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장 순이의 주방

by 맑음

순이는 동네아줌마의 소개로,

유치원의 조리사 보조로 일하게 됬다.

점심 배식을 돕고, 설거지를 하고, 주방 정리를 했다.


아이들이 모두 돌아간 뒤,

불 꺼진 부엌 한켠에 기대어 앉으면

손끝과 무릎이 욱신거렸지만,

그래도 순이는 이 일이 좋았다.

부업만 할 때보다 고정적으로 월급을 받을 수 있었고,

밥이나 반찬, 간식거리가 남으면 집에 가서 아이들을 먹일 수 있었다.


그러다 조리사가 관두자, 자연스럽게 순이가 주방을 맡게 되었다.

120명의 원생과 교직원들의 점심과 간식이 모두 그녀의 손끝에서 나왔다.


어려서 부터 농사일에, 부엌에서 온종일 일하던 나날들,

또 시집살이로 매일같이 부엌에 서 있어야 했던 시간들 덕분에

불 앞에서 일하는 건, 이제 이골이 나 있었다.


게다가 순이는 손이 빨랐다.

늦게 들어가면 아이들 저녁도 못 챙기고,

남편 눈치도 봐야 했으니,

하루 일과를 쉴 새 없이 몰아서 끝내야 했다.


음식 솜씨도 좋아서,

배식받은 아이들이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싹싹 비울 때면

피로가 풀려, 어깨가 펴지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순이는 정직했다.

재료는 정해진 대로만 샀고, 영수증도 잘 챙겼다.

남은 반찬이 있어도 꼭 물어보고 가져갔다.

떳떳하고 싶었다.

정직해야 오래 버틸 수 있다는 걸 알았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선생님들도 순이를 따랐다.

자취하는 선생님들에게

남은 반찬을 조심스레 나눠주곤 했으니,


원장 수녀가 바뀔 때마다,

새로온 수녀들은 하나같이 “순이와 함께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순이는 그런 사람이었다.

아무리 가난해도 나눌 줄 알고,

남을 속이는 법이 없고,

자신의 몫을 넘어서는 걸 탐하지 않는.


유치원에 있는 모두가

그녀가 만드는 밥을 좋아했고,

그녀의 태도를 믿었다.


순이는 늘 조용히, 땀을 흘리고 있었다.

아이들을 위해, 또 아이들이 기다리는 집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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