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연말 보내세요
나는 모든 일에 진심인 편이다.
그게 장점인 줄로만 알고 살아오던 어렸던 때를 지나 이제는 그게 굉장한 단점이라고 느끼며 '나는 왜 그럴까', '나 참 피곤하게 산다'라는 말로 자책하던 요즘이었다.
병원에서 주니어보드로 활동을 하며 연말 캠페인을 진행하게 되었다. 주제는 감사와 인사.
인사 캠페인은 '나부터 인사한다'라는 표어를 주제로 내가 먼저 다가가 인사를 하고 서로 인사를 나누면 소정의 선물을 나누어드리는 방식으로, 감사 캠페인은 비치해 놓은 엽서를 적어 편지함에 넣으면 해당 직원에게 소정의 선물과 엽서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아무도 인사를 안 받아주면 어쩌나, 뻘쭘하면 어쩌나 하는 약간의 걱정을 품고 시작한 캠페인. 먼저 웃으며 다가와주신 분들도 있었지만 대체로는 무심한 표정, '붙잡히지 않아야지' 하는 표정으로 모른 척 지나가려고 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무심히 지나가던 그분들의 얼굴에 미소를 띠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내가 먼저 웃으며 '안녕하세요' 인사하기.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 때문일까 막상 인사를 받으시면 무시하시는 분은 없었다. 수줍거나 호탕한 감사의 표현들로 기분 좋은 시간이었다.
누군가에게 기분 좋은 순간을 만들어 주는 일은 거창한 배려나 희생이 아니라 미소를 띤 인사로부터 시작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이브닝 근무를 하던 중 아래층에 할 일이 있어 방문한 김에 굳이 굳이 감사 캠페인 부스로 내려갔다. 부스가 어지럽혀지지는 않았는지, 엽서가 많이 쓰였는지 살피던 중이었다. 어떤 분께서 다가와 "이건 뭐 하는 거예요?"라고 물었다.
"아, 이건 감사 캠페인 부스인데요!" 평소에 전달하지 못했던 감사의 마음을 엽서에 작성해 주시면 저희가 전달해드리고 있어요!"
"좋은 일 많이 하시네요. 어제는 인사 캠페인하셨죠? 저도 어제 인사하고 핫팩 받았어요. 덕분에 기분이 좋더라고요."
"연말이라서요~ 감사합니다.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마음이 뭉클.
로비에서 띠를 둘러메고 모르는 사람들에게 한 시간 내내 "안녕하세요~ 인사 나누고 선물 받아 가세요~" 하며 어른, 아이, 방문객, 직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가가 인사하고 말을 건네는 걸 즐거워할 사람이 있을까?
놀랍게도 있다. 나다. 말 한마디로도 서로 모르는 사이지만 웃으며 인사하고 감사해하고 그런 순간들이 마음 따뜻해지고 좋았다. 그런 내가 참 특이하다고 생각했고, 유난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나를 마주한 사람에게 나의 유난스러웠던 시간이 좋은 기억이 되었다고 직접 나에게 말해준 순간이었다.
남이 원하지 않은 진심은 부담이고 강요가 된다는 걸 나이가 들어가며 알게 되었다. 그런 불편한 진실을 마주한 뒤로 내 진심은 내 맘속에 고이 묻어두는 순간들이 많아졌었다.
추운 겨울, 따뜻한 연말이라는 말을 빌려 맘속에 묻어두었던 내 진심을 불쑥 꺼내도 부담이고 강요이기보다는 따뜻함으로 전달될 수 있는 계절임을 느낀 오늘. 내 진심들이 여름날 해변의 뜨거운 모래보다는 겨울에 길가에서 사 먹은 붕어빵처럼 느껴지길 바라며 어제보다 겨울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느낀 바, (강약 조절만 잘한다면) 진심으로 임하고, 진심으로 대하고 사는 일이 삶을 더 풍요롭고 재미있게 만들어주는 건 아닐까?
어쩌면 나는 삶을 꽤 즐기며 사는 중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