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계의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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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빅뱅> 장에서 우주의 탄생과, 은하와 별들의 생성 과정을 알아봤다. 빅뱅 당시의 그 한 점이 어디서 왔는지, 폭발 전에는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그 폭발이 왜 일어났는지는 아직 밝혀내지 못하고 있지만 여하튼 이제 우리는 우주의 탄생―빅뱅― 과정에 대해서는 소상하게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태양계로 넘어오면서 오히려 이야기는 달라진다. 더 작은 우주이자 더 가까운 우주이기도 한 태양계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형성과정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정설(定說)이 없기 때문이다. 코페르니쿠스에 의해 행성들이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는 것이 밝혀진 뒤로 태양계 형성에 관한 많은 가설들이 등장하였지만 아직까지 어느 것도 정설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날 행성물리학자들은 이론으로서가 아니라 표준화된 모형으로서, 태양계의 형성과정을 ‘표준 시나리오’라는 이름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표준 시나리오는 ‘미행성 성운설(微行星 星雲說)’이라고도 불린다.
46억 년 전쯤, 한 덩어리의 성간물질이 우리은하의 변방을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주로 수소와 헬륨으로 이루어진 이 덩어리는, 애초에는 농도가 옅은 평범한 성간물질에 불과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가까이에 있던 초신성이 폭발하게 되면서 그 충격파에 밀려 덩어리진 물질들이 한곳으로 모이게 되었다. 이제 이 덩어리는 밀도가 높은 특별한 성간물질이 된 것이다. 수소와 헬륨, 그리고 초신성 폭발의 잔해에서 나온 소량의 무거운 원소들로 이루어진 덩어리, 다름 아닌 원시태양계 성운이 탄생한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농도가 짙어진 원시성운의 물질들은 서로 뭉치기 시작했다. 이때 덩치가 커진 원시태양계의 중심부에서는 서서히 중력이 발생하게 된다. 그리고 중력의 도움으로 주변의 물질들을 더욱 흡수하면서 밀도와 온도가 높아진 중심부에서는 중력수축작용이 일어나게 된다. <별의 일생> 편에서 이야기한 별이 탄생하기 위한 조건이 갖추어진 것이다. 이렇게 원시 태양이 막 생겨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원시 태양은 본격적으로 핵융합을 시작하게 되고, 원시 태양 내부의 압력과 중력의 힘이 균형을 이루며 중력수축은 멈추게 된다. 완성된 형태의 별, 태양이 탄생하는 장면이다.
이 과정에서 원시태양계 물질들은 태양 주위를 돌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원시 태양이 생성되기 직전, 중력수축이 한창일 무렵 성간물질들이 원시태양계의 중심부로 빨려 들어가는 과정에 소용돌이를 일으키면서다.* 하지만 태양이 안정적인 상태로 접어들면서, 다시 말해 중력수축이 멈추게 되면서 태양으로 빨려 들어가던 물질들이 더 이상 소용돌이를 일으키지 않고 궤도를 따라 회전하게 된다. 소용돌이 궤적을 그리며 중심부를 향하던 물질들이 운동량 보존의 법칙에** 의해 그냥 원반 형태의 회전운동을 하게 된 것이다.
이때 미처 태양에 흡수되지 못한 물질들이 자기네들끼리 모이고 뭉치면서 미행성으로 자라나게 된다. 미행성(微行星)이란 원시 항성계에서 성간물질이나 얼음들이 정전기 등의 마찰력으로 뭉쳐져(이를 ‘강착’이라고 한다.) 크기가 수 미터에서 수 킬로미터에 이르는, 그러나 행성 등의 천체로는 성장하지 못한 작은 천체 덩어리를 말한다. 이 작은 덩어리들은 당초 중력의 힘으로 합쳐진 게 아니었지만 미행성으로 성장하면서 아주 작지만 자체 중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서서히 중력에 의한 결합을 시작하면서 크기가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미행성들은 이렇게 원시행성으로 성장해 가게 되는데, 일부는 지구형 고체 행성으로, 나머지 일부는 목성형 가스 행성으로, 그리고 천왕성 같은 얼음 행성으로 성장해 간다.
[*유체(流體)가 한곳으로 모여들 때, 유체를 구성하는 물질의 밀도 차이, 점성, 자기력 등으로 인해 속도 차가 발생하게 되는데, 이 속도 차이로 인해 소용돌이가 발생하게 된다. 우주 공간에서도 마찬가지다.]
[**운동량 보존 법칙이란, 운동량은 저절로 생겨나지도 없어지지도 않는다는 법칙이다. 특별한 사유로 어떤 물체에 운동량이 발생하게 되면 그 물체는 그 운동량을 계속 유지한다. 다른 물체에 당초 운동량을 전가하는 경우에만 운동량 감소가 일어난다. 그리고 여기서의 운동량은 엄밀하게는 각운동량(角運動量)을 의미한다. 각운동량이란 원운동을 하는 물체가 가지는 운동량이다.]
<위> 원시행성계 원반 상상도 - <이미지> David A. Aguilar
<아래> 원시행성계 원반 HH 212 - <이미지> ALMA (ESO/NAOJ/NRAO)/ Lee et al.
태양계의 행성들과 소행성은 모두 같은 궤도면에서 공전을 하고 있다. 이것은 같은 시기에 같은 연원을 가지고 그것들이 탄생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태양계의 행성들도 처음에는 위의 사진과 같은 원시행성계 원반에서 시작하였을 것이다.
여기서 잠깐, 뒤이어질 이야기의 이해를 돕기 위해 ‘동결선’이라는 개념을 알아보고 가자. 태양계의 권역 내에는 동결선이라는 게 있다. 동결선은 온도가 낮아져 물이 얼음으로 존재하기 시작하는 경계선을 말한다. 동결선은 소행성대(화성 궤도의 바깥쪽에 위치)와 목성 궤도의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 동결선은 지구형 행성 구간과 목성형 행성 구간을 현실적으로 나누고 있는 기준선이기도 하다. 태양에서 가까운 곳에 있던 수소나 헬륨 같은 가벼운 물질들은 태양풍에 밀려서 동결선 바깥으로 가게 되지만, 상대적으로 무거운 암석형 물질들이 동결선 안쪽에 많이 남게 되면서다. 태양계 공간 배치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동결선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제 다시 행성의 성장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시간이 더욱 흘러감에 따라, 이제 미행성들은 중력의 힘으로 서로 결합하게 되었다. 이때 동결선 안쪽에서는 미행성들이 단단하지만 크기가 작은 지구형 행성으로 성장하게 된다. 가볍지만 태양계 내 물질 구성의 99퍼센트 비율을 차지하는 엄청난 양의 물질인 수소와 헬륨이 동결선 바깥으로 밀려나고, 동결선 안쪽에는 적은 양의 단단한 물질들만 남았기 때문이다. 한편 동결선 바깥쪽에서는 미행성들이 다시 한번 강착 과정을 거치게 된다. 물의 얼음으로 된 주요 미행성들이 얼음의 점착성을 활용해 주위의 가스들과 강착을 시작한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미행성들은 중력을 지렛대 삼아 동결선 바깥쪽에 풍부하게 널려 있던 수소와 헬륨을 마구 흡수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결국 그것들은 목성과 토성이라는 거대 행성으로 폭풍 성장을 하게 된다. 또 다른 한편으로 천왕성과 해왕성은 커다란 얼음 행성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이들 행성은 태양과의 거리가 멀어, 온도가 영하 190도 이하까지 내려가는 아주 차가운 지역에 있기 때문에 메탄과 암모니아가 얼음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이것들이 강착과 중력에 의한 충돌‧결합 과정을 거치며 얼음 행성으로 성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태양이 만들어지고 행성들이 만들어지면서 태양계는 서서히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화성과 목성 사이에서는 행성으로 채 자라지 못한 미행성들이 소행성대를 이루게 되었고, 해왕성 너머에서는 수많은 미행성들이 카이퍼 벨트를 형성하는가 하면, 태양계의 아득한 경계 지점에서 오르트 구름대를 형성하기도 했다. 또 미처 행성으로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준행성체로 만족해야 했던 왜행성들, 태양의 품이 그리워 이따금 고개를 내미는 혜성들까지 탄생하면서 태양계는 서서히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태양을 중심으로 행성들과 여러 구조물들이 중력의 끈으로 서로 연결되어, 46억 년 동안이나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운영되고 있는 체계, 바로 우리들의 태양계(太陽系, Solar System)다. 그리고 이 태양계는 우리은하의 한 편에서 은하의 일원으로 당당히 자리하고 있다. 4만 광년 정도 떨어진 곳에 프록시마 센타우리라는 별을 이웃으로 두고, 우리은하의 중심부로부터 약 2만 6천 광년 정도 떨어진 곳에서, 초속 220킬로미터 정도의 속도로 우리은하의 둘레를 열심히 공전하면서 말이다.
아버지 같은 주인공 태양과, 지구와, 형제 행성들이 중력이라는 끈끈한 가족애로 서로 의지하면서 우주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해 온 이야기, 태양계 성장기였다. 다음 편에서는 태양계라는 집의 구조물들과 구성원들을 한 번씩 만나보자. 이어질 이야기는 집의 주인이자 모든 구성원들의 아버지인 태양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