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3.3 꿈
제목 : 젊어진 부모, 살아난 생명력
매질을 통해 나를 옥죄던 낡은 정체성의 먼지를 털어낸 꿈 이후, 이번 꿈은 해방된 에너지가 내면의 근원인 부모를 건강하게 회복시키는 재탄생으로 이어진다.
아버지가 아주 정정한, 건강한 할아버지 모습이다. 아버지는 죽음의 순간이 느껴질 때마다 두려움에 떨었던 걸 알 수 있다. 저쪽 편에서 젊은이들이 축구를 한다.
"내가 지금 이 나이에 저들처럼 뛸 수 있을까?" 물어본다. 예의상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내가 아버지 나이에는 친구들과 건강검진받으러 다니고, 우정을 나누면서 사는 거지 그건 아니라고 말한다. 죽음이 두려운 건 삶을 잘 살지 못해서라고 말해준다. 가만히 서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정말 삶을 살고 싶어 하는 모습이 느껴진다.
갑자기 드는 생각은, 나는 분명히 아버지가가 관속에 들어가 땅에 묻히는 것까지 봤는데 어떻게 지금 이렇게 살아 있냐고 물어본다.
엄마도 60대처럼 젊고 활기차다. 개울가에 목욕하러 갈 건데 같이 가자고 한다. 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시냇물은 물도 풍부하고 세차게 흐른다. 하지만 나는 저 위쪽에 남자들이 몇 명 있어 사람들이 갈 때까지 기다려야겠다고 말한다.
이 꿈을 꾸기 일주일 전쯤 요양보호사 실습을 끝내고 시험을 봤다.
난 초등학교시절 북한에서 날아오는 빠라들, 학교 앞 화단에 서있는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치는 동상, 간첩신고라는 말들에서 전쟁의 공포를 느꼈다.
아버지의 일제강점기 시대의 험난한 생활과 6.25 전쟁에 대한 트라우마, 엄마의 전쟁과 이후 삶에 대한 고생과 불안들을 고스란히 흡수하여 그들의 불안을 나도 같이 짊어진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중에서 나는 죽음에 대한 공포, 아니 죽음 자체보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대한 두려움, 그 과정을 필수적으로 통과할 수밖에 없는 노년기의 질병, 외로움과 고통들이 무서웠다. 죽음과 관련된 내용들을 다루는 책, 영화 또는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게 되면 눈과 귀가 커다랗게 열린다.
그래서 찾아낸 대안, 정면돌파!
피하지 않고 정확하게 들여다보기!
그 이후, 나이 드신 분들은 어떻게 생활하는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유심히 들여다보는 편이다.
특히 가장 가까이서 오랫동안 지켜볼 수 있는 부모님의 나이 드는 과정이 있었다. 지병을 가지고도 90세 넘어 돌아가신 아버지가 별 고통 없이 지냈던 세월은 죽음으로 가는 모든 과정이 두려움이 아닐 수도 있음을 깨닫게 했다. 아버지에게서 받은 마지막 감사한 선물이다. 그래서 이 두려움은 어느 정도 극복이 되었다.
요양원은 노년의 생활을 보내다 죽음에 다다르기 전 통과하는 마지막 관문 같은 곳이었다. 요양보호사 실습을 가기 전 그들을 직접 마주한 후 두려움이 더 커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있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안갯속 형체를 알 수 없었던 걱정의 실체가 드러나자 두려움은 안도감으로 바뀌었다. 그곳에서의 삶이 괜찮아 보여서가 아니다. 다른 사람들과 아버지를 바라본 경험, 이곳에서의 경험이 보태져 노년의 삶이 얼마나 다양한지 확인했기 때문이다. 나는 노년의 한 가지 모습만 두려워하고 있었다.
꿈속에서 한 참 젊어지고 건강해진, 다시 재구성된 나의 부모님 상을 보여준다.
젊은이들처럼 뛸 수 있을까?라는 아버지에게 처음엔 예의상 할 수 있다고 말하고 난 후 다시 나이에는 맞지 않는다고 수정한다.
저 멀리서 뛰는 젊은이들의 축구는 생의 전반기에 치러야 했던 과업, 즉 경쟁하며 외적인 성취를 일궈내는 삶의 상징이다. 에너지를 회복한 아버지(내 안의 남성성)는 그 시절 이루지 못한 꿈이 못내 아쉬운 듯 "저들처럼 뛸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 그 물음은 사실 나 자신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 꿈이 아닌 현실에서 뒤늦게 생명력을 회복한 나 또한, 젊은 시절 채우지 못한 성공의 갈증에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마음만 먹는다면 굳이 못 할 것도 없다. 하지만 나는 단호히 고개를 젓는다. 융이 말했듯, 인생의 후반기에 치르야 하는 내면을 돌보고 통합해야 하는 과업을 미루면서까지 그러고 싶지 않다. 인생 후반에도 그만의 달콤한 열매들이 있음을 아니까. 그래서 나는 아버지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한다. 이제는 뛸 때가 아니라, 나를 돌보고 깊은 우정을 나눌 때라고.
"죽음이 두려운 건 삶을 잘 살지 못해서예요."
이제 너무 늦어 삶을 잘 살 기회를 잃어버린 것만 같은 내게, 아직 삶은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내가 가슴 깊이 새겨야 할 말!
이제 과거의 두려움에 발목 잡히지 말고 새로운 방식으로 남은 삶을 잘 살기를...
관 속에 들어가는 걸 봤는데 어떻게 다시 살아있냐고 물어보는 장면이 흥미롭다.
죽음에서 재탄생의 과정으로, 기존의 남성성은 죽고 새로운 남성성으로 다시 살아났음을 상징한다.
엄마의 젊고 활기찬 모습은 죽음의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버지와 대비되는 장면이다. 어머니는 나의 여성성으로, 내 안의 부드러운 힘, 그동안 내가 외면했던 돌봄의 영역을, 목욕은 정화를 나타낸다.
어머니가 나를 시냇가로 안내하지만 위쪽에 있는 남자들로 인해 목욕을 하지 못한다. 이 남자들은 인생 전반기 성취의 미련을 아직 떨치지 못하고, 나와 화해되지 않은 옛 남성성들의 모습이다. 냇가까지 안내받은 나는 이들로부터 자유로워질 때까지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