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3.1. 꿈
현실에서 위험하게 노는 아이를 마주할 때면 눈앞이 하얘지며 심장이 터질 것 같다. 꿈은 종종 그 공포를 빌려와 말을 건다.
6~7살 된 아들이 창 밖 에어컨 실외기가 있는 곳에서 밖으로 손을 뻗으며 놀고 있다. 나는 떨어질까 봐 조마조마한다. 내가 아들을 부르며 그만하라고 하면 더 할 것 같아 모른 척한다. 나를 자극하기 위한 행동임을 아니까. 대신 어떻게 관심을 돌려 그만두게 할지 생각한다.
아들을 데리고 오는 데 성공하자 매를 들고 때린다. 위험하게 놀면 안 된다고, 말 좀 들으라는 그런 말들을 하면서. 부러진 자로 때리는데 잡기가 불편하니 제대로 맞지 않아 다른 도구로 바꾼다. 그래도 잘 안된다. 옆에 있던 누군가가 제대로 된 매를 건넨다. 그 매로 아들 대신 바닥에 놓인 옷 2~3벌에게 혼을 내고, 화를 쏟아내며 마구 때린다. 때리는 동안 속이 시원하다.
시작은 악몽이었지만 속이 시원하게 끝난 꿈이다.
6~7살. 한창 말썽을 피울 나이이다. 거기다 아들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이 아이가 위험한 행동을 한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조마조마한 마음은 상상만으로도 손에 식은땀이 난다. 이렇게까지 엄마를 자극하는 행동을 하는 이유가 뭘까?
악몽은 꿈이 나를 잊지 말고 기억해 달라는 간절한 호소이다.
꿈속의 인물은 모두 나이다. 그 어린 꼬마아이도 나이다. 그 아이가 나에게 호소하고픈 말이 무엇일까?
"나 좀 봐봐! 나 여기 있어!"
엄마를 슬프게 하면 안 된다는 내가 있었다. 엄마의 감정만을 읽다가 내 감정을 잃어버렸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쭉~~~.
이전 꿈에서 장례를 치르고 나니 이제 그 아이가 위험행동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제는 나를 봐달라고.
난 어쩔 줄을 몰라한다. 모른 척하면 조용히 거실로 들어온다.
무관심!
내가 나 자신을 다루는 방식이다.
내 감정을 드러내는 건 위험한 행동이다.
슬픔이 스며 나와 눈물이 나려고 하면 울면 안 된다고 나무라며 눈물을 참고,
속상하거나 억울하면 소리쳐 말하기보다 이불속으로 들어가 잠으로 대체하고,
내가 하고 싶은 욕구나 충동이 올라오면 안 되기 때문에 감정을 눌러버리는 것으로 모른 척했다.
나 자신에게 무관심하기.
효과는 있지만 삶의 빛이 꺼져 그림자처럼 알아차리기 힘든 흐릿한 아이가 된다.
그렇게 꿈속의 그 아이도 자극적 행동으로 도발해 보지만 엄마의 무관심에 집 안으로 들어왔을 것이다.
그리고 들어온 아이를 때린다.
자기 징벌이다.
그런 위험한 행동을 하다니!
그 아이는 이제 엄마에게 관심 끌기 시도를 해 볼만하다 생각했을 것이다.
지난번 장례까지 치렀으니.
엄마가 달라진 것 같으니.
그런데 엄마가 여전히 때린다.
아이는 놀란다.
하지만 엄마가 잘 때리지 못한다. '자'는 길이를 재는 도구이다. 매로 쓰이는 '자'는 그동안 내가 사용해 온 훈육의 방식이다. '부러진 자'는 나의 훈육의 기준이 부서졌음을 나타낸다. 그러다 보니 손에 제대로 잡히지도 않고 제대로 맞지도 않는다.
용기를 얻어 자신을 드러낸 아이에게 매질은 적절치 못하다고 무의식은 말한다. 내 안의 감시자의 목소리, 강요된 억압으로 나를 다루어왔던 습관들은 이제 힘을 잃어간다.
누군가 제대로 된 매를 가져다준다. '누군가'는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 지혜로운 조력자이다.
매는 권력의 상징이다. 제대로 된 매는 더 이상 아이(내 본연의 모습)가 아니라 옷(페르소나)을 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옷은 나의 정체성의 표현이다. 그동안 내가 오랫동안 해왔던 역할들.
말 잘 듣는 아이,
엄마를 보살피는 아이,
내 주장을 하지 않는 아이.
그 옷들을 마구 때린다.
나의 감정들을 마구 표현하는 시작점이다.
잃어버린 내 삶의 생명력을 다시 깨워낸다.
속이 시원하다.
묵은 이불의 먼지를 털어 햇빛에 흩날려 보내듯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묶어 두었던 우울들이 흩어져 날아가 버린다.
그 아이는 이제 더 이상 위험하게 놀지 않아도 된다. 엄마가 알아봐 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