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성의 정체, 혜성의 고향, 혜성의 숨은 얼굴
혜성은 이제껏 만나본 행성들이나 소행성들과는 달리 아주 길쭉한 모양의 타원형 궤도 또는 포물선형 궤적을 갖고 있다. 혜성이 태양계의 먼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기다란 궤도를 가질 수밖에 없어서다. 그렇다면 혜성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하는 태양계의 바깥쪽이란 도대체 어디일까? 도대체 어떤 곳일까?
혜성은 물, 암모니아, 메탄 등과 성간물질 찌꺼기가 뒤섞인 크기 수십킬로미터 이내의 얼음덩이 천체이다. 하지만 태양계의 바깥쪽 극한(極寒)의 지역에서 얼음 상태로 있던 이것들은 태양계 안쪽으로 들어오면서 태양과 가까워질수록, 얼음이 녹으며 기체와 먼지를 발산하게 된다. 그 기체와 먼지들이 궤적을 따라 꼬리를 남기며 수백 만킬로미터의 크기를 가진 혜성으로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혜성의 핵이 자신의 몸을 녹여 기체와 먼지를 발산함에 따라 체중이 자꾸 줄어드는 문제가 발생한다. 언젠가 결국 수명을 다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핼리혜성 같은 주기를 가진 혜성들은 태양의 주위를 일정 횟수 공전하고 나면 혜성으로서의 생을 마감하게 된다. 불과 몇만 년 만에 생을 마치는 것이다. 여기서 질문이 이어진다. 태양계 내에 일정 개수의 혜성만이 존재하고 있다면, 지금쯤 혜성은 바닥이 드러났어야 한다. 46억 년이나 되는 태양계의 나이를 생각하면 혜성의 씨는 벌써 말라 버렸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우리의 눈에는 주기 혜성들이 계속 모습을 드러내고 있고, 심지어 처음으로 얼굴을 선보이는 새로운 혜성들도 일 년에만 수십 개 이상 발견되고 있다. 마치 어딘가에 혜성들을 끊임없이 제공해주는 공급처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구조물> 편에서 언급이 있었듯, 일찍이 오르트는 태양계의 아득히 먼 곳 어딘가에 혜성들의 씨앗이라 할 천체들이 수도 없이 모여 있는 공간이 있을 거라고 추측했다. 뒤이어 미국의 천문학자 카이퍼는 상대적으로 가까운 공간인 명왕성의 바로 바깥쪽에도 수많은 혜성의 공급처가 있을 거라 주장했다. 그리고 그 주장들은 지금 거의 사실로 인정받고 있다. 오르트의 주장은 후배 학자들에 의해 이론적으로 증명이 되었고, 카이퍼의 주장은 관측과 계산에 의해 존재가 입증되었다. 오르트구름 그리고 카이퍼벨트로 각각 불리며 말이다.
오르트구름대에 있던 미행성들은 인근을 지나는 별의 섭동(攝動, 어떤 천체의 중력이나 운동이 다른 천체의 중력이나 운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태양계 안쪽으로 진입하며 장주기 혜성으로 성장하게 되고, 카이퍼벨트에 있던 미행성들은 목성과 해왕성 등의 섭동으로 역시 태양계 안쪽으로 들어오며 단주기 혜성으로 삶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다만 아쉽게도 아직까지 카이퍼벨트가 단주기 혜성의 공급처라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고 한다. 카이퍼벨트가 지구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어 이들의 직접적인 구성성분 등을 분석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목성을 비롯한 큰 행성들의 중력이 카이퍼벨트에 있는 예비 혜성들에게 섭동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은 수학적 계산으로 증명된다고 한다.
<헤일-밥 혜성> 1997
이온 꼬리와 먼지 꼬리가 각을 이루며 V자형을 띠고 있는 모습, 파란색이 이온 꼬리이고 흰색이 먼지꼬리다. 이온 꼬리는 태양과 일직선을 이루고 먼지꼬리는 혜성 궤도의 역방향을 이룬다. 이때 먼지 꼬리는 타원 궤도와 동일하게 완만한 곡선을 그린다.
<이미지> E. Kolmhofer, H, Raab; Johannes-Kepler-Observatory, Linz
혜성은 얼음과 먼지로 뒤범벅된 핵, 그 핵에서 발산된 기체로 이루어진 코마, 그리고 핵에서 떨어져 나온 먼지가 길게 늘어진 꼬리로 구성되어 있다.
예비 혜성은 너무나도 추운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서 애초에는 구성물질들이 뒤섞인 얼음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는 태양계의 먼 바깥쪽 카이퍼벨트나 오르트구름대에서 미행성 상태로 태양 주위를 공전하다가, 때로는 다른 항성의 섭동으로 또 때로는 태양계 내의 목성이나 천왕성, 해왕성 등의 섭동으로 운동 방향을 태양계 안쪽으로 돌리며 혜성으로서의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미행성 상태로 있던 혜성의 씨앗은 이제, 태양계 안쪽 따뜻한 구간으로 진입하면서 서서히 핵과 코마와 꼬리를 갖춘 혜성의 모습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한다.
혜성의 핵은 당초의 씨앗 즉 미행성 자체이다. 혜성 자체라고 볼 수 있다. 몸체가 그다지 크지 않아 수백미터 정도의 크기에서 수십킬로미터 정도의 크기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핵이 태양과 가까워지면 자신의 몸을 녹이며 오히려 몸집을 부풀리기 시작한다. 얼음을 기체로 승화시켜 몸을 감싸며 코마를 만들고, 기체와 찌꺼기이던 먼지를 궤적을 따라 남기며 꼬리를 만든다.
코마는 방금 이야기했듯, 핵이 열에 의해 기체로 승화되면서 핵 본체를 감싸게 되는데 이것이 코마다. 우리가 실제로든 사진으로든 보게 되는 혜성의 밝게 빛나는 머리 부분이 코마다. 핵의 크기가 수십킬로미터에 불과한데 비해 코마는 지름이 수십만킬로미터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혜성의 꼬리는 위에서 말한 대로 핵이 내뿜은 기체와 먼지로 이루어져 있다. 혜성의 궤적을 따라 흩뿌려지는 꼬리는 크기(엄밀하게는 길이)와 자태로 때로는 우리에게 신비감을 안겨주기도 하고, 영문을 모르던 우리 조상들에게는 불길함의 상징으로 다가가기도 했다. 혜성의 꼬리는, ‘I’자형에서부터 ‘V’자형 그리고 빗자루 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길이가 1AU를 넘기는 경우도 있다.
혜성의 이러한 꼬리는, 핵에서 꼬리로 변하는 과정에 재미있는 마법을 부린다. 꼬리를 구성하고 있는 기체와 먼지의 서로 다른 성질 때문에 마법이 벌어지는 것이다. 핵에서 발산된 기체가 코마 상태를 거쳐 꼬리로 변할 때 그 기체 덩어리는 태양의 자외선의 영향을 받아 이온으로 변하게 된다. 전하를 띠게 된다는 말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온 꼬리는, 역시 전하를 머금고 있는 태양풍의 영향을 받아 태양의 반대 방향으로 꼬리를 늘어뜨리게 된다. 반면 성간물질 찌꺼기인 먼지 꼬리는 자신이 지나온 길을 따라 흩뿌려지면서, 공전궤도를 따라 꼬리를 늘어뜨린다. 이때 혜성이 태양을 바라보는 각도와 공전궤도 사이의 각도 차이만큼 혜성의 두 꼬리도 각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 각도의 차이에 따라 때로는 I자형으로, 때로는 V자형으로, 또 어떨 때는 빗자루형으로 꼬리 모양을 갖추게 된다.
<③-③혜성에 관한 뒷담화 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