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의 후광, 인쇄술, 권력의 후원
앞서 유럽에서 일어난 과학혁명은 유럽이 중국을 추월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 뿐 아니라 오늘날 인류의 문명이 결국 유럽 문명의 ‘확대판’으로 편성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렇다면 세계의 어느 곳에서도, 특히 당시 세계 최고문명국이자 최강대국이던 중국에서도 일어나지 않았던 과학혁명이 왜 유독 유럽에서만 일어나게 된 걸까? 도대체 유럽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혁명이라고까지 불리는 과학의 질적, 양적 발전이 있었던 걸까?
르네상스에서 촉발된 인간중심주의적 사회분위기와 그에 따른 학문에서의 접근법의 쇄신이 과학혁명을 불러온 계기가 되었다고 이야기하였다. 하지만 이것에 더해 당시 유럽 사회는 더욱 복잡하고 다양한, 생동감 넘치는 사회적 분위기, 그리고 보이지 않는 사회적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었다. 자신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오랜 기간 동안 내공(內功)이 쌓여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그 내공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나? 과학혁명의 배경을 한번 살펴보자.
첫 번째 배경은 단연 르네상스의 후광이다. 글머리에서부터 이야기한 인간중심주의적 사회 분위기 자체 말이다. 여전히 딱딱하기만 했던 사회 분위기 탓에 진실을 이야기했다는 죄만으로 갈릴레오는 평생을 가택에 연금당하기도 했지만, 어쨌건 당시에는 인간을 노래하고, 새로운 진리 찾고자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이러한 르네상스의 후광에 더해 당시 유럽 사회는 종교개혁과 그에 따른 구교와 신교의 대립으로 인해 더욱 엄격한 교조주의화 경향을 띄게 되지만 역설적으로 이는 오히려 지식인들 사이에 사조(思潮)의 자유로의 변화라는 불을 지피게 하였다.
신의 곁을 떠나 바라본 자연현상과 인간사(人間事)는 그야말로 새로운 지식과 진리의 보고(寶庫)였다. 망원경으로 바라본 광활한 하늘과,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극미(極微)의 세계는 그야말로 새로운 세상이었다. 실험하고, 관찰하고, 관측할 거리가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대상들 간의 연결 고리와 운영 원리를 찾아가는 일은 당시의 지식인들에게 환희 자체였던 것이다. 르네상스의 결과로 열려진 인간의 지성과 이성은 미래로 가는 문까지 활짝 열어젖혔다.
과학혁명을 불러온 두 번째 배경으로는 인쇄술의 발달과 대중화를 들 수 있다. 1448년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하면서 인쇄술이 개발되기 시작했는데, 절묘하게도 때마침 로마 교황청에서 면죄부 발행이라는 커다란 인쇄 수요를 발생시켰다. 아이러니하게도 거기에 대응한 루터의 ‘면죄부 반박문’ 발행은 또 다른 인쇄 수요를 불러왔고, 뒤이은 성서(聖書) 발간은 더욱 큰 인쇄 수요를 불러오며 활자를 이용한 인쇄 대중화에 쐐기를 박아 버렸다. 이는 지식의 대중화와 보편화를 불러왔다. 이런 기술적 인프라에 힘입어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 뉴턴의 위대한 저작들이 유럽 곳곳으로 퍼져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인쇄술의 발달과 대중화는 유럽의 지식 유통시스템을 획기적으로 진전시키며, 과학혁명을 일어나게 하였고 나아가 그것을 지속가능하게 한 일등공신이 되었다.
과학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던 세 번째 배경은 정치 권력의 적극적 후원이었다. 15세기 당시 유럽은 식민지 개척―정복―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면서 바깥 세계로의 진출을 적극 모색하고 있었다. 제국주의의 원형이 싹트기 시작했던 것이다. 때마침 새로운 조사방법론을 도입하던 과학과 기술은, 야망에 젖은 유럽 권력자들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 주었다. 항해술, 지도제작기술, 나침반제조기술 같은 기술적 성과와 유럽의 정치 권력들은 서로 시너지 효과를 주고받으며 동반 성장을 이루게 된다. 당연히 그 중심에는 과학이 있었다. 이제 유럽의 모든 정치 권력들이 과학을 장려하고 연구 활동을 후원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권력은 물론 스페인, 영국, 프랑스 같은 거대 왕정 권력까지 과학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자임했던 것이다. 영국의 왕립학회와 프랑스의 과학아카데미 설립은 당시의 시대상을 너무나도 잘 보여준다. 이 또한 당연한 이야기지만 앞에서 언급한 웬만한 학자들 역시 왕립 또는 공립 연구소―천문대―에서 위대한 학문적 성과를 창출했다. 뉴턴이 영국의 왕립학회장을 지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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