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 미역과 브레드 멜다우

by Jiah Lim

한국 방문 중이던 10월 어느 날, 압구정 미역이라는 식당에 혼자 앉아 미역국과 깻잎전을 시켜 먹고 있었다. 몸을 노곤히 부르는 2000년대 초반 스타일의 재즈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이거, 내가 딱 이 동네를 놀러 다니던 시절 좋아하던 곡인데? 싶었고, 브레드 멜다우라는 이름이 스쳤다. 당시 제일 힙하던 재즈 피아니스트. 하필 미역국을 후루룩 거리며, 앞쪽 빈 테이블로 쏟아지는 아침 햇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순간에 그의 음악이 인지되었다. 그리고 25년의 시간이 몇 초 만에 연달아 스캔되었다. 인생은 가끔 잔인하다.

4–5년 전 SF Jazz Center에서 그의 공연을 봤다. 그는 벨기에에서 아티스트 레지던시를 하고 있었고, 삶에 대한 만족이 겉으로도 드러났다. 많은 미국 백인들이 유럽으로 이주한 뒤 안정과 여유를 얻는 전형적인 장면처럼 보이기도 했다. 다만 내 머릿속에는, 2000년대 초반 예술의 정점에 서 있던 그 이글거리는 음악가는 어디로 갔고, 왜 지금 내 눈앞에는 유로 트레시한 차림의 중년 남성이 아리송한 연주를 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 뿐이었다. 매너리즘이 예전의 그것과 맞지 않았고,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비슷한 시기, 클래식 피아니스트 예브게니 키신의 공연도 봤는데, 잊힌 줄 알았던 그의 압도적인 연주력에 완전히 놀랐던 기억이 있다. 동년배이고, 각자의 장르에서 한 시대를 정의했던 두 사람. 왜 나는 이 둘을 이렇게 다르게 인지했을까. 미역국을 떠 입에 넣고, 김치 한 조각을 씹으며 생각했다. 이 집은 밑반찬이 깔끔하다. 양도 딱 알맞다.

브래드 멜다우의 음악을 듣던 시절, 나는 작품이 뜨면 그걸 만든 예술가를 무조건 우러러보던 사람이었다. 25년이 지난 지금은 다르다. 세월과 사람들, 다른 문화와 맥락을 겪고 나니, 주옥같은 작품 하나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예술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쁨을 준다면 한 번쯤 기꺼이 빠져들 가치가 충분하지만, 이제 나에겐 푹 끓인 기본 국물 같은 배경의 밀도가 함께 존재해야 한다. 피아노 솔로만으로는 만족하지 않는다. 개인의 경험이 판단 기준을 바꾼다. 그동안의 나의 경험도 분명 그 기준을 만드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민자로 살며 투표권의 무게를 생각하게 되었고, 끊임없이 자신을 말로 증명해야 하는 사회에서 그 방식에 맞지 않아 겪은 좌절도 있었다. 사람과 가까워지는 데 어려움을 느낀 경험들도 쌓였다. 미역국을 먹으며 하기엔 다소 진한 생각들이었지만, 이 또한 지금의 나다.

내가 자랄 때 더 다양한 음악을 자연스럽게 접했다면 어땠을까. Nina Simone, Cesária Évora, Miriam Makeba, Oumou Sangaré 같은 음악과 함께 컸다면, 굳이 외국으로 나가 match box 같은 방을 전전하며 미역국을 그리워할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결국 그 개고생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 가정은 여기서 접는다.

아무튼 그날, 압구정 미역에서 나의 갑상선 저하에 필요한 셀레늄은 충분히 충족되었다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곧 펼쳐질 11월의 소란을 전혀 모른 채.

다시 음악으로 돌아가 본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공연을 떠올리니 두 팀이 남는다. 오클랜드 출신 십대 자매들이 피아노와 드럼, 보컬로 가스펠과 재즈, R&B, 소울을 실험하던 MeloDious. Noise Pop Fest의 일환으로 SF Jazz Center에서 봤다. 또 하나는 Sudan Archives.
그러고 보니, 이 두 밴드 다 흑인 여성 아티스트다. 오늘이 미국의 MLK Day라는 걸 내 무의식은 알고 있었던 걸까. 이만하면 나의 미국 이민 생활 25년, 헛되지 않았다. 나, 잘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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