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6 꿈
귀신은 억울하게 죽은 자들이다. 자신의 원한을 누군가 알아주기 바라며 나타난다.
내가 울면서 이제 나 좀 그만 괴롭히라며 소리 지르며 묘지 사이를 뛰어다닌다. 큰 무덤, 작은 무덤들이 여러 개 있다. 이를 보고 있던 누군가 나 때문에 묘지 중 하나에서 귀신이 깨어났다고 한다.
사람들도 나도 모두 무섭다. 하지만 나는 무섭지 않은 척하며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괴롭힐 수 없다고 한다. 귀신이 괴롭힌다고 믿는 것은 사실이 아니며, 예전부터 사람들이 쭉 그렇게 믿어온 것이 실제처럼 작용한 것이라고 말한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이 무서움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면서 그렇다고도 믿기 때문이다.
어두운 밤 오솔길을 걷는데 귀신이 나올까 봐 무서워 플래시로 길 앞과 뒤를 동시에 비추면서 걷는다.
장면이 바뀌고
젊은 커플이 운세를 보기 위해 무당집을 찾아왔다. 자리에 무당은 없고, 책상 위에 괄호가 쳐진 글들이 있는 종이가 놓여있다. 나는 무당이 어떻게 점치는지 알고 있다. 손님들이 글을 읽어가며 괄호 속에 숫자들을 적는다. 수의 합이 80이 나와야 하는데, 이 수를 넘으면 안 좋은 일이 생기니 조치를 해야 한다고 한다. 숫자 계산 종이는 7칸으로 된 가로줄이 그어져 있으며 맨 마지막 줄에는 합계를 적는 칸이 있다. 즉 이 말은 무당이 자신의 신기가 아니라 속임수로 점을 보는 것이다. 나는 손님들에게 보이지 않는 관찰자다.
크고 작은 여러 묘지들은 내가 의식적으로 끝내고 싶은 일들을 없던 것으로 만들고, 논리적으로 묻어둔 곳이다. 하지만 정서적으로는 끝나지 않은 것들에 대해 애도 과정도 없이 처리했다. 이들이 원한을 품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으며, 더 이상 묻어 둘 수 없음을 알고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그들이 나타나기 전 미리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이제 그만 나를 괴롭히라고 외친다. 이 장면은 무덤을 열 준비를 하고 있는 행위다. 마주 하기가 얼마나 두려울까?
정말 귀신이 깨어난다.
지난번 꿈에서 죽은 남편이다. 물에서 반바지를 건져 올렸을 때 마음은 아팠으나 눈물을 터뜨리지 못했다. 울지 못한 슬픔은 또 다른 무덤이 될 뻔했다. 이번 꿈에서야 울부짖음으로 애도과정을 거친다.
귀신이 깨어난 후 두려움이 최고조에 달하자 이렇게 말한다.
"죽은 사람은 산 사람을 괴롭힐 수 없다."
여전히 논리로 나를 설득하기 위한 말이면서 동시에 그렇게 믿고 있다고 선언하지만 이 믿음은 소용이 없다. 여전히 무서움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논리가 감정을 억압했다면 이번엔 감정의 존재를 인정하지만 여전히 우위에 서고 싶어 한다.
밤길을 걷고 있다.
밤은 무의식의 세계다. 사고가 뒤로 물러서고 감정이 전면으로 올라오는 시간. 감정의 세계를 받아들였지만 오롯이 맡기기엔 불안하다. 오솔길은 내가 혼자 걸어야 하는 내적 여정을 말한다. 뒤를 비추는 건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것 들, 즉 갑자기 올라오는 죄책감, 수치심, 불안, 공포가 다시 반복될까 하는 긴장감이다. 하지만 플래시를 비추며 한 발, 한 발 나아간다.
나는 과도기를 걷고 있다. '마을 이주' 꿈에서 본 것처럼, 옛 마을은 물에 잠겼지만 아직 새 집에 들어가지 못한 그 중간 지대를.
장면이 바뀌고 무당이 점치는 장면은 뜬금없어 보인다. 한참을 고민한 지점이다.
무당은 죽은 자와 산 자를 연결하는 사람이다. 죽은 자의 한을 풀어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런 면에서 보면 너무도 자연스러운 연결이다. 무당의 비밀은 중요한 장면이 된다.
무당은 숫자로 점을 친다. 논리와 계산으로. 이전 꿈에서 선생님이 말했듯 나는 T(사고) 유형이다. 그래서 감정을 논리로 처리해 왔다. 하지만 죽은 자의 한을 푸는 방법은 T가 아니라 F(감정) 기능이어야 한다. 무당이 그동안 사용해 온 방법은 그 당시 나에게 유용하게 작동했던 것들이다. 하지만 이제 감정을 다루지 않는 방식은 사기처럼 보인다. 관찰자인 나는 안다. 무당은 예전의 나였다는 것을.
입 안에서 줄을 꺼내는 꿈(4월 22일)과 연결해 보면,
사고, 논리 중심의 성향이 감정을 처리하지 못하고 억눌렸던 것이 풀려났다. 이것을 자각한 나는 지난번 꿈(4월 말 5월 초)에서 상실을 경험하고 불안과 슬픔을 억눌러 오다, 이번 꿈에서 울부짖음이라는 감정을 격하게 토해낸다.
삶에서 내가 감당하기 힘든 것이나 보기 싫은 것을 애도 과정 없이 묻어 두기 마련이다. 원한을 가진 귀신을 만들지 않으려면 그들을 잘 어루만져 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주로 회피에 사용하는 기능은 무엇이고, 왜 그런가를 고민하게 한 꿈이다. 꿈이 던지는 메시지를 푸는 것.
꿈과의 술래잡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