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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에렉투스의 등극 - 지상 최강자 그리고 땀샘

by 할리데이

<이미지> 투르카나 소년(호모 에렉투스) / Mauricio Antón, published with Alan Turner



호모 에렉투스는 이제까지의 선행인류들과는 모든 것이 달랐다. 우선 그들은 해부학적으로 초기선행인류들의 겉모습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현생인류 못지않게 키가 170 센티미터 정도까지 커졌고, 화식(火食)의 영향 즉 부드러운 음식을 먹게 된 덕분에 턱뼈와 치아 또한 현대인과 비슷할 정도로 작아졌다. 또 직립에 따라 두개골을 떠 받치게 된 인체 구조적 영향, 육식과 화식에 따른 충분한 영양의 공급, 도구의 사용에 따른 진화상의 압력 등의 요인으로 뇌의 용량은 1,000cc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털을 거의 벗어 버리고 피부를 햇빛에 직접 노출시키면서 땀샘을 발달시켰다.

특히 이 땀샘의 발달은, 인류의 진화과정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이벤트로 작용하게 된다. 땀샘이, 정교한 석제 도구의 사용과 상호작용하면서 인류가 지구촌 최상의 포식자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호모 에렉투스가 등장하기 전의 인류종들은 그저 그렇고 그런 보잘것없는 존재였다. 채집만으로 삶을 영위했으며 그 과정에 늘 맹수들의 위협에 시달리는 삶을 살아야 했다. 주변의 이웃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하찮은 존재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호모 에렉투스는 선배들과 달랐다. 날카로운 석제 도구로 공격용 무기를 장착하고, 여타 동물들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신비하고 영험한 ‘불’로 훌륭한 보호막을 쳤다. 이제 맹수들조차 감히 어찌할 수 없게 된 호모 에렉투스는 땀샘을 지렛대 삼아 최상의 포식자 자리를 향해 나아가게 된다.


오늘날에도 사람과(사람科)의 몇몇 포유동물을 제외한 대부분의 동물들은 땀샘이 없다. 피부가 털 또는 깃털로 덮여 있어서 땀이 소용없기 때문이다. 호모 에렉투스는 이 틈새를 파고들었다. 덩치가 큰, 그리고 빠른 발을 가진 대형 초식동물 사냥에 나선 것이다. 다른 초식동물들은 비록 빠른 발은 가졌을지언정 결코 먼 거리는 달릴 수 없었다.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서 달아오른 몸의 열을 식혀줄 냉각장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단거리 주자였을 뿐, 마라토너가 아니었다. 그것들을 사냥할 때면 호모 에렉투스는 사냥감들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끈질기게 쫓아갔다. 땀으로 몸을 식혀가면서 말이다.

냉각장치―땀―로 몸을 식혀가며, 끈질기게 추적해 오는 호모 에렉투스를 따돌릴 수 있는 사냥감은 없었다. 마침내 주먹도끼로 그것들을 때려잡고, 날카로운 박편(薄片) 석기로 내장을 가르고 살을 발라 먹었으며, 뼈를 쪼개어 골수를 빼먹었다. 호모 에렉투스가 주변의 하찮던 이웃에서 최상의 포식자로 올라서는 장면이다. 불을 다루고, 언어를 매개로 고도화된 사회체제를 운영하며, 첨단무기까지 사용하는 호모 에렉투스에게 대적할 수 있는 동물은 없어졌다.


호모 에렉투스가 이룬 성취는 참으로 많다. 해부학적 진전, 영양섭취 방식의 개선(화식火食), 사회운영 체계의 획기적 전환(일부일처제), 도구의 제작․사용․기술 전승을 통한 문화의 창조 등등. 이뿐이 아니다. 불을 다루기 시작했고, 비록 오늘날과 같은 복잡한 문법체계를 갖추진 않았지만 언어란 것을 처음으로 구사하기까지 하였다. 사실 인류 진화사에 있어서의 주요한 사건들은 모두 호모 에렉투스 대에서 일어났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벌거벗은 몸으로 바깥을 활보하고, 겨우 돌멩이밖에 사용할 줄 몰랐으며, 동굴에서 거주하는 미개한 원시인. 이것이 우리가 흔히 접하는 호모 에렉투스의 이미지다. 하지만 아니었다. 호모 에렉투스는 모험심과 진취성으로 정신무장을 한 채, 첨단 기술로 세상을 제패한 우리의 훌륭한 선조였다. 200만 년이나 종의 생명을 이어올 정도의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나아가 현생인류인 우리들을 탄생시킨 위대한 인류였던 것이다.


*이번 편은, 몇 개월 뒤 발행할 '인류의 기원'편을 사전 정리하여 미리 게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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