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어린 조카를 등에 업은 채,
양손에 아이둘을 데리고 뚜럭을 걸었다.
친구들과 나가 놀아 본적이 언제 였던가.
“순이야, 올해만 도와줘라잉.
내년엔 꼭 학교 보내 줄랑게.”
큰언니 점이가 시집을 가고,
순이가 큰오빠의 자식들을 돌보게 되면서
오빠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었다.
자기 몸보다 큰 무쇠 가마솥에
열 명이 넘는 식구들의 밥을 짓는 것도 순이의
몫이었다.
부뚜막은 늘 뜨겁고,
아궁이에서 피어 오르는 연기에
매워서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눈물은 줄줄 흘러내렸고,
검은 그으름은 콧등과 뺨에 덕지덕지 달라붙었다.
순이는 그게 싫었다.
다른 아이들은 말간 얼굴로 학교에 갔다.
물기 마른 머리카락을 바람에 흩날리며 걸어갔다.
순이는 고것이 그렇게 부러웠다.
식구 열 셋에, 상은 세 개.
첫 번째 상엔 부모님과, 오빠들이 앉았고,
나머지 두개의 상에 올케언니들과
그들의 아들들이 나눠 앉았다.
딸들의 자리는 늘 상 바깥에 있었다.
제일 반듯하고 맛있는 부위는 상에 올리고 나면,
딸들은 바닥에 남은 반찬들을 내려놓고,
솥에서 긁어낸 누룬밥을 나눠담고 둘러 앉았다.
밥을 뜨기도 전에
“물 좀 떠오니라.”
“병수, 국 좀 더줘라.”
하는 소리가 들리면,
숟가락을 내려놓고 일어나는 건 언제나 딸들이었다.
그렇게 가장 늦게 앉고도,
“언제까지 먹고 앉아 있을래이? 하면,
허겁지겁 삼키며 상을 치웠다.
누구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것이 그때의 질서였다.
집안일을 할 때마다,
순이는 연이네 집에서 배워 온 것들을 혼자
되뇌였다.
내년에 중학교에 진학하게 되면
뒤쳐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순이가 열아홉이 될 때까지
큰 오빠가 말하던 ‘내년’은 오지 않았다.
막내 조카가 학교에 들어가자 마자
다른집에 식모로 보내졌기 때문이다.
'입을 덜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 다음해, 동생 복이도 같은 이유로 식모로 보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