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웡의 부고

by Jiah Lim

샌프란시스코라는 도시의 특성상, 겉으로는 생글거리지만 자신의 바운더리를 침범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사람들의 성향 때문에 오프라인 대화에도 한계를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이 도시에서 산 지 7~8년쯤 지나고 판데믹까지 터지자, 나는 거의 언어의 무중력 세계에 발을 디딘 느낌이었다. 매일 줌으로 미팅할 때 사용하는 뻔한 언어를 빼고, 주변 몇몇 친한 친구들과의 대화 외에는 말 자체를 할 기회가 확 줄어들었다. 답답했고, 그래서 종이책을 읽기 시작했다.

Green Apple이라는 로컬 서점에서, 판데믹이 막 시작되던 2020년에 산 책이 Alice Wong의 《Disability Visibility》였다. 글솜씨와 책 내용이 너무 좋아서 끝까지 다 읽고 책장에 꽂아 두며 괜히 뿌듯해했던 기억이 있다. 그 뒤로 앨리스 웡의 눈부신 활약을 신문이나 매체에서 종종 보았고,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수술 입원을 기다리던 2025년 11월 어느 날 아침, 틱톡을 무심코 넘기다 한 백인 여성이 눈물을 흘리며 아주 천천히, 띄엄띄엄 이야기를 꺼내는 영상을 보게 됐다. 그녀는 캘리포니아 주 스탠퍼드 대학 마취과 의사인 Alyssa Burgart였고, 앨리스 웡의 부고를 전하고 있었다. 앨리스 웡의 의학 관련 슈퍼바이저이자 친구로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는 그녀는, 2주 뒤 자신이 가르치는 의대 수업에 앨리스 웡이 특별 강사로 초청되어 강연할 예정이었다고도 했다. 장애인을 대하는 의료인의 태도에 대해 자신이 앨리스 웡에게서 얼마나 많은 것을 배웠는지, 그녀가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 친구였는지를 한 문장씩 조심스럽게 이어갔다. 결국 눈물을 흘리면서.


아래는 뉴욕타임즈에 실린 앨리스 웡의 부고를 간추린 내용이다.

Alice Wong (1974–2025)

작가이자 활동가였던 앨리스 웡은 2025년 11월, 샌프란시스코의 한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51세.

1974년 인디애나폴리스에서 태어나 홍콩 출신 이민자 부모 밑에서 자랐다. 근이영양증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보행에 영향을 주었고, 이는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1997년 Indiana University–Purdue University Indianapolis에서 영어와 사회학을 전공하고 졸업한 뒤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했다. 2004년에는 UCSF에서 의료사회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의료사회학은 사회적 요인들이 의료와 건강을 어떻게 형성하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후 같은 대학의 개인보조서비스센터(Center for Personal Assistance Services)에서 상근 연구원으로 일하며, 장애인이 시설에 의존하지 않고 지역사회에서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2013년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의해 National Council on Disability 위원으로 임명되어, 2년간 의회와 대통령에게 장애 관련 정책을 자문했다.

2014년에는 Disability Visibility Project를 만들고 StoryCorps와 협업해 장애를 가진 미국인들의 삶을 기록했다. 이 프로젝트는 미국 장애인법(ADA) 25주년을 기념해 시작된 1년짜리 기획이었지만, 이후 수백 건의 구술 기록으로 확장되었고, 현재는 미국 의회도서관에 보관돼 있다.

2020년 City Arts & Lectures 인터뷰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는 정말 놀랍고, 똑똑하고, 창의적인 장애인들이 많다.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사실을 모른다는 점이 나를 분노하게 만든다.

2022년 회고록 《Year of the Tiger: An Activist’s Life》에서 그녀는 자신이 겪은 차별과 분노가 결국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한 에너지로 전환되었다고 썼다.

2024년에는 맥아더 재단 펠로십, 이른바 ‘지니어스 그랜트’를 받았다. 80만 달러의 지원금이 포함된 상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가장 큰 성취는 상이 아니라, 그녀가 사회가 계속 가장자리로 밀어내는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중심에 데려오려 했다는 점이다.

앨리스 웡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기록했고, 지워진 사람들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그 분노를 끝까지 놓지 않았다. 그 분노는 세상을 조금 더 정확하게 보게 만들었다.

그녀는 늘 공동체의 힘을 강조했다. 커뮤니티와 인간관계가 자신의 생존과 장애 정의 운동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2024년부터는 독립해 혼자 고양이들과 살며, 지인들을 저녁 식사에 초대하는 삶을 즐겼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내 몸이 여기까지 버텨준 것이 놀랍고 감사하다. 삶은 완전히 엉망일 수 있지만,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


나는 앨리스 웡의 삶을 정리하고 싶었다기 보다, 그녀의 글이 샌프란시스코에서 판데믹을 살아내며 점점 언어를 잃어가던 한 이민자를 다시 붙잡아 주었다는 사실을 기록해 두고 싶었다. 그녀를 직접 만나 이야기해 본 적은 없지만, 그녀의 글을 읽을 때마다 ‘이렇게 말이 통하는 사람이 있구나’라는 느낌이 들었고, 그게 나에게는 꽤 중요했다. 이 글은 그래서 남긴다. 내가 그녀의 말을 들었고, 아직 기억하고 있다는 표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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