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의 미용 生活 : 첫 번째 이야기
: 시작하는 말
예전에는 누가 나한테 수수하다 그러면, 그게 꼭 촌스럽다는 말 같아서 싫었는데
차곡차곡 나이를 먹으니까 그 말이 안 싫다.
돌이켜보니 유난히 유난을 떨면서 지켜냈던 일도 나에게 별로 득이 된 게 없고,
대충대충 설렁하게 흘려 보냈던 일들이 외려 나를 살렸더라.
그러니 목숨 걸고 그렇게까지, 악을 쓰면서 살 건 아니다.
수수한 삶. 수수하게 흘러가는 하루하루.
이것의 소중함을 너무 늦게 깨달은 게 좀 아까울 뿐이다.
결코 미모로 승부할 수 있는 얼굴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건 아마도 여덟 살? 아홉 살쯤?
아마 그 무렵이었을 것이다. 비교적 일찍 깨달았다. 내 또래 아이들이 자신의 객관적인
생김새와 상관없이 저마다 자아도취에 빠져서는 자기는 공주네, 뭐네, 할 무렵에도
난 전혀 안 그랬다. 못 그랬다. 양심이 있어도 너무 지나치게 있었나 보다.
맞는 말 아닌가,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거울만 가만히 들여다봐도 금세 들통이 날 텐데
저 혼자 이쁘다 우긴다고 그게 합리화가 될 건가 말이다. 대신, 엄마아빠를 좀 원망했었던 것 같다.
쌍꺼풀이 없는 애로 빚어 놓은 걸, 코보다 입이 더 튀어나온 애로 만들어 놓으신 걸,
땅딸막한 키에 먹으면 뭐든 그 즉시 살로 가는 비만형 어린이로 완성해 놓은 것까지도, 모두 다!
나는 예쁘지 않다고 결정한 채 어른이 되었다. 미모가 딸리면 다른 걸로 승부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성격 좋은 사람이 되기로 했다. 누구나의 말들을 잘 들어 주는 사람이기로 했고,
하고 싶은 말도 가려서 했다. 신경질이 나도 욕은 안 했고, 되도록 많이 웃어 주었다.
원만하고 따뜻한 사람이 되자고 생각기 때문이었다. 빨간머리 앤처럼 그렇게.
어라? 내가 그러자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주었다. 개중엔 날더러 예쁘다고 해 주는 이도 있었다.
축 처진 나의 두 눈을 말갛게 들여다보면서 [복슬강아지 눈 같아요.] 하고 말해 준 사람 있어서
그 사람과 결혼하고 엄마가 되었다. 그리곤 미모 같은 건 더 이상 아무 의미 없는 일로 치부하면서
세월을 먹어치웠다. 사는 게 콩 튀듯, 팥 튀듯 하는데야 예쁘던지 말던지,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난 그저, 매우 충실하게 최선을 다해서 나다운 나로 살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꼬꼬마 시절의 어린 내가 세웠던 그 계획은 맞춤이었다.
안 예뻐도 얼마든지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룰을 만들었다는 건 정말 기특한 일이 아닌가.
별로 잘난 구석이 없는 사람으로 세상에 내보내 준 엄마아빠의 전략도 훌륭했던 것 같다.
너무 잘났으면 너무 오만했을 수도 있으니까.
생김이 별로였던 나는 아무도 내 얼굴을 궁금해 하지 않도록, 책을 만들면서 살고 있다.
고요하다. 나지막하고 소박한 삶이다.
그래서 여기에 이런 글, 책인지 잡지인지 싶은 것을 실어 본다.
그런 얘기가 하고 싶기 때문이다.
사는 게 너무 복잡했고, 지금도 그러하기는 하지만
앞으로 나는 좀 조용해지고 싶다는 이야기.
브런치 매거진을 시작해 보기로 한 뒤 붙인 이름은 [나지막하고 소박하게]다.
보통의 날들, 우리들의 두서 없는 사는 이야기를 펼쳐 놓을 모양이다.
그 중 첫 이야기는 미용 생활이다. 어른들의 미용 생활.
삶의 끄트머리쯤에서 비로소 내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얼굴인지, 그런 걸 깨닫고는
지금보다 조금만 더 예뻐지자고 결심해 보는 그런 어른들의 이야기.
그래서 기어이 우리 모두가 다같이 너무나도 예뻐지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러니 느긋하게 기다려 줄 수 있는 사람이 여기에 들어와서
나의 이야기를 읽어 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