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있게 해 준, 그리고 내일을 기약해 줄 우리들의 약속
사람들의 삶은 고단했다.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이라는 이벤트가 결실을 맺기 전까지는 말이다. 사람들은 이 두 혁명 덕분에 억압과 빈곤으로부터 해방되면서, 비로소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이 두 혁명을 성공으로 이끌어준 마중물이 있었다. 르네상스와 과학혁명, 또 사람들이 서로를 위하여 맺었던 '약속'이 그것이다. 잘 어우러진 이들 5종 세트 덕분에, 인류는 유례없는 풍요를 향유하게 되었다.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 그 무렵 사람들은 일을 열심히 할 필요가 없었다. 일을 할 수 있거나, 일을 해야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이룬 그날의 노동 성과는 그날만 유효할 뿐이었다. 생산성 향상을 위해 이룬 기술개발의 성과는 다음날 남의 것이 될 수도 있었다. 오랜 사유와 고민 끝에 얻은 지식과 창작의 성과물은 애초부터 자기 것이 아니었다. 당연히 사람들은 일을 열심히 할 필요가 없었고, 단지 하루하루를
살아가기만 할 뿐이었다. 사회 운영 시스템의 이러한 미비는 사람들에게 무력감을 안겨 주었고 이는 다시 사람들의 불성실과 현실 안주로 이어졌다. 그 무렵의 유럽은 무기력하고 정체된 사회였다.
하지만 르네상스와 과학혁명을 거치며 사람들의 의식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사람이야말로 세상의 중심이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삶의 소중함에 대해 눈뜨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은 인간다운 삶과 나아가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한 사회 시스템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약속을 맺었다. 계약 제도와 금융 시스템, 산업재산권(특허)과 저작권이라는 이름의 약속이었다.
계약 제도와 금융 시스템에 의해 보호받게 된 노동의 성과는 내일을 기약할 수 있게 되었다. 기술개발은 특허라는 이름으로 그 성과를 보호받기 시작했다.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던 지식과 창작이라는 무형의 가치는 저작권이라는 이름의, 실체를 가진 보호 대상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이제 사람들은 마음껏 일할 수 있게 되었다. 기술개발에도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되었고, 지식 탐구와 창작활동에도 열정을 아끼지 않게 되었다.
아프리카 초원의 나무에서 내려온 한 무리의 유인원들이 두 발로 땅 위를 걷기 시작한 이래, 인류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보다 나아질 내일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 생물학적으로는 호모 사피엔스로의 진화를 이루고, 문화적으로는 문명이란 것을 이루면서 말이다. 아마도 그 과정에, 어느 것 하나만이라도 생략되었다면 오늘의 우리는 여기 없을 것이다. 우리는 앞서간 선배 인류들의 뼈를 깎는 아픔과 노력의 결실로 오늘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아픔과 노력 중에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오늘의 우리 인간을 문명의 향유자로 만들어 준 더욱 특별한 것이 있었다. 바로 사람들의 창작활동에 따른 성과물을 지켜주기 위해, 그 창작자들의 땀과 노력을 보상하기 위해, 사회적 약속을 통해 만들고 정착시켜 온 ‘저작권’이라는 시스템이다.
저작권이란 학술, 문학, 예술에 속하는 창작물에 대하여 저작자나 그 권리 승계인이 행사하는 배타적, 독점적 권리를 말한다. 저작자의 정신적, 경제적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는 바로 이 저작권의 혜택으로 오늘날의 일상의 편리함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기술사회의 출발점이 되어준 산업혁명도 일찍이 저작권과 산업재산권의 제도적 정착으로부터 촉발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현대사회의 첨단기술과 고도화된 사회 운영 시스템 또한 그것들을 자양분 삼아 지금에 이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인류사회가 문명사회로 발전해 온 데에는 제도화된 저작권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 지난날 사람들이 맺었던 저작권이라는 작은 약속은, 오늘날의 풍요라는 커다란 결실을 맺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들에게는 새로운 차원의 사회적 약속이 요구되고 있다. 세상이 급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이뤄 온 기술의 발전 정도는 이미 상상 이상이다. 분야별 기술은 물론, 그것이 융복합하면서 이뤄놓은 기술은 첨단이라는 용어의 범위를 진작 뛰어넘었다.
오늘날의 첨단 융복합 기술은 아예 사람으로 하여금 신의 영역까지 넘보게 하고 있다. 사람이 AI라는 존재를 창조하기에 이른 것은 단적인 예다. 마치 신의 피조물인 인간이 그러했던 것처럼, 스스로 사유를 하기 시작한 그런 존재를 창조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제 AI는 그 사유 능력을 토대로 역시나 인간이 그러했던 것처럼 창작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인간만의 것으로 여겨지던 학술과 문학과 예술을 아우르는 창작활동을 말이다. 인간이 만든 장치이자 시스템인 AI라는 존재가, 결국 저작권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인 ‘창작물의 저작자’로 올라선 것이다.
이제 새로운 패러다임의 약속을 준비할 때가 되었다. AI와 관련한 저작권 문제가 사회 담론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미국에서는, AI가 단독으로 생성한 창작물의 저작권 대상 여부, AI 생성 데이터가 활용한 원 데이터에 대한 저작권 침해 문제, 음악 분야에서의 AI의 표절 논란 등은 사회적인 이슈를 넘어 인간 간의 분쟁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AI는 이제 인간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지식 사회를 열어가고 있다. 창작 능력을 장착한 채 말이다. 더구나 가늠조차 어려울 정도의 미래를 향한 발전 가능성을 지닌 채 말이다. 앞으로 AI로 인해 전개될 저작권 문제는 생각 이상으로 다양해지고 복잡해질 것이다. 정리가 필요한 상황이 된 것이다. 옛사람들이 보다 나은 인간사회를 만들기 위해 신개념의 약속을 맺었던 것처럼 이제 우리도 새로운 패러다임의 약속을 맺어야 할 때가 되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자기 계발과 노동의 동기를 부여하지 않던 과거 사회가 무기력과 정체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현대사회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늘날 급변하고 있는 기술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사회운영 시스템을 제때 마련하지 않는다면 현대사회 또한 무기력과 정체, 그리고 혼란을 결코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보다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 양식은 분명하다.
저작권은 오늘을 있게 해준, 그리고 내일을 기약해 줄 우리들의 약속이다. 맺어진 약속을 오롯이 지켜나가고, 새로운 약속을 하루빨리 맺어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