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굶주림

by 맑음

남편은 생활비를 제때 가져다 주지 않았다.

저녁이면 “이만큼 벌었다”며 돈다발을 눈앞에 들이밀며 자랑하고는,

다음 날이되면 그 돈을 고스란히 들고 나갔다.

돈의 행방을 물으면 욕부터 내뱉었고,

화를 벌컥 내며 신경질을 부렸다.

순이가 “일이라도 나가게 해달라”고 하면,

“살림이나 잘하라”며 단칼에 잘랐다.


아이들 입이 무서웠다.

제대로 된 밥은 커녕,

라면 하나에 국수를 가득 풀어 다섯 식구가 나눠 먹었다.

그래도 배고프다고 하면, 주인집이나 시댁에 가서 음식을 얻어 먹이거나,

시장 야채가게 한켠에 버려진 무청이나 배추잎을 주워다 된장을 풀고, 끓여 먹였다.

봄이면 뒷산에 쑥을 캐러 가고, 돋나물 도 캐고, 아카시아 꽃도 따다 먹였다.


시골이었다면 이렇게까지 배를 곯진 않았을 것이다.

작은 땅 한 귀퉁이라도 있었다면,

감자나 콩을 심어 끼니 걱정은 덜었을 텐데.

도시빈민의 삶이 더 비참하다는 걸, 그때 절실히 알게 됐다.


분가를 한 이후에도 시어머니는 순이를 굿판에 데리고 갔다.

그리고, 순이에게 대나무로 만든 깃대를 쥐게 했다.


귀신이 오면 깃발이 흔들린다고 했다.

순이는 자기 키 만한 깃대를 움켜쥐었다.

정말 귀신이 와서 흔드는 건지, 자기 손이 떨려서 흔드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깃대가 흔들리지 않도록 손에 꽉 힘을 주고, 버텼다.


먹을 것을 얻어갈 수 있기에 굿판에 따라갔지만,

동네사람들이 순이 딸들 중 하나가 신을 물려받을 꺼라는 말을 수군거렸다.


그 말이 귓가에 맴돌자,

시어머니 방 한 켠, 신당의 부릅뜬 눈동자가 자꾸만 떠올랐다.

순이는 아이들이 그 길을 가는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끼쳤다.

그래서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자, 교회로 데려갔다.

신당 보다 십자가 아래 앉히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순이는 명절이면 꼬박꼬박 시댁에 가서 음식을 차렸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시어머니가 장은 미리 봐놓는다는 것이었다.


순이는 명절 이틀전부터 솓뚜껑만한 가오리와

어른 팔뚝만한 상어를 깨끗이 씻어 쪄낸 후 채반에 올려 잘 말려 놓았다.


고기를 재워 산적을 만들고, 탕국을 두 어가지 끓여놓고,

갖가지 나물들을 다듬어 놓았다.


그사이 밥을 하고, 물을 넉넉히 붓고 엿기름을 풀어 하루 반나절을 삭힌다.

식혜는 잔뜩 만들어 놔야 한다.


시어머니가 좋아하는 겉절이를 무쳐놓고,

시댁식구들이 좋아하는 삭힌 홍어를 빨갛게 무쳐놓는다.

전은 서너가지를 만들어 채반에 올려놓고, 달력으로 덮어 놓았다.


방앗간에서 빻아온 쌀가루를 펼치고, 팥을 삶아 그 위에 얹고,

다시 쌀가루를 얹는 식으로 세번 반복해서 시루떡을 만들고 나면,

제삿상에 올라갈 음식들과 2박3일간의 식사 분이 마무리 되었다.


그동안 시어머니와 두딸, 사위들은 방 한가운데 모포를 깔고,

둥글게 자리 앉아 아이들이 있든 말든 담배를 피우며 고스톱을 쳤다.

상이 들어오면 밥을 먹고, 다 먹으면 상을 옆으로 슬쩍 밀어 놓고 다시 패를 돌렸다.


둘째, 셋째 도련님과 동서들은 명절당일이 되어서야 얼굴을 내밀었다.


작은 동서가,


“형님 고생하셨어요. 저희가 너무 늦게 왔죠?” 하면,


시어머니는 “ 고생은 뭔고생이야. 한게 뭐있다고, 고거 조금 가지고. “

하며 말허리를 잘랐다.


도련님들이 제삿상에 절을 하고나면,

동서들은 두어시간 앉아있다 시어머니가 싸준 음식을 받아들고 돌아갔다.

집이 좁다는 이유였다.


아이들을 재울 곳이 마땅치 않아 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비닐을 쳐 그 아래서 재웠다.

매번, 아이들을 한대서 재우자니 미안하고,

상 바깥에 앉아 밥을 먹던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여전히 세상에서 천대 받고 있다는 생각이, 지긋지긋하게 찾아 들었다.


그래도 그 날만큼은 아이들에게 전이며 고기, 생선 같은 것을

배불리 먹일 수 있었으니, 그게 그 모든걸 견딜 수 있는 이유였다.


그걸로 됐어,

순이는 그렇게 자기 마음을 다독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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