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뮬레이션인데 왜 진심이야?

감지하지 못한 우주의 패러다임들 02.

by 슴순
꿈인지 현실인지는 깨어나기 전까지 모른다.


당신은 하루 중 얼마나 진심인가?


모든 사람에게 물어본다면 어떤 답이 나올까.

미지수인 세상에서 나는 얼마만큼 진심으로 살고 있을까.


진심은 무엇 하나 걸치지 않은 무장해제 된 내면이라 수없이 나를 부끄럽게 했다. 진심을 일부러 드러내려고 애쓴 적은 크게 없다. 마음의 가장 야들한 부분을 보여주는 건 그만큼 다치기 쉬워 신중해야 함에도, 그럴 겨를 없이 새어 나왔다. 대충 해도 되는 답변 하나를 오래 붙들고, 그냥 넘겨도 될 일도 정성을 다해 끝까지 매만졌다. 아무도 모를 디테일을 애써 챙기는 내 고질적인 습성이다.


진심에는 내 일부가 갈고리처럼 걸려 있어서 더 많은 기대와 후회를 끌어왔다. 비대해진 자아는 그런 나를 더 높은 위치에서 본다. 진심이 드러난 나를 아니꼬워한다.

-“이건 아직 덜 익은 생각인데 너무 이르게 꺼낸 거 아니야?”

“그럴 필요 없는데 나만 애쓴 거 아니야?”

솔직함과 언변술, 날것의 이상적인 나 사이 어디쯤일까 방황하는 와중, 이런 날이 있었다.


지인과 벤치에서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요즘 일상부터 내가 무얼 봤고, 특히 이 주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다양한 티키타카를 나누었다. 그러다 핸드폰 녹음이 켜져 있는 걸 봤다.

그때 벌겋게 끓는 마음이 내 안에 일었다. 좋은 의도가 아니라는 싸한 느낌과 함께 뭘 위해서? 싶은 당혹감.

같은 위치에서 진심으로 맺은 대화가 아니라, 통제 아래 서늘하게 자료로 이용당했다는 모욕감? 방심?


요즘은 무거운 장비 없이도 녹음할 수 있으니, 위급 상황이 아닌 일상적인 녹음이 대수롭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말이 이상하게 들렸다.

티가 안 나는 만큼, 언제 어떻게 기록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점점 아무도, 아무 말도 믿기 어려워진다. 누군가와 전화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기가 머뭇거려지는 시대다.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무심하고 계산적이라, 진심이 함부로 소비되거나 착취당하지 않도록 철저히 거르는 과정이 필요했다.


세상이 처음부터 이토록 야박했던 건 아닐 것이다.

진심을 꺼냈다가 거절당한 적이 있어서, 진심만으로는 살아남기 벅차니까 가면을 쓰고 가장 야들한 부분을 숨겨, 덜 아프게 더 잘 살려고 바뀐 거다.

뜨거운 진심을 감추기 위해 세상은 쿨해지려 노력한다.

“애초에 진심 아니었어. 기대하면 안 돼. ” 도전에도 매번 진심 아닌 자기 암시를 걸었다.


서점에 가면 다크 심리학이 베스트셀러에 있다. 내 속은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관계를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은밀하게 조종하는 기술이 빼곡히 적혀 있다.

상대보다 우위에서 독점할 수 있다는 묵직한 어두운 표지에서는 세상의 가장 약한 부분이 환하게 드러난다.

그만큼 진심은 아프다. 휘둘리지 않기 위해 남들보다 먼저 똑똑해져야 한다. 이용할 줄 모르고 진심을 내비치는 사람이 바보가 된다.


겉으로는 웃지만 마음은 멀고,

진심처럼 보이지만 진심인지 알 수 없고

AI의 생각인지 그의 생각인지 알 수 없는

겉모습만으로 구성된 세계.


녹음기를 켰는지 안 켰는지 걸리지 않고서는 모른다.

하늘이 세트장의 벽인지 닿지 않고서는 모른다.

우주가 시뮬레이션일 가능성이 높다지만, 굳이 우주까지 가지 않아도 이곳 역시 충분히 시뮬레이션 같다.



시뮬레이션인데 왜 진심이야?



효율과 계산, 목적에 따라 움직이는 시뮬레이션에서 진심은 오류다. 그런데도 효과가 보장되지 않는 진심이 더 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과몰입이 좋다. 그래서 진심을 놓을 수 없다.

몰입이 아닌, 과몰입에서만 나오는 소위 ‘찐’ 같은 부분을 좋아한다. 무언가에 진심이어서 과몰입한 사람들의 눈빛은 이상하리만큼 닮아있다. 밝고 선명하게 한 지점을 뚫어, 보는 사람의 마음을 관통한다. 그 눈빛을 보며 생각했다. 나와 가장 민감하고 진실한 부분과 닿았을 때 생기는 최고로 솔직한 반응이 과몰입일 것이다.


대충 하는 말은 백배로 편하다. 진심을 모두 잘라낸 대화는 언제나 평화롭다.

그런데도, 자주 부끄럽고 번번이 무너져 아픈 일이 많더라도 진심을 다하고 생생하게 들여다보는 쪽을 택하려 한다.

내 일부를 걸고, 기대하고, 부딪히며 마음을 끝까지 다 써보고 싶다. 끝까지 밀고 나가는 동안 생긴 파인 홈들은 차츰 뜨거운 이야기로 채워질 것이다.

이야기들이 서사로 쌓이고 그 서사를 나중에 돌아볼 수 있을 때, 그제야 내가 누군지 알게 될 것 같다.


이렇게 높은 비용을 감수하고도 누군가 나에게 진심을 내어준다는 것은 그 사람이 나를 '소비'의 대상이 아니라 '존재'로 대우하고 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다.

모두가 인정해도 어떤 한 사람의 인정이 없으면 부질없고, 모두가 인정하지 않아도 한 사람의 인정만으로 다 가진 것처럼 충분할 때가 있다.

삶은 그렇게 단 하나의 진심이 중요하다.


시뮬레이션 세상에서 진짜를 찾는 것, 그것은 내가 사는 동안 무엇보다 뜨겁고, 무엇보다 진한 이야기다.



질문 부스러기 # 11


우주가 거대한 시뮬레이션이라면 원인은 무엇일까요?

수,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