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전령-수성, 금성에서 온 여자?-금성
수성 Mercury
수성은 태양계의 행성 중에서 태양과 가장 가까운 행성이다. 지구와 태양과의 거리 3분의 1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가까운 거리다. 그러면서도 공전주기가 매우 짧고, 자전주기는 아주 길어 낮과 밤의 기온차가 극심하기도 하다. 수성의 자전주기는 지구에서 보았을 때도 58.6일이나 되지만, 수성 자신이 태양을 바라보았을 때의 하루 길이는 176일(지구일)이나 된다. 이로 인해 신기하게도 수성에서는 하루의 길이가 1년보다 두 배 길다. 여기서, 자전주기가 58.6일인데 실제 수성에서의 하루가 176일(지구일)이 된다는 것은, 공전 방향과 자전 방향이 같은 데다 공전주기(88지구일)와 자전주기(58.6지구일)가 비슷하기 때문에 일어나게 되는 현상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수성은 낮의 온도가 400도를 상회하지만 밤의 기온은 영하 200도에 육박한다.
[*수성은 비자전 상태에 가깝다. 멀지 않은 장래에 수성은 태양의 인력에 끌려 자전이 멈춰 버릴 것이다. 형식적으로는 공전주기와 자전주기가 88일로 같아지지만 실질적으로는 자전이 멈춤을 의미한다. 지구의 달도 마찬가지다. 지구에 대한 달의 공전주기와 자전주기가 같아 지구에서 볼 때는 달의 한쪽 면만 계속 보게 되는데, 이는 달이 지구의 인력에 끌려 사실상 달의 자전이 멈췄기 때문이다.]
수성은 태양과 너무 가까이 있어서 옛날부터 관측이 쉽지 않았다. 최첨단 망원경인 허블우주망원경으로도 직접 관측이 어려울 정도였다. 이런 이유로 수성은 지구와의 가까운 거리에도 불구하고 1973년과 2004년에 각각 발사된 마리너 10호와 메신저호가 수성을 근접 촬영하기 전까지는 태양계 내 행성 중에서 마지막까지 미지의 행성으로 남아 있었다.
수성 탐사선들이 보낸 자료에서 본 수성의 겉모습은 지구의 달과 너무나 흡사했다. 크레이터 투성이였던 것이다. 하지만 내부는 무거운 금속 등으로 이루어져 있어 행성의 밀도는 지구만큼 높다.
수성의 영어 명칭인 머큐리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전령 Mercury에서 따왔다. 빠른 공전주기에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수성> 미국의 메신저호가 찍은 사진
이른 새벽 동쪽 하늘에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때로는 초저녁 서쪽 하늘에 해가 사라지고 난 빈자리를 메우기라도 하듯 반짝이며 나타나는 별. 바로 금성이다. 금성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해서 불리는 이름부터 남달랐다. 우리 조상들은 새벽녘 동쪽 하늘에 떠오르는 금성을 샛별, 효성(曉星)이라는 예쁜 이름으로 불러왔고, 초저녁 서쪽 하늘에 떠있는 금성을 개밥바라기, 태백성(太白星)이라는 재미있으면서도 장엄한 이름으로 불러왔다. 서양에서는 한술 더 떠 아예 미의 신인 비너스의 이름을 금성에 갖다 붙이기까지 했다.
실제로도 금성은 우리 지구와 상당히 친숙한 행성이다.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행성인 데다, 크기와 질량도 지구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구성물질까지 상당히 유사하다. 또 새벽녘이나 초저녁 무렵 도시의 빌딩 숲 위나 시골의 산마루 위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금성은 달 다음으로 밝은 천체이기도 하다. 우리의 감성에 친숙하게 다가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친숙함과 유사점은 여기까지다. 금성은 친숙한 겉보기와 달리 숨이 턱턱 막히는 불사우나 행성이다. 이산화탄소와 황산 구름에 의한 온실효과로 땅덩어리와 대기는 납도 녹일 정도로 뜨겁게 달궈져 있다. 표면의 대기압은 90기압에 이른다. 한 번씩 비라도 내릴 때는 유황을 잔뜩 머금은 산성비가 내린다.
또한 금성은 지구와의 가까운 거리에도 불구하고, 이산화탄소로 자욱한 대기에 가려 금성표면을 직접 볼 수 없었다. 비너스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이제껏 자신의 얼굴조차 한번 내밀지 않은 것이다. 1960년대 이후 시작된 마리너호(미국)와 베네라호(구 소련)의 활약 덕분에 금성의 표면을 조금씩 들여다볼 수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1989년에 발사된 마젤란호의 임무 수행으로 금성의 얼굴을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게 되었지만 불타는 화산과 크레이터가 뒤덮인 연옥(煉獄, 불지옥) 같은 풍경에는 변함이 없었다.
금성과 천왕성을 제외한 태양계의 모든 행성은 시계 반대 방향으로 자전한다. 유독 금성과 천왕성만 시계 방향으로 자전을 하는데 이를 역행운동(retrograde motion)이라고 한다. 금성의 자전주기는 지구에서 보았을 때 243일로 공전주기인 225일보다 길다. 그래서 수성의 경우와 비교해보면 얼핏 생각하기에 금성에서의 하루는 길이가 더욱 길어질 것 같지만 사실은 반대다. 역행운동 즉 공전 방향과 자전 방향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금성에서의 실제 하루는 117지구일이다.
2006년 무렵,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란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적이 있었다. 남자와 여자의 사고방식과 생활습관의 차이를 화성과 금성이라는 서로 다른 행성에서 온 종족들의 차이로 비유하면서 인기를 끌었던 책이다. 그런데 왜 하필 화성에다 남자를, 금성에다 여자를 비유했을까?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화성과 금성이 각각 남자와 여자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재미있게도, 남녀를 상징하는 심벌인 ‘♂, ♀’기호가 사실은 화성과 금성의 천문기호를 차용해 쓴 것이다.**
[**태양계 행성들은 각기 고유의 심벌인 천문기호가 있다. 수성 ☿, 금성 ♀, 화성 ♂, 목성 ♃, 토성 ♄, 천왕성 ♅, 해왕성 ♆이다.]
<금성> 미국의 마리너 10호가 찍은 사진
<태양계의 형제들 ⑦- ③ 지구 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