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

by 아린


# 1 삶의 부조리

부조리, 쉽게 말해서 인간이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열망과 그에 대해 침묵하는 세계의 무의미가 충돌하는 상태이다.

인간이 “왜 사는가? “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답을 찾으려는 반면 세상은 그런 질문에 명확한 답을 주지 않고 오로지 삶의 끝인 죽음으로 이끈다. 그 과정에서 인간이 겪는 불합리와 고통은 불가피한 것이며, 결국 완전한 의미는 주어지지 않는다. 이때 ‘의미를 갈망하는 인간’과 무의미한 세계가 부딪히면서 생기는 간극과 모순이 바로 부조리라고 할 수 있다.


# 2 삶의 이유

그렇다면 인간은 왜 살아가는가? 한 개인의 죽음으로 세계는 무너지지 않으며, 세계는 개인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무심히 흘러간다. 삶의 이유를 고민하게 되면, 대답은 다양한 층위에서 제시된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는 가족이나 사랑, 혹은 성공과 같은 가치가 이유가 되기도 한다. 철학적 사유의 차원에서는 생존 그 자체, 즉 “먹기 위해 산다”는 단순한 명제가 제시될 수도 있다. 이 모든 답변은 결국 행복이라는 욕망의 변주로 귀결된다.

그러나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은 역설적이다.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꿈을 이루려는 노력은 긴 시간의 인내를 요구하며, 관계의 기쁨은 상처와 감정소모를 동반한다. 만약 행복을 위해 감내할 이 고통이 무가치하게 느껴진다면, 삶 자체의 의미는 무너지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삶은 행복의 단순한 추구로 규정될 수 없으며, 더 근본적인 자기 이해의 과정으로 파악될 필요가 있다.

궁극적으로 삶은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타자와의 만남, 학습과 좌절, 경험과 성장은 3인칭 관점에서 보면 무의미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1인칭 시점에서 자신의 삶은 대체 불가능한 고유한 사건이다. 개인이 배우고 성장하며 자신을 형성해 가는 그 과정 자체가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이러한 순간은 마치 시지프 신화 속에서 바위를 끝없이 굴려 올리는 장면과 닮아 있다. 바위가 끝내 굴러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시지프가 다시 그것을 밀어 올리는 행위는 허무해 보이지만, 그 반복 속에서 존재의 태도는 드러난다. 인간 역시 좌절과 무의미 속에서 다시 일어나 삶을 이어가며, 이 행위 자체가 실존적 태도라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삶은 본질적으로 부조리하다. 우리는 살아가며 순간마다 의미를 찾으려 하지만, 그 의미는 언제든 흔들리고 쉽게 무너질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삶이 완전히 무의미한 것만은 아니다. 인간은 어쩌면 확실한 답에 도달하지 못할지라도, 끊임없이 질문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알아가며 작은 의미들을 만들어간다. 나는 여전히 “나는 왜 사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확실한 답을 갖고 있지 않다. 다만 그 답을 찾으려 고민하고 살아가는 과정 자체가 지금의 나에게는 삶의 이유이자 의미일지도 모른다.


# 3 고통의 의미

“No pain, no gain.” 한때 참 좋아했던 문구이다. 고통 없이 얻는 것은 없다는 이 말은, 인생에서 고통이 마치 디폴트 값처럼 인간 존재에 항상 수반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인간은 모두 삶을 살아가며 크고 작은 고통을 겪는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든, 새로운 욕망을 좇기 위해서든 노력하는 과정 속에서 고통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순간적인 쾌락을 넘어 고통을 통해 무언가를 쟁취하는 과정이 의미 있다는 점은 분명 수긍할 만하다.

하지만 현실에서 경험하는 고통은 때로 너무 강렬하고 압도적이어서 ‘의미’라는 이름을 붙이기 어려울 때가 있다. 예컨대 목표와 성취에 대한 과도한 압박이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크게 위협하는 상황에서는 숨이 가빠지고 맥박이 빨라지는 등 통제하기 어려운 증상이 나타나며, 시간이 흘러도 벗어나기 쉽지 않은 상태가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순간 들이닥치는 공포는 성취와 연결된 ‘의미 있는 고통’이라기보다는 단지 존재 자체를 짓누르는 무게처럼 다가온다.

이때 드러나는 사실은 고통이 언제나 성장이나 교훈으로 단순화되거나 해석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우울증이나 공황발작 같은 순간에는 철학적 의미나 자기 극복의 가능성, 긍정적 해석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견디고 버티는 것뿐이며, 고통의 근본적 원인을 쉽게 제거할 수도 없다. 때로는 삶을 멈추고 싶은 충동이 오직 하나의 출구처럼 보이기도 하면서, 자율성이 완전히 박탈되는 순간에 어떤 교훈도 느껴지지 않는다.

결국 고통은 항상 의미로 환원되지 않는다. 어떤 고통은 단지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이고 우리는 아무런 교훈이 없어도 살아내야 한다. 그러나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는 니체의 말처럼, 우리가 끝내 버티고 견뎌낸 사실만으로도 이미 스스로를 단단하게 만든 흔적이 남는다. 때로는 살아 있는 것, 살아남은 것 그 자체가 삶의 충분한 의미일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고통 속에서도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위로는, 그 고통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기’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