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보다 더 좋은 학교

수필과 소설 짓는 여자 홍재

by 홍재숙

아들보다 더 좋은 학교


시부모님의 80대 시절, <아들보다 더 좋은 학교> 순례는 그야말로 광풍이었다. 치현경로당 회장으로 장기집권하신 말기에 덜컥 뇌일혈로 쓰러진 후부터 순례는 시작되었다.

병원에서 퇴원하신 후 어느 정도 회복되었을 무렵 아버님은 경로당 근처에는 발걸음도 안 하셨다. 꼿꼿한 자존심이 용납을 안 했기 때문이다.

두 분의 초기 순례는 '묻지 마 공짜'로부터 시작되었다. 업체는 화장지 달걀 보리쌀 가래떡 주방세제 같은 공짜선물을 듬뿍 안겨주면서 "우리 업체는 절대로 물건을 강요하지 않습니다."라는 멘트까지 날리면서 2시간 꼬박 노인들을 예우해 주며 환심을 사는 신바람 상술을 펼쳤다. 여기에 하루가 심심한 동네 할머니들은 입소문을 내며 몰려들었다.

매일 방문하면 경품까지 지급하는 등 상품을 사라는 말은 일절 안한채 일주일 동안 인심 좋게 공짜선물 세례를 퍼붓던 끝에 드디어 슬슬 상술이 나왔다,

"에구, 미안해서 어째. 시늉이라도 이 정도는 사줘야 쓰겠네"

로 시작된 미안한 구매는 매일 티스푼으로 한 숟가락씩만 먹으면 만 가지 병을 다스린다는 소금이었다. 누가 보아도 평범한 소금이 십만 원이라는 가격으로 둔갑하여 조그만 통에 담겨서 화장대에 귀하게 얹혔다.

연이어서 고3수험생이 깔고 앉으면 뇌세포가 살아 움직여 성적이 오른다는 금박실로 두른 개당 오만 원짜리 방석 4개는 막내 손녀 의자와 식탁의자에 놓였다. 이건 비싼 베개이니 꼭 베고 자라 하시며 끝내 가격을 가르쳐주지 않는 회색 플라스틱 잘디잔 둥근 조각이 잔뜩 들어있는 베개가 어머님 방과 우리 방에 들어왔다.

다시 두 분의 순례는 불교를 도용한 ***업체에서 부처님을 파는 상술에 혹하셨는데 , 이곳 역시 사근사근한 남자들이 "아버님 어머님" 하며 물건을 팔았다. 십이지 띠 동물이 새겨져 있는 수저 등 잔챙이부터 이것저것 사더니 드디어 큰일을 벌이셨다. 사망 시에 사찰에 영가를 모셔주며 스님이 매일 축원을 해준다는 극락왕생발원위패를 한기에 백만 원씩 돌아가신 시할아버지와 시할머니까지 네 분 몫을 사셨다. 집에는 <안치단 사용승인서 봉안증명서 **종 천년고찰**사>라고 위엄 있게 금박활자로 찍힌 종이 네 장을 가지고 오셨다.

이제 두 분의 관심은 <***의료기>로 바뀌었다. 뇌일혈로 쓰러진 후로 말씀이 어눌해지고 행동도 느려지던 아버님은 이 업체 출석이 유일한 소일거리가 되었다. 학교처럼 일요일과 빨간 날을 빼고 몇 개월을 꼬박 다니던 아버님은 어느 날 소변색이 맑아졌다며 이 기계를 사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모두들 이번에는 참으시라고 말리니 며칠 동안 버럭 역정을 내시며 이마에 깊은 골짜기를 만드셨다. 그런 사연 끝에 집에 들여온 이 기계는 녹음기만 한 크기에 전선이 몇 가닥 달린 물건이다. 이 물건은 콧속에 집게처럼 생긴 전원을 드밀면서 몸 안으로 미세한 전기를 흘려보내는 원리이다. 치료한다고 열심히 몰두하시는 모습을 보면 코안이 외딴 숲 속 오두막처럼 발그레 등불이 켜지는 모양새다. 두 분은 번갈아가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등불을 켰다.

효도와 불효의 간격은 어느 만큼이 적당할까? 분명히 이론으로는 삭막한 고령화시대에 외로운 노인들에게 접근한 나쁜 상술인 줄 알지만 아이처럼 기뻐하시는 마음을 거스르기가 쉽지 않다. 80대 시절, 두 분은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아들보다 더 좋은 학교에 다니셨다. 사백만 원이 넘는 만만치 않는 돈을 주고 구매한 효력을 누렸다.

지금은 아버님은 92세의 일기로 극락세상으로 가시고 98세의 어머님만 남아 노치원 학교에 다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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