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의 시작
과학혁명의 결과는 엄청났다. 과학혁명의 덕택으로 과학이라는 학문 분야는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급격한 성장을 이룰 수 있게 되었고, 유럽 사회는 기술사회로의 진입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 더해 유럽 사회는 과학혁명의 성과에 힘입어 성숙한 시민사회로 가기 위한 문까지 활짝 열어젖힐 수 있게 되었다.
과학혁명이 있고 난 후, 19세기에 이르러 과학은 거칠 것 없는 질주를 시작하였다. 뉴턴에 의해 발견되고 파악된 우주의 원리는 당시는 물론 후세의 과학자들에게 무한한 자신감과 자부심과 영감을 심어 주었다. 치밀한 실험과 관찰, 열정적인 탐구만 있다면 이제 더 이상 하지 못할 게 없었고, 알지 못할 게 없었다. 사람들은 탐구했고 실험하고 관찰했다. 모든 것에 도전했다.
라부아지에(Antoine-Laurent de Lavoisier, 1743~1794, 프랑스)는 공기 속에 숨어있던 산소를 찾아내고 ‘질량보존의 법칙’을 발견하면서 화학의 기틀을 다졌고, 다윈(Charles Robert Darwin, 1809~1882, 영국)은 종의 기원에서 어쩌면 사람과 원숭이의 조상이 같을지도 모른다는 무시무시한 사실을 발표했다. 파스퇴르(Louis Pasteur, 1822~1895)가 미생물(微生物)의 세계를 들여다보고선 백신(Vaccine)을 개발하는가 하면, 패러데이(Michael Faraday, 1791~1867, 영국)와 맥스웰(James Clerk Maxwell, 1831~1879, 영국)은 전기와 자기(磁氣)의 존재와 작용원리를 밝혀내면서 사람들을 전자기(電磁氣)의 세계로 안내하였다. 또한 이 시기에 여러 열역학자들에 의해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라고도 불리는 열역학 제1 법칙이 정립되었는데, 특히 독일의 클라우지우스(Rudolf Julius Emanuel Clausius, 1822~1888)는 또 하나의 사변적 발견으로 불리는 열역학 제2 법칙인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을 발견하기에 이른다. 과학혁명의 자양분을 듬뿍 머금은 19세기는 그야말로 거칠 것 없는 과학 질주의 시기였다.
그리고 이러한 과학의 질주는 당연히 기술의 발전을 불러왔다. 물론 때때로 기술의 진전이 과학의 진전을 뒷받침하기도 했었다. 안광학(眼光學) 기술의 발전이 갈릴레오가 고배율 망원경을 만드는 것을 가능하게 해 주었고, 인쇄술의 발달이 과학혁명의 기반을 다져 주기도 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과학혁명 당시 이룩한 과학의 발전이 기술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패러데이 등이 발견한 전자기의 원리는 훗날 지구의 밤을 밝혀줄 전기(電氣) 사회로의 마중물이 되었고, 나아가 오늘날 IT 사회의 기초가 되는 디지털혁명의 출발점이 되었다. 뉴턴의 운동법칙과 만유인력의 법칙은 자동차를 비롯한 모든 움직이는 물체 설계의 기본원리가 되었으며 나아가 오늘날 지구 상공을 누비고 있는 인공위성 운행원리의 모태가 되었다. 다윈과 멘델의 생물학과 유전학적 지식, 파스퇴르의 미생물학은 의학의 발전을 획기적으로 앞당겼으며, 한편으로 생명공학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과학의 발전은 기술혁신의 밑거름이 되어왔으며 현대 기술사회의 첫걸음이 되었다. 이는 결국 인류의 삶의 질을 향상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아직도 지구촌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빈곤과 착취의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지만, 인간 사회의 평균적 삶의 질은 분명 엄청난 상향을 이루었다.
한편 과학혁명은 앞서 언급했듯 유럽의 시민사회가 한 단계 성숙해 가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하게 된다. 과학혁명 초기에는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 영국)의 귀납법과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50, 프랑스)의 연역법을 차용해 조사방법론을 확립해 가는 등 과학이 주변 학문의 도움받은 바 적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성과를 내기 시작한 과학은 근대 시민사회에 대하여 선한 영향력을 끼치게 된다. 과학혁명의 과정과 성과가 인간의 이성을 일깨워주는 계기로 작용했던 것이다. 실험․관찰․관측과 수학적 접근으로 대변되는 과학의 방법론이, 인간 자신을 되돌아보고 사회현상을 성찰해 보는 계기이자 도구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나아가 현대적 개념의 인권(人權)의 가치를 잉태시키는 계기로까지 작용했다. 17~18세기 무렵의 철학가들과 계몽사상가들은 이 새로운 도구로 세상을 들여다보면서 사회변혁을 위한 논리적 기반을 만들어 갔다. 만인끼리의 투쟁 관계이던 인간관계를 계약 관계로 만들어 버린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 영국)를 비롯 몽테스키외(Charles-Louis Montesquieu, 1689~1755, 프랑스),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 프랑스) 등 많은 사상가들이 인간의 존엄을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볼테르(Voltaire, 1694~1778, 프랑스)는 교육을 통한 계몽으로 세상을 바꾸고자 했다. 과학혁명이 계발한 인간의 지성(知性)이 인간의 이성(理性)을 일깨우기 시작한 것이다. 영국과 프랑스와 미국에서 일어난 일련의 정치혁명들도 과학혁명이 거둔 수확 중 하나였다.
과학이 걷어낸 어둠(자연현상과 인간 자신에 대한 무지)의 자리에 빛이 서서히 들어차게 되면서 세상은 드디어 풍요의 세상이 되었다. 과학혁명이 뿌려 놓은 씨앗으로, 현대기술사회라는 열매와 경제적 부라는 열매, 그리고 인권이라는 절대 존엄의 가치 확립이라는 열매를 거두어들인 것이다. 이제는 그것을 마음껏 섭취하며 이제껏 경험하지 못하던 총체적 풍요를 누리는 세상이 되었다. 르네상스에 이은 과학혁명은 인류의 풍요의 두 번째 마디를 견실하게 채워 주었다.
<과학혁명 들여다 보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