림,
내 입 모양까지 다시 그려진다.
단순히 기억한다는 걸 넘어서
몇 월의 그때로 잠시 돌아간 느낌.
어딘가 낭만적이면서도
조금은 민망한
서툰 여름이
내 안에서 몽글하게 살아 숨 쉬고 있다.
문득문득 열 때만 발견할 수 있는,
나를 살아가게 하는 것들이다.
기억을 ‘기억한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우리는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당연하게 느끼고 있지만,
사실 나를 구성하는 것들은 그렇지 않다.
나를 이루는 세포는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건 물론,
7년쯤 지나면 원자는 모두 다른 것으로 바뀐다.
그렇게 보면, 나는 이미 몇 번이고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나를 나라고 믿고 있다. 왜?
이건 기억이 만들어낸 정교한 착각일 수 있다.
이 착각이 깨지면 자아는 결국
'기억의 서사'와 '지금의 관점'의 총합일 뿐이다.
자아는 단단한 하나의 실체 같지만,
사실 끊임없이 생성되는 이야기에 가깝다.
한 번도 같았던 적 없는 ‘나’라는 주인공을
조금씩 다르게 써 내려가는 이야기.
우리가 붙잡는 과거라는 것도 실은 설명할 수 없다.
지나간 순간은 기록 속에만 남아 있을 뿐.
우리는 이야기 속에 살고,
이야기를 다시 살아내는 존재다.
그럼에도 기억이라는 건, 머리에 남아있는
과거의 일을 단지 ‘재생’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정말 그럴까?
어떤 기억은 ‘단순히 재생’이라는 말로
다 설명되지 않는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오래 기억하고 싶은 기억?
축제나 콘서트에 가면 습관처럼 카메라부터
들던 때가 있었다.
소중한 순간을 오래 남겨두고 싶은 마음에
눈과 카메라 어느 하나에 집중하지 못할 걸 감수하면서
화면에 담는 것을 택했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오로지 그 ‘순간만을 즐긴다‘는 건
도통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한날, 다시 돌려본 영상 속 순간들은 어쩐지 밋밋했다.
기억보다 용량부터 차지한 탓일까.
미적지근하게 식어있는 기억이었다.
녹화해 두면 평생 잊지 않을 줄 알았지만
기억이 어딘가에 맡겨진 듯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멀어져 버렸다.
오히려 내 두 눈으로 직접 볼 수밖에 없는
순간들은 오래도록 남는다.
그때의 공기, 피부에 닿은 온도, 그 잔향을
속눈썹이 오감으로 붙잡고 있다.
현장에서의 몰입과 전율은 카메라 렌즈보다 몇 배나
강해서 내 감각만이 포착할 수 있는 걸까?
그렇게 진땀을 흘리며 눈에 담아낸 순간은
온전히 나만의 기억으로 오래 남는다.
스마트폰, 클라우드, 자동 백업 같은 장치들은
앞으로 내 삶을 더 많이 기억해 줄 것이다.
기억은 점점 기계에 맡겨지고,
나는 그저 그것을 다시 꺼내 보는 사람에 불과한
‘기억의 외주화’ 시대에서,
‘내가 한 기억’과 ‘디지털이 해준 기억’은
뭐가 다를까?
기계의 기억은 정확하다.
있는 그대로를 저장하고, 왜곡 없이 꺼내 보여준다.
반면 인간의 기억은 늘 감정이 달라붙고,
때로는 없던 장면이 덧칠된다.
그래서 인간의 기억은 재생이 아니라,
왜곡된 재구성에 가깝다.
예전엔 분명 슬펐던 장면이
지금은 웃으면서 말하는 장면으로 변하기도 하니까.
기억은 지금의 정서와 해석으로 만들어낸
현재의 이야기가 된다.
과학에서는 이걸
‘기억의 불완전성'이라고 하지만— 그런 설명보다도,
이렇게 느껴진다.
어쩌면 기억은 그때의 순간과 지금의 순간이
겹쳐질 때만 살아나는 것이 아닐까?
주파수가 통한 순간?
가끔 익숙한 냄새를 맡거나,
어느 계절에 듣던 노래를 다시 들을 때
기억은 불쑥 퍼진다.
이건 나를 단숨에 데려가 버리는 경험이다.
그때의 생생함은 '뇌 속의 전기적 작용'이라는 말로
불충분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그건, 그때의 나의 주파수가 지금의 내 안에서 다시 울렸기 때문에 잠시 같은 공간으로 겹쳐진 건
아닐까?
그래서 기억은 재생이 아니라, 되살아나는 것처럼
느껴지는 지도 모른다.
단지 빛의 차원 밖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확인하지 못하고 마음으로만 느껴지는 것일지.
기억은 정말 나의 내부에만 존재할까?
빛은 물체에 부딪힐 때
아주 미세한 열과 흔적을 남긴다.
그런 점을 볼 때, 기억은 내가 경험한 모든 사물에
빛의 흔적으로 남아있을 것만 같다.
오래된 카페의 벽은
세월이 쌓이면서 수없이 오간 사람들의 대화를,
햇살이 들어오는 도서관의 창가는
지나간 오후의 따뜻함을 간직한 존재처럼
빛이 닿았던 모든 순간은 살아있는 아카이브가 된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느낄 수 있는 아우라는
그 공간이 품은 기억의 흔적처럼 느껴진다.
작품에 쌓인 시간과 손길, 그리고
그 앞에서 머무른 수많은 시선들이 겹겹이
포개진 울림이 깃들어 있다.
수집가들의 수집품 또한, 단순한 물건의 집합을 넘어
오랜 세월 삶의 편린이 배어든 작은 우주에 가깝다.
그렇게 기억은 우리를 둘러싼
이 세계 자체를 품고 있다.
예전의 일기장을 펼칠 때면, 그 순간의 내가
지금 여기에 살짝 겹쳐져 온다.
그건 단순히 심리학적 회상이라기보다,
그때의 세상과 지금의 내가 만나 새로운 공간으로 들어서는 현재의 경험이다.
인간은 기억이라는 줄 위를 진동하며
세상이 열어주는 빛의 틈에서
나를 잠시 발견하는 사람이 아닐까.
기억을 느끼고,
살아내고,
떠나보내는 의식의 파동으로서.
질문 부스러기 # 5
당신이 자주 가는 기억의 공간은 어디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