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이별, 왜 여성의 몫인가.

응답하지 않았지만, 끝나지 않았다

by Jiah Lim

십오 년 전쯤에 만났던 사람에게서 일 년에 한두 번씩 문자, 이메일, 링크드인 메시지가 왔다. 나는 초지일관 no response로 대응했다. 어떤 해에는 아무 연락도 없었던 것 같고, 그러다 다시 시작되기를 반복했다. 그 상태가 십 년을 넘기자, 내 머릿속에 경고등이 켜졌다.


올여름에는 내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과거를 혼자 무한 반복하고 있는 그의 머릿속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한 사진이 첨부된 이메일을 받았다. 그때,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걸 분명히 깨달았다.


그동안 문자가 오면 전화번호를 차단했고, 링크드인 메시지가 오면 링크드인을 차단했다. 이메일도 차단했지만, ‘차단된 메일’이라는 표시와 함께 메일은 계속 배달됐다.


법적 제도 안에서 ‘스토킹’의 정의를 찾아보니, 두세 차례 이상 원하지 않는 연락으로 상대에게 불쾌감이나 불안감을 주는 행위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의 행동은 명백히 이에 해당했다.


나는 샌프란시스코를 베이스로 한 여러 비영리 법률 단체를 찾았고, 그 과정에서 The Bar Association of San Francisco와 Cooperative Restraining Order Clinic(CROC)를 알게 되어 전화를 걸었다. 음성 메시지를 남겼던 The Bar Association of San Francisco에서 먼저 연락이 왔고, 상황을 간단히 설명하자 CROC을 추천해 주었다. 그렇게 CROC의 변호사와 화상 통화를 하게 됐다.


이 과정과 병행해, 나는 이런 유형의 스토커가 자기중심적 성향과 경계 침범 성향이 강하고, 초기 제재가 없을 경우 행동이 점점 심각해진다는 자료들을 찾아보았다.
내가 통화했던 The Bar Association of San Francisco의 파라리걸, CROC의 파라리걸과 변호사 모두, 십여 년간 이어진 일방적 연락이 스토킹에 해당한다고 분명히 말했다. 불쾌함과 그동안의 마음고생에 대해 한결같이 공감해 주었고, 그 점이 무엇보다 위로가 됐다.


CROC의 창립 멤버라는 변호사와 30분 정도 화상 통화를 한 뒤, Cease and Desist Letter를 보내기로 결정했다. 변호사는 통화 후 하루도 되지 않아 초안을 보내왔다. 그 편지를 읽는 순간, 내 신경계가 즉각적으로 안정되는 걸 느꼈다. 아래는 스토커에게 실제적 제재로 작용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내용의 일부 발췌다.


Continuing to contact Ms. Doe after she expressed her clear wishes that you stop may be restrainable under California Family Code sections 6200 et seq.
Restraining orders issued under the California Family Code are entered into both the California Law Enforcement Telecommunications System and the FBI National Crime Information Center Protection Order File.
You may be subject to criminal charges and civil penalties and liabilities if you do not immediately cease this course of conduct and desist in engaging in this type of conduct or any other harassing conduct in the future.

Specifically, do not contact or harass Ms. Doe any further. Stay away from her. Do not attempt to communicate with her directly or indirectly through third parties, in person, telephonically, electronically, through social media, or by any other means.

It is Ms. Doe’s hope that this matter has been resolved by the writing of this letter. However, if you continue your current conduct, she will be forced to take whatever legal action is necessary to stop your unwanted contact.
If you have questions concerning this matter, you may direct those questions to me, not to Ms. Doe.


편지의 마지막 문단에서 변호사는 자신이 내 법률 대리인임을 명시했다. 그 문장을 읽고 울컥했다. 단 30분의 상담만으로, 이렇게 명확한 보호가 가능하다는 사실이.

이 이메일은 다음 날 발송됐다. 보내기 전, 변호사는 내게 선택권을 주었다.
“보통 이런 경고를 받으면 분노 반응으로 공격적인 답장을 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이메일을 아예 보지 않도록 제가 처리할 수도 있고, 원하시면 공유해 드릴 수도 있어요.”

나는 보겠다고 답했지만, 솔직히 두려웠었다.
편지가 발송된 다음 날, 그가 사는(것으로 추정되는) 지역 번호로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나는 받지 않았다. 대신 변호사에게 바로 보고했다. 그 이후 지금까지, 3개월 넘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

만약 그가 이후에도 디지털 스토킹을 계속했다면, 다음 단계는 샌프란시스코 로컬 법원에 Civil Harassment Restraining Order를 신청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이미 Cease and Desist Letter를 공식적으로 발송한 이후의 위반이었기 때문에, 법원에서도 훨씬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디지털 스토킹 피해를 겪고 있는 분이 있다면, 처음부터 오는 이메일이나 메시지를 모두 보관하고, 절대로 응답하지 않기를 권한다. 나는 최근 1~2개의 이메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그때그때 삭제해 왔다.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스토킹으로 이어질 줄은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법적 조치를 실제로 도와주는 CROC 같은 비영리 단체는 존재 자체로 든든하다.
필요한 분들께 이 정보가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남긴다.
고맙습니다, CROC.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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