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분가

by 맑음

아이 셋을 낳는 동안, 남편은 시어머니가 준 돈으로 안경점을 차렸다.

망했다.

쉽게 얻은 돈은 언제나 쉽게 잃기 마련이었다.

시어머니의 자식들은 다 비슷했다.

시어머니가 준 돈으로 분가를 하거나 가게를 차렸지만, 결국 얼마 못 가 돌아왔다.

그러면 방 하나를 차지하고 다시 눌러앉았다.

그럴 때마다 시어머니는 불같이 화를 냈다.

그러나 그 분노는 자식들을 향하기보다는 늘 순이에게 향했다.


“국이 이게 먹으라고 끓인거냐!”


끓여놓은 국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냄비째 바닥으로 내팽개쳤다.

순이가 엎드려 국물이 사방으로 튄 부엌 바닥을 닦고 있자니,

시어머니는 미닫이문을 세게 밀어젖히며 나와 이불과 옷가지를 마당으로 내던졌다.


"빨때가 됬으면 제때제때 빨으라고!!"


여름엔 단수, 겨울엔 수도가 동파되어 빨래를 집에서 할 수 없으니

순이는 한강까지 걸어 나가 빨래를 했다. 차라리 멀리 나가는 편이 마음이 편했다.

집을 벗어나기만 해도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넓은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었고, 잔돌과 갈대,

바람에 날리는 모래들 사이로 아이들은 맨발로 뛰어놀았다.

순이는 바다를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처음 한강을 보았을 때, 여기가 바다인 줄 알았다.


빨랫감을 양푼에 담아 머리에 이고, 막내를 포대기에 업은 채 길을 걸었다.

아기의 온기가 등줄기를 따라 번지고, 고소한 숨결이 어깨 너머로 가볍게 불어왔다.

한강물에 손을 담그면 얼얼한 기운이 팔목을 타고 올라오고,

방망이를 쥔 손에는 힘이 들어갔다. 젖은 빨래를 펼쳐놓고 힘껏 방망이를 내리쳤다.

그러면 체한 것처럼 가슴 밑에 얹혀 있던 뭔가가 “쑤욱” 하고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게 좋아서 순이는 더 세게, 더 세게 빨래를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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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진숙이가 여덟 살이 되던 해, 마침내 분가를 하게 되었다.

마당을 끼고 안채를 기준으로 ‘ㄱ’자 형태로 방들이 이어진 집이었다.

주인이 안채를 쓰고, 툇마루를 따라 월세방 세 개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그중 제일 끝방이 순이가 얻은 방이었다.

이미 순이 뱃속에는 넷째 아이가 있었으니 그 몸으로 짐을 꾸리고,

세 아이의 손을 잡아끌며 그 방으로 들어왔다.


방은 다섯 식구가 나란히 누우면 팔 하나 뻗기 어려울 만큼 좁았다.

밤중에 화장실을 가려면 서로의 몸을 조심조심 넘어가야 했다.

대문 옆이라 창이 골목을 향해 있어 불안했지만,

남편이 술에 취해 돌아오면 얼른 나가 문을 열어줄 수 있으니 차라리 그게 나았다.

무엇보다 작은 부엌이 딸려 있어 마음에 들었다.

오롯이 내 식구들만을 위한 밥상을 차리고 빨래를 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순이 인생에서 엄청난 진보이자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분가를 했어도 시댁 살림을 도와야 했다.

배가 불러온 몸으로 아이들의 손을 잡고 내리막길을 오가는 날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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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큰오빠의 딸 ‘일례’가 서울에서 미용학원을 다니게 되어

순이에게 잠시 데리고 있어달라는 연락이 와왔다.

남편이 지방에서 일하고 있었으니 순이는 흔쾌히 그러겠노라 했다.


어느 날, 순이가 시댁 부엌에서 국을 끓이고 있을 때였다.

시어머니가 다가와 몰아세우듯 물었다.


“말만 한 처녀가 들락거린다는데 누구냐?”


큰오빠의 딸이라고 사정을 설명하자, 시어머니는


“남편이 번 돈으로 친정 뒤치다꺼리 하느냐, 술집년이냐” 하며 모욕적인 말을 쏟아냈다.

순간 순이의 머릿속에는 국냄비가 바닥에 패대기 쳐지던 장면이 떠올랐다.

국자를 쥔 채 몸이 굳어,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한참을 퍼붓던 시어머니는 울음을 터뜨리며 주저앉았다가,

힘이 다 빠진 듯 방으로 기어 들어가더니

머리에 흰 띠를 두르고 드러누운 채,

“아이고, 머리야. 아이고, 삭신이야…”

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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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석동에서 오래 점쟁이로 터줏대감처럼 살던 시어머니는 동네에 아는 이가 많았다.

그들은 늘 시어머니의 눈과 귀가 되어 소문을 전했다.

아마 일례가 학원 다녀오는 모습을 누군가 본 것이리라.


자식들이 하나둘 귀가하자, 시어머니는 더 큰 소리로 끙끙 앓았다.


“저년이 집안 말아먹을 년이다.

아들 없는 틈에 술집년이 드나든다.

동네 소문이 쫙 퍼져 내 체면이 말이 아니다.”


시누들은 엄마 편을 들며 순이를 타박하는 척하다가,

슬쩍 “엄마 기운 나게 반찬 좀 많이 만들어라” 하며 순이를 부려먹었다.


일례는 결국 사흘만에 방을 얻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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