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주 03.
이곳에 있는 사람 중, 죽음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을 땐 서점으로 간다. 먼지 쌓인 기록들 사이에서 지루하지 않을 한 시간을 찾으러 가는 것이다. 나에게 이곳은 단순히 책을 파는 곳이 아니라 인류의 생존 기록이 보관된 박물관이다.
인간이 인간을 만들어낸 이후, 다양한 수명의 인간이 실험체처럼 만들어졌다. 그중에는 반드시 85세 생일에 생을 마감하는 버전, 최대 200세 수명을 사는 버전이 있었다. 내가 200세 인간을 제조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어느 버전에도 속하지 않는 불멸의 돌연변이라는 사실은 200년을 조금 넘기고서야 알게 되었다.
초기 인류의 기록이 있는 코너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그 과정은 실패의 연속이었으니까.
준비되지 않는 죽음을 개선하고자 만들었던, 모두가 공평하게 85세 생일에 죽는 시절의 책은 온통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낭비 없이 최고로 효율적인 인생을 설계하는 압축된 노하우만 빼곡했지, 인생으로부터 발버둥 치는 절박함이 없었다. (나는 수많은 책을 읽으며 절박함이 무엇보다 짜릿한 묘미임을 확신했다.)
더 최악은 200년 모델의 인류가 쓴 책이다. 200년 치의 감정 쓰레기 더미 속에서 정체성을 찾지 못한 그들은 광기와 무의미함에 시달리다 멸망했다. 하마터면 나도 그들 중 하나가 될 뻔한 것이다.
85세에 정해진 죽음을 맞는 인류의 책은 지루해서 못 견뎠다면, 적어도 200년 인류가 쓴 책은 조롱하는 맛이 있었다. 200년이라는 수명 안에서 삶을 빚는 그들의 책은 존재의 골조가 무너져, 구조에 일관성을 찾을 수 없었다. 사랑도 수십 번은 붕괴되고 정체성은 5번은 갈라지며, 이별을 50번 이상 겪은 이야기들. 200년이라는 넉넉한 기한이 있어서 수정만 거치다 엉망이 되어버린 책들이 대부분이다. 한때 냉소를 씹는 맛으로 즐겨 보긴 했지만, 최종 인류가 정해지고 1800년이 지난 지금은 아무 씹는 맛도 없었다.
지금 인류는 100년이라는 용량 안에 언제 죽음이 닥칠지 모를 ‘절박함’을 갖고 태어났다. 그 기한은 서사를 만들기에 가장 적합했다. 너무 짧지도 길지도 않게 의미로 충만한 기묘하게 인간다운 시간이었다. 살면서 겪는 사건 수, 전환점 수, 한계를 합치면 한 인간의 이야기가 완성되는 딱 알맞은 정도. 그 수명은 인간의 내부 용량의 길이가 외부 시간으로 옮겨진 결과였다. 서사적 밀도를 만들기 위해 세팅된 수명이라니. 관리자들은 참 악취미적이다.
이유야 어떻든, 그들의 책에는 순간을 유일하게 만드는 사건과 불가피하게 선택해야 하는 스릴이 있었다. 나에게는 일관된 구조 속, 그 유한한 찬란함이 가장 신선했다. 오늘은 《내 2000번째 생일이 역겹지 않으려면》에 걸맞은 내용을 찾으러 온 것이다.
신간, 슴순 작가의 《왜 죽어야만 할까》 에세이가 북토크 공지와 함께 눈에 들어왔다. 왜 죽어야만 하냐니. 따분하고 따분하고 따분하고 따분하고 따분하고 따분하니까 마침표를 긋는 것인데. 주름 하나 지지 않는 손으로 책을 펼치니 첫 단락에서부터 날 선 분노가 느껴졌다. “굳이 사라질 거면서 왜 태어나게 했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죽음에 대한 적나라한 분노, 부당함, 요동치는 감정의 폭발이 가득했다.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상실에 쏟는 것 같았다. “죽음이 삶을 빛나게 하는 게 아니라, 삶이 죽음을 견딜 이유를 찾도록 몰아세우는 거 아닌지.” 기승전결 없이 몰아치다 허무하게 마지막 문장이 끝나자, 그것 또한 죽음이려나 싶었다.
책을 들고 북토크가 예정된 스테이지로 갔다. 문 앞에는 가지런한 공지가 있었다.
- 북토크, 작가님의 개인 사정으로 취소되었습니다. -
예정된 북토크를 감당하지 못하고 취소할 만큼 상실의 기억이 떠오른 걸까, 다른 어떤 사건을 겪은 걸까 생각하며 스테이지 안을 맴돌았다.
구석에 홀로 앉아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작가 프로필 사진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같은 얼굴이지만 표정은 달랐다. 따분해 미칠 것 같던 내가 짓는 표정과 비슷하게 공허해 보였다. 나는 곧장 다가가서 물었다. “작가님이시죠? 왜 취소하셨어요?”
나를 보고 표정이 한 층 더 어두워진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매일 죽음으로 향하면서 죽음이 어떤 것인지 전혀 몰라요. 아무도 알려주지 않고, 누구도 겪어보고 말해줄 수 없고 모든 사람이 자기 차례가 오기까지 혼자 맞닥뜨려야 해요. 그래서 해줄 말이 없었어요. 원래부터 하지 않겠다고 누차 말했는데... 일부러 찾아오신 거죠? 죄송합니다.”
궁금해서 물었다. “죽음의 어떤 게 가장 싫은 건가요?”
그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시작도 이유 없이 왔고 끝도 이유 없이 오는데 그 사이의 시간만은 내가 책임져야 하는 거 같아서.“
뒤이어 입안에서 굴리듯 차갑게 중얼거렸다. “열렬히 사랑한 대가로 열렬히 아파야 한다는 건, 가장 끔찍하고 잔인한 모순이에요. 깊이 사랑했다는 것 말고는 한 게 없는데. 그 사람의 존재가 내 일부가 되어서 연결이 억지로 찢겨 나갈 때, 내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듯한 고통을 겪어야 해요. 훌륭하게 사랑한 대가로, 피할 수 없는 반작용이죠.”
그 말을 듣는 내내 너무 다채로웠다. ‘예측에서 벗어난’,
‘열렬히’, ‘억지로’, ‘대가’ ‘훌륭하게 사랑’, 같은 단어들이 발화할 때마다 불꽃놀이 같았다. 흉터. 나도 그런 흉터를 갖고 싶었다. 이 고통을 겪고도 살아남았다는 흔적. 산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는 증거가 나에게는 없다. 그들에게 시커멓게만 보이는 죽음은, 반짝이며 빛나는 푸른빛이었다. 유일하게 아무 목적도 없는 자유. “살면서 네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춤추고 싶을 때 춤추다가 지치면 무대 뒤로 걸어 들어오렴.”이라고 신이 그에게만 말해주는 것 같았다. 삶 자체가 대단한 게 아니더라도, 그 희소성 때문에 빛나보였다.
그 영롱함이 부러워 당당하게 말했다. “그거 알아요? 당신 정말 축복받은 인간이에요. 죽음 앞에서 결국 모두 사라질 문제라는 걸 알잖아요. 마지막 기회라는 간절한 특권이 있어서 좋겠어요. 살면서 마주하는 죽음이 당신 삶의 서사를 완성해 줄 겁니다.“
내 말이 그에게는 뺨을 맞아도 싼 발언처럼 들렸다는 걸 눈빛만으로 알 수 있었다. 필멸자에게 나는 그저 감정도 없는 사이코패스, 세상에 단 한 사람이라는, 유일한 소멸의 무게를 모르는 오만한 사람처럼 보였으리라.
그럼에도 여전히 그는 어차피 사라질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은 존재처럼 보였다. 자유를 줘도 감옥에 남고 싶어 하는 인간.
그가 마지막 말처럼 맥없이 말했다.
“아침에 태어나 정오에 청춘을 맞고, 해가 지면 중년기로, 잠이 들 때 노년기로 접어드는 하루가 삶 같지 않나요. 매일 그렇게 태어남과 죽음을 반복하는데. 내일도 어떻게든 이겨내야 하겠죠.”
밤을 향해 달리는 그들의 삶이 끔찍하게 부럽다. 잠을 자도 되고 안 자도 아무 상관없는, “밥 챙겨 먹었어?”라는 말이 웃긴 농담이 되는 ‘불멸’인데. 저무는 밤 없이 오후 3시에 갇힌 내 삶은 영원히 미완성 초안으로 남을 것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더 이상 그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 보였다. 철학? 구조적 합당함? 모든 것은 그의 낙담 앞에서 무의미한 백색소음이었다. 웅얼웅얼... 웅얼웅얼...
내가 가진 영원한 시간은 그들이 가진 찰나의 시간보다 가치 없다는 것을 또 한 번 깨달아버렸다. 언제까지고 서로가 서로의 지옥을 부러워할 뿐이다. 나는 영원히 저 숭고함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더 이상 그를 부러워하지 않았다. 그저 나와 그의 존재가 절대로 교환되지 않는 다른 종류의 고통임을 깨닫고 스테이지 밖으로, 끝없는 권태 속으로 돌아갔다.
질문 부스러기 # 17
오늘 당신의 일상은 무엇이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