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또 일을 그만두고 서울로 올라왔다.
술병이 나서 늦게까지 일어나지 못하던 남편이 볼일이 있다며
외출을 하고, 부엌에 상을 내려놓고 돌아서자
변의처럼 밀려오는 묘한 감각과 묵신한 통증이 동시에 쏟아졌다.
진통이 시작됐다. 아이를 셋이나 낳았지만,
이 감각은 단 한 번도 익숙해진 적이 없다.
기어가다 시피 요강을 끌어다 앉았다가, 다시 밀어놓고,
또 주섬주섬 속옷을 올렸다가 내렸다를 반복했다.
안채에 있던 주인아주머니가 신음 소리를 듣고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아이고매! 애기 나온다, 애기 나와!!!
진영아, 후남이 데리고 어서 나가 있어!!!”
아주머니가 소리를 지르던 그 순간, 순이는 말문이 막혀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목구멍에 뭔가 걸린 듯, 울음도 비명도 터지지 않았다.
그저 온몸으로, 이 지옥 같은 고통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리고—
딸이다.
남편은 다음 날이 되서야 집에 들어왔다.
딸이라는 말을 들은 순간, 아무 말 없이 나가버리더니
저녁 늦게 다시 돌아와, 아기를 안고 나갔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순이는 아기를 다시는 볼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이 없이 혼자 돌아온 남편에게
아기를 어쨌냐고 물었다.
“부잣집에 줬버렸어….”
화를 내며 말을 아꼈다.
“누구한테, 어디에다 줬어…?”
순이가 묻자, 그는
“그냥 부잣집 대문 앞에 두고 왔다고.”
라고만 했다.
며칠 뒤, 술에 절어 살던 남편은
경찰에 자수를 하겠다며 순이에게 함께 가달라고 했다.
경찰서에서 들은 말은 더 충격이었다.
아기는 부잣집 처마도 아닌 길가에서 비오는 밤
지나가던 행인에 의해 발견됐고 위독한 상태여서
곧장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했다.
경찰은 집안 사정을 듣고,
친권을 포기하는 쪽이 좋겠다며
입양 절차를 밟을 것을 권유했다.
그렇게, 순이는
아무런 작별 인사도 없이
자기 품에서 태어난 아기를 잃었다.
그날 이후, 아기는
꿈에서도 찾아오지 않았다.
젓이 불었다.
가만히 있어도
젓이 흘러나와 옷을 적시고, 옷감에 타원형 얼국이 남았다.
젓몸살로 열이 올라 잠을 잘 수 없었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 관자놀이를 적시고,
머리속까지 젖은채 아기 생각을 했다.
아기에게 물리면 통증이 사라 질텐데..
이제 그럴 수 없다는 걸 안다.
아기가 있던 자리가 욱신거리며 아려 왔다. 훗배앓이였다.
이 고통은
자신이 감내해야 할 벌 중
그나마 가장 가벼운 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