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바라보는 사람의 눈 / 배경사진 뉴튼(1642~1727, 영국)
<아버지와 자전거>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아버지로부터 수도 없이 듣던 말이 있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라는 감탄의 말이다. 1930년대 중반에 태어나 봉건시대―가령 조선시대―와 진배없던 유소년 시절을 보낸 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바깥에서 서양의 신기술이 접목된 진기한 물건을 보게 되거나, 그와 관련된 소식을 접하게 되면 습관처럼 내뱉던 놀라움과 경외심이 섞인 감탄사였다. 집채보다 더 큰 기차가 철로 위를 내달리고, 그 위로는 거대한 쇳덩이가 하늘을 날며, 텔레비전이라 불리던 조그마한 상자 속에서 사람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은 경이로움 자체였던 것이다. 병원이란 곳은 죽어가던 사람도 살려냈고, 60년대 후반의 어느 날에 이르러선 사람이 달에까지 발을 내딛게 되었다. 그야말로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인가? 사실 그 무렵 아버지는 타고 다니시던 두발자전거를 보고도 늘 감탄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때 나는 아버지의 눈빛과 말 속에서, 서양의 신기술에 대한 경외심과 기술 만능에 대한 숭배심을 어렴풋이 느꼈다. 그 당시 아버지는 기대와 희망에 한껏 부푼 채, 사람들이 이뤄낸 그 신기술이 세상에서 불가능이란 단어를 없애 줄 것이라 확신하고 계셨다.
<열광하는 유럽>
16세기에서부터 18세기경에 이르는 시기, 유럽에서는 더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막 눈 뜨기 시작한 과학이라는 학문적 성취에 사람들이 열광하고 있었던 것이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사람들에게 하지 못할 것을 없게 해 주었고, 더 이상의 미지(未知)의 영역을 없게 해 주었다. 과학이라는 도구로 파헤치는 진리의 세계는 경이로웠다. 그것은 나의 아버지가 가졌던 경외감과 숭배, 기대와 희망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오롯이 자신들의 경험과 지식으로 이뤄낸 성취는 신에 대한 도전까지도 서슴지 않게 해 주었다. 하늘에라도 닿을 듯하던 유럽인들의 자신감과 자긍심은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과학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코페르니쿠스의 예리한 눈은 우주의 중심이 지구가 아닌 태양임을 밝혀냈고, 뉴턴의 호기심은 드디어 세상과 우주를 관통하는 이치인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과학이 막 혁명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세상의 중심은 오로지 神?>
르네상스 이전의 인류사회는 오로지 하나의 절대 가치만이 있었다. 동서양 할 것 없이 각각의 사회에는 제각각 오로지 하나의 진리만이 자리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유럽의 성경 말씀, 이슬람 사회의 코란의 가르침, 인도의 힌두교 경전, 동아시아의 공자 어록은 절대 진리였다. 그것은 절대 가치이자 진리였고, 사회의 보편적 생활 규범이었으며, 선현(先賢)들이 후대 사람들을 위하여 만들어 놓은 절대 무결(無缺)의 가르침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사회 모든 분야에 적용되었다.
유럽의 학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우주와 자연의 현상을 파악하고 이치를 탐구하는, 거대 담론을 다루는 과학이라는 학문도 고작 자연철학이라는 이름의 철학의 한 분과에 불과했다. 정작 그 철학조차도 신학의 보조과목에 불과했을 뿐이다. 게다가 당시의 모든 학문은 성경의 말씀을 벗어날 수 없었다. 성경의 가르침을 해석하고 고증하고 실천 윤리를 강구하는 수단으로서의 학문에 불과했다. 절대 불변의 진리는 이미 정해져 있으므로 새로움에 대한 탐구는 당연히 없었다. 세상의 중심은 오로지 신(神)이었다.
<미지의 진리와 자신을 향하는 사람의 눈>
하지만 그 무렵 유럽에 불기 시작한 르네상스의 바람은 유럽 사회의 분위기를 서서히 바꾸고 있었다. 어쩌면 사람이 세상의 중심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세상에는 수도 없이 많은 물상(物象)이 있는 만큼 진리 또한 하나만이 아니라 여러 갈래의 진리가 존재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오늘까지의 진리이던 것―엄밀히는 진리라고 알고 있던 것―이 내일은 진리가 아닌 것으로 밝혀질 수도 있지 않을까?
르네상스와 영향을 주고받던 당시 유럽 사회의 인본주의적 분위기는 학문 분야에도 커다란 혁신을 불러왔다. 신의 세상이 아닌, 자연현상과 인간 세상에 대한 탐구가 시작된 것이다. 자연현상을 꿰뚫을 수 있는 물리(物理) 법칙―여기서의 물리는 물리학을 일컫는 ‘물리’가 아닌 보다 넓은 의미의 ‘사물의 이치’를 의미함.―과 인간들의 세상살이를 보듬을 수 있는 인문(人文) 법칙, 다시 말해 진리에 대한 탐구가 시작되었다. 신을 향하던 사람의 눈은 미지의 진리와 사람 자신을 향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 드디어 과학은 학문의 한 분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나아가 과학은 학문적 성취를 위한 접근법에 실험과 데이터 활용이라는 방법을 도입함으로써 천문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으로의 학문적 분화까지 이루어 냈다. 결과는 엄청났다. 더딘 속도로 인해 당시 사람들은 체감하지 못했겠지만 오늘날까지 이르는 그 결과는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유럽에서의 과학의 성과는, 당시 세계 전체의 부와 군사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던 중국을 추월하게 되는 계기를 넘어 훗날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향유하게 될 문명이 결국 유럽 문명의 확대판으로 편성되는 발판을 만들어 주기까지 했던 것이다. 진리와 인간을 향한 시각으로의 변화가 인류 문명의 물줄기를 돌려버리는 세계사적 사변을 초래하였다.
<과학혁명 들여다 보기 04-02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