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22 꿈
지난번 꿈은 외부에서 들어온 뻐꾸기 알을 수용하는 내용이었다면, 이번 꿈은 내부에 있던 무언가를 끄집어낸다. 이 과정은 나의 둥지를 넓히는 작업이다.
초등학교 교실이다. 담당 선생님이 "선생님은 T(MBTI)여서 예쁘게, 애살있게 못하겠네요." 한다. 명단에 이름만 올리면 된다더니 일을 시킨다.
부당함을 느끼지만 '명단에 이름만 올리면 된다고 했는데, 일을 시키네.'라는 생각만 하고 말은 하지 못한다.
교실 밖 야외다. 선생님이 남자 도우미 선생님에게 일을 시킨다. 그는 "나는 이런 거 못해요! 직접 하는 것이라면 신청 안 했어요!"라며 선생님을 곁눈질로 쳐다보는데 눈에 흰자만 보이는 모습이 기이하다.
그와 눈을 마주치는데, 갑자기 내 입에서 콩나물 줄기 같은 것이 삐죽 삐져나와 있다. 내가 입에서 빼내 구석에 버린다. 도우미 선생님에게 이 모습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럽다. 다시 줄기가 나오는데 잡아당겨도 끊어지지 않고 3~5미터 정도 계속 계속 나온다.
다 빼냈다고 생각했는데 또 나온다. 이번에는 새카맣게 탄 줄이다. 양손을 번갈아 가며 빠른 동작으로 계속 빼낸다. 역시 아까와 같은 길이이다.
조금 있으니 또 나오는데 통통한 콩나물처럼 조끔씩 두꺼워지며 나오더니 지렁이 같은 모양이다. 빼내는 동안 이게 뭔지 궁금해진다. 징그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기생충이면 약을 먹어야 할 텐데.'라며 바닥에 떨어진 줄을 자세히 살펴보는데 움직임이 없다. 마지막으로 나올 때는 힘을 주어 당겨야 하고 잘 빠지지 않다가 툭 끊어져 버린다. 끝부분은 위장의 살점들과 연결되어 있는 연장선 같았다. 끊어져 남아있는 줄이 다시 안으로 들어가지 않게 혓바닥으로 눌러보지만 실패한다. 찝찝함이 남고 마저 다 빼내야 하는데... 하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이름만 올리면 된다더니 일을 시킨다. 부당함을 느끼면서도 입 밖으로 꺼지네 못하고 생각만 하는 나, 예전의 내 모습이다.
MBTI에서 T라는 말처럼 나는 감정보다는 논리 중심으로 세상과 관계를 해왔다. T유형에도 분명 장점이 있다. 하지만 꿈속의 선생님은 내면의 비판자가 되어 나의 결함으로 낙인찍는다. 기분 나쁠 수 있는 말에서 나는 아무 감정이 없다. 마치 당연하여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하지만 도우미 선생님은 다르다. 의사표현과 화난 감정을 확실히 표현한다. 말은 조금 거칠다. 아직 익숙지 않아 단호하지만 세련되지는 못하다.
이전 꿈에서 자폐처럼 보였던 남자아이가 있었다. 알고 보니 표현 방법을 몰라서였을 뿐, 소통이 가능했다. 그 아이가 이번 꿈에서는 말을 단호히 하는 도우미 선생님으로 성장해 나타났다. 나의 남성성이 한 단계 발전한 것이다.
남자 도우미 선생님과 눈 마주침.
그러고 나서 내 입에서 뭔가가 나온다.
나의 아니무스와 연결되는 무엇, 그렇게 표현하면 되는구나!라고 나에게 안내를 해 주는 느낌이다. 입 안에서 한 가닥의 무엇이 나왔고, 들켰을 때 부끄러웠다.
꿈에는 나오지 않는 장면이지만 그 공백을 상상해 본다. 아마 그 선생님은 나의 부끄러움을 부드럽게 받아 주었을 것이다.
더 나아가 그가 흰자위만 보일 정도로 눈을 흘기며 선생님을 바라본다. 내가 입안에서 무언가 뽑아내었을 때 부끄러움이 무안이 되지 않도록 잘 방어해 준 행동처럼 보인다. 그다음부터 나는 어떤 것도 의식하지 않고, 나오는 것이 징그럽다는 생각도 없이 부지런히 행동한다.
"나는 이런 거 못해요! 직접 하는 것이라면 신청 안 했어요!"
어설프지만 단호한 표현은 나에게 말할 권리를 부여한다.
세 번의 줄은 내 안에서 말해지지 못하고 오래 묵은 것들인데, 순서대로 상징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 수분기 하나 없는 마른 줄기. 생명력이 없다. 너무 오래되어 포기해 버린, 반응도 저항도 없는 사막 같은 메마른 풍경이다.
두 번째, 가장 오래된 것처럼 보이는 새카맣게 탄 줄기. 메마른 생활에 저항을 시작했을 때의 흔적이다. 내 주장을 하고, 화를 내고, 갖가지 감정과 에너지를 분출했지만 돌아온 건 화재가 휩쓸고 가 검게 탄 잔해뿐이다.
세 번째, 물기를 머금은 지렁이 같은 줄기. 화재가 지나간 자리에는 새로운 생명이 자라난다. 이 줄기는 감정을 묵히지 않으려는 시도이고, 살아 있는 감정 배출이다. 살아있기에 쉽게 나오지 않고, 힘을 주어야 나온다.
토를 하여 나오게 할 수도 있었는데 꿈은 손으로 직접 빼 내야만 나올 수 있게 하였다.
무의식이 강제로 내뱉는 것이 아니라 양손을 사용하는 빠른 템포는 내가 스스로 꺼내는 행위의 주체임을 의미한다. 호기심을 가지고, 관찰하고, 감정에 거리를 두는 의식적으로 행동하는 나이다.
예전엔 말 못 하는 나였다면 지금은 제법 내 의사표현을 한다. 역설적이게도 말하지 못하던 시절엔 이러한 꿈이 없었다. 말을 할 수 있을 때 꿈은 이제 내가 감당할 수 있음을 알고 보여준다.
몸과 함께 하는 작업에서 잘려 들어간 마지막 부분은 앞으로 나의 과제이며 한 단계 더 깊이 나갈 수 있다고 말한다. 아직 말하지 못한, 어쩌면 의식하지 못하거나, 기회가 없어 담아두고 있는 어떤 것이 아직 남아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것이 찝찝함으로 남는데 아직은 때가 아닌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