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왜행성, 명왕성
이번 편 <태양계의 형제(행성)들>은 비운의 이야기부터 시작해야겠다. 명왕성 이야기다. 1930년, 클라이드 톰보(Clyde William Tombaugh, 1906~1997, 미국)에 의해 발견된 이래 명왕성은 줄곧 태양계의 아홉 번째 행성으로서의 지위를 누려왔다. 그러던 명왕성이 76년 만인 2006년, 행성의 자격을 박탈당하고 만다. 태양계의 행성이 하나 줄어든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명왕성이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행성 자격을 박탈당했다는 건 도대체 무슨 말일까?
<명왕성> 2015년 미국의 뉴허라이즌스호가 찍은 사진
명왕성 발견 당시이던 20세기 초에 비해, 20세기 후반의 천문관측 기술은 비약적인 향상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90년대가 되자 그전엔 존재 자체조차 몰랐던 커다란 얼음 천체들이 카이퍼벨트에서 줄줄이 발견되었다. 덩치가 명왕성과 비슷한 것은 물론, 명왕성보다 덩치가 더 큰 것이 발견되기도 했다. 명왕성으로서는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뒤늦게 발견된 동생들을 행성의 반열에 올려놓자니 행성의 수가 한없이 늘어나게 되고, 그것들을 행성에서 제외하자니 자신의 지위 또한 흔들릴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는 ‘행성’에 대한 명확한 개념이 정립되어 있지 않았다. 그저 적당한 구의 형태를 가지고, 태양 주위를 돌기만 하면 될 뿐이었다. 어차피 행성의 수가 많아 봐야 9개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관측 기술의 발달로 명왕성과 덩치가 비슷한 천체들이 무더기로 발견되면서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행성에 대한 명확한 개념 정립이 필요해졌다.
결국 2006년 8월,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IAU(국제천문연맹)에서 만장일치에 가까운 찬성으로 명왕성의 행성 지위 박탈이 결정되었다. 행성이 되기 위한 요건 중 세 번째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을 해야 하며, 구형을 유지할 만한 중력을 가져야 한다는 첫 번째와 두 번째의 행성 기준은 충족했지만, 명왕성은 ‘자기 궤도 근처의 모든 천체를 위성으로 만들거나 밀어낼 수 있는 능력을 지닐 것’이라는 마지막 세 번째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던 것이다. 세 번째 기준에 의하면, 태양계 내의 어떤 천체가 행성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 궤도 내에서 우월적인 존재가 되어야 하는데 명왕성은 이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명왕성의 위성으로 분류되고 있는 카론(Charon)의 경우 반지름이 명왕성의 절반, 질량이 12.2퍼센트에 이르고 있는데, 이는 카론이 명왕성의 위성이라기보다는 사실상 쌍행성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이 말은 명왕성이 자기 궤도 내에서 우월적 지위를 가지지 못했다는 말이다. 그리고 명왕성의 궤도 인근의 많은 천체들이 각기 독립적으로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 이것은 그 천제들이 명왕성에 흡수되거나 위성이 되지 않았다는 말로, 이 또한 명왕성이 우월적인 존재가 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이렇게 비운의 행성, 아니 왜행성 명왕성은 쓸쓸히 행성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현재 명왕성을 포함한 다섯 개의 천체가 태양계에서 왜행성으로 분류되고 있다.
다음 편부터 본격적인 행성 탐사를 해보자. ‘수금지화목토천해’라 불리는 지구의 형제들이다.
<태양계의 형제들 ⑦-② 수성, 금성 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