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 탐구 이야기
오늘의 글∣우주 > 빅뱅 > 블랙홀
탈출속도라는 개념이 있다. 어떤 물체가 지구나 별 같은 천체의 중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속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지구의 중력을 벗어나기 위한 지구의 탈출속도는 지표면으로부터 초속 11.2킬로미터 정도이고, 태양의 경우 탈출속도가 태양의 표면으로부터 초속 617.5킬로미터 정도에 달한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어떤 물체가 탈출속도에 이르지 못하면 그 천체를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구와 태양의 경우에서 보듯 질량이 클수록, 다시 말해 중력이 클수록 탈출속도는 더 빠른 속도를 요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호기심 많은 천체물리학자들은 그들다운 기상천외한 상상을 품었다. 빛조차 탈출하지 못할 정도의 탈출속도를 지닌, 엄청난 중력을 가진 천체가 존재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며 말이다. 이 상상은 이론적으로 불가능하지 않았다. 일정 정도 이상의 질량, 즉 일정 정도 이상의 중력을 갖춘 천체에서는 초속 30만 킬로미터에 달하는 빛의 입자도 탈출이 불가능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다만 그렇게 큰 중력을 가진 천체가 있을까라는 의구심과, 설령 그런 천체가 있다 하더라도 파동의 성격을 지닌 빛조차 탈출하지 못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라는 이론상의 걸림돌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그 의구심과 걸림돌이 해소되었다. 블랙홀이 실제로 관측되었기 때문이다.
가상의 블랙홀이 있다고 전제했을 때, 그 블랙홀의 뒤편에 있는 별은 지구에서 도넛 형태로 관측이 될 것이다. 다른 방향으로 뻗어가던 빛이 블랙홀의 영향으로 굴절되어 지구에서 도넛 형태로 관측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1783년 존 미첼(John Michell, 1724~1793, 영국)이 빛을 삼킬 수 있을 정도의 중력을 가진 천체의 존재 가능성을 언급한 이래, 1964년 백조자리의 X-1이 천문 관측 사상 최초로 블랙홀임이 증명되었고, 2016년 M87이 블랙홀로서는 최초로 화상으로 촬영되었다. 상상과 이론의 세계에 존재하던 블랙홀을 현실 세계로 끄집어낸 순간이었다. M87은 당연히 도넛 형상을 띠고 있다.
블랙홀은 어떤 조건에서 어떤 과정을 거치며 생성될까? 태양의 몇 배 정도 되는 별은 초신성폭발을 일으키고 난 후 마지막 단계에서 중성자별을 남긴다. 그런데 그 중성자별의 질량이 태양 질량의 다섯 배 이상이 되면, 그 별은 블랙홀로 진화해 가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질량이 태양의 다섯 배 미만인 중성자별의 경우 중력과 내부압력이 평형상태를 이루며 일정한 형상을 유지하게 되는 데 비해, 질량이 다섯 배 이상인 중성자별의 경우 이 평형상태가 깨지게 된다. 다시 한번 중력수축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렇게 중력수축이 일어나게 되면 결국에는 극한에 가까울 정도로 부피가 작아지게 되고, 반대로 밀도는 무한대(無限大)에 가까워지게 된다. 블랙홀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외력(外力)의 도움이 없는 자연상태에서의 이야기이다. 외부로부터 항구적인 동력을 지원받을 경우 탈출속도와 관계없이 특정 천체로부터 벗어나는 게 가능하다.]
<블랙홀 M87>
사상 최초로 촬영에 성공한 블랙홀 M87의 모습이다.
도넛 형태의 빛은 블랙홀 뒤편에 있는 별의 빛이다.
빛이 굴절된 후 우리에게 도착한 관계로 도넛 형태로 보인다.
도넛 가운데에 있는 검은 경계선은 사건의 지평선 즉 event horizon이다.
블랙홀의 프로필을 잠깐 알아보자. 크기가 무한소(無限小)에 가까울 정도로 작아진 블랙홀 그 자체를 우리는 특이점(singularity)이라 부른다. 이 특이점은 크기가 무척이나 작다. 우리 손톱보다도 작고, 손톱에 낀 먼지보다도 작다. 좀 전의 언급처럼 그것은 크기가 너무나 작아 무한소라 해도 될 정도다. 이는 사실상 부피가 없다는 말이다. 당연히 부피가 없을 정도로 작은 것에 태양의 수십 배가 넘는 질량이 존재하고 있어 밀도는 당연히 무한대에 가까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앞서 블랙홀이 관측되었다고 했는데 이는 블랙홀의 특이점을 관측한 게 아니다.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 사상한계라고도 한다.)을 관측한 것이다. 사건의 지평선이란 블랙홀에 의해 빛이 빨려 들어가게 되는 구간과 빨려 들어가지 않는 구간과의 경계선을 이르는 말이다. 특이점을 블랙홀 자체라고 한다면, 이 사건의 지평선은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외형상의 블랙홀이라 할 수 있다. 짐작했겠지만 우리는 이 사건의 지평선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다. 빛조차 빠져나오지 못하는 구간이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당연히 특이점도 관찰할 수 없다.
블랙홀은 생성 과정이 이토록 특이한 것만큼이나 매우 독특한 성질을 지니고 있다. 횡포에 가까울 정도로 매우 고약한 성질을 말이다. 빛의 진행 방향을 굴절시키고 심지어 시간까지 왜곡시킨다. 빛의 경우, 앞서 이야기했듯 블랙홀은 중력이 너무나도 강해서 빛을 아예 흡수해 버린다. 다른 천체에서 발산된 빛이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 안에서는 그대로 흡수되어 버릴 뿐이다. 그런데 사건의 지평선 근처를 지나가던 빛은 완전히 흡수되지 않고, 블랙홀 쪽으로 진행 방향을 조금 굽히게 된다. 빛이 굴절되는 것이다. 빛의 방향까지 굴절시키는 블랙홀의 고약한 성질 덕분에, 우리는 블랙홀을 관측할 수 있다. 비록 도넛의 형태지만 말이다. 그리고 <시간> 편에서 이야기했듯 블랙홀은 시간조차 왜곡시켜 버린다. 극도로 강력한 중력의 힘 때문에 블랙홀 근처에서는 시간 지체 현상이 일어나게 되고, 특이점에 가까워질수록 시간 정지에 가까운 현상이 일어난다. 어쩌면 특이점에서는 시간이 멈춰 버릴 수도 있다.
이러한 블랙홀도 매우 다양한 유형으로 존재하고 있다. 형태별로도 다양한 유형의 블랙홀이 있고, 크기별로도 다양한 유형의 블랙홀이 존재한다. 여기서는 크기에 따른 블랙홀의 유형 중에서 항성 블랙홀과 중간질량 블랙홀, 초대질량 블랙홀에 대해서 잠깐 살펴보자.
항성 블랙홀(stellar black hole)은, 앞서 이야기하던 태양 질량의 수십 배가 넘는 중성자별이 진화하면서 만들어진 블랙홀이다. 항성 질량 블랙홀이라고도 한다. 우주에서 가장 흔한 형태의 블랙홀로 질량이 태양의 5~175배 정도에 이른다. 175배에 이르는 것이 현재까지 발견된 것 중 가장 큰 항성 블랙홀인데 더 큰 것이 발견될 수도 있다. 항성 블랙홀은 앞서 이야기한 대로 질량이 일정 크기 이상되는 별들이 초신성폭발을 일으킨 후 중력수축이 일어나면서 생성된 그 블랙홀이다.
중간질량 블랙홀(intermediate-mass black hole)은 항성 블랙홀보다는 크고 뒤에서 언급할 초대질량 블랙홀보다는 작은 블랙홀이다. 구상성단 47Tuc에서 태양의 2,200배의 질량을 가진 중간질량 블랙홀이 발견되기도 했다. 중간질량 블랙홀의 생성원인과 과정은 명확하지 않은데, 항성 블랙홀이 다른 천체들과 합쳐져서 생성되었다는 가설이 유력하다.
끝으로 초대질량 블랙홀(supermassive black hole)은 질량이 최소 태양의 10만 배 이상인 초거대 블랙홀을 의미한다. 질량이 태양의 최대 660억 배에 이르는 초대질량 블랙홀이 발견되기도 했는데, 이것은 극대질량 블랙홀(ultramassive black hole)이라고도 불린다. 초대질량 블랙홀 역시 생성원인이 명확하지 않다.
다만 우주 생성 초기 원시가스가 압축될 때 항성 단계를 거치지 않고 태양의 수천에서 수만 배에 달하는 질량을 가진 블랙홀의 씨앗들이 한꺼번에 탄생했을 거라는 가설 등이 있다.
그런데 이 초대질량 블랙홀은 어마어마한 스펙의 소유자다. 우주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은하의 중심부에 초대질량 블랙홀이 자리하고 있을 거라고 추측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 초대질량 블랙홀들이야말로 은하들의 주인이 되는 셈이다. 당연히 우리은하도 중심부에 초대질량 블랙홀이 존재할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실제로 우리은하의 핵 부근에서 강력한 감마선이 방출되는 것을 관측할 수 있는데, 이 사실로 우리은하의 중심부에도 초대질량 블랙홀이 존재한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초대질량 블랙홀은 주변의 물질들을 마구 흡수하며 성장해 간다. 그 과정에 물질들이 서로 간의 마찰에 의해 엄청난 열과 감마선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은하의 핵 부근에서 감마선이 방출된다는 것은 초대질량 블랙홀의 존재를 강력하게 시사하기 때문이다. 우리은하를 지배하고 있는 초대질량 블랙홀의 질량은 태양의 431만 배 정도에 이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빛조차 흡수하고 시간까지 왜곡하는 블랙홀의 워낙 독특한 성격은, 우리들에게 온갖 상상을 불러일으켜 주고 있다. 웜홀이라는 재미있는 개념이 한 예다. 웜홀은, 누군가가 블랙홀의 특이점으로 여행을 하게 된다면 그 특이점을 통해 공간과 시간을 뛰어넘어 우주의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라고 상상하면서 만든 개념이다. 이동하면서 들어가게 될 특이점과 어디론가 나가게 될 특이점 사이의 통로를 웜홀이라면서 말이다. 물론 이는 가상의 개념으로, 가설의 단계에도 미치지 못하는 아이디어일 뿐이지만 우리들에게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치게 해주고 있다.
이와 달리 우리를 오싹하게 하는 무서운 상상도 있다. 언젠가는 우주의 모든 별들이 수명을 다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종국에는 이 우주에는 블랙홀들만 남아 있게 될 것이라는 추측이 그것이다. 밤하늘을 수놓던 반짝이는 별들도 그 빛을 다 거두어들이고, 모든 것들이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면서 우주에는 암흑만이 남게 된다는 이야기다. 아직 우리에게는 아직 수십, 수백억 년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겠지만, 만약 이 상상이 현실이 된다면 별의 후예로 태어난 우리 인간도 결국에는 블랙홀로 돌아가게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