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수필과 소설 짓는 여자 홍재

by 홍재숙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친구를 잃는 것이다. 익숙했던 친구가 영영 이 세상을 떠나 저세상으로 편입되었다는 사실은 상실을 넘어 큰 충격을 준다. 노인에게는 더욱 그렇다. 올해로 아흔여덟 살 되신 시어머니는 이젠 친한 친구가 없다.

몇 해 전에 시어머니와 진한 정을 나눴던 명희 할매가 저쪽 세상으로 훠어이 떠나셨다. 어머니에게는 해일처럼 엄청난 상실이 밀려왔다.

"어머니 계시우. 심심해서놀러왔수. 갈 데가 여기밖에 없어. 늙은이가 자주 온다고 흉보지 말우."

비리비리한 몸으로 3층계단을 비척걸음으로 올라오신 명희 할매의 첫말은 늘 똑같았다. 이내 시어머니는 어서 오라고 손을 잡아끌고 마주 앉은 두 분의 말씀은 시시콜콜한 가정사부터 정치 이야기까지 하고서야 끝을 맺었다.

손주 자랑, 며느리 흉 살짝궁 보기까지 끝이 없었다. 그런데 두 분 다 아들들의 흠집을 말하지 않는다. 천하에 다시없는 효자 아드님을 두신 양 "우리 애비가..."로 시작되면 입에서 옥구슬 서 말이 떨어져서 쟁반에 수북하다. 마지막에 "이러다간 나라 망하겠어 유..."로 정치 문화 경제 전반에 걸쳐 나라 걱정을 하시다가 끝을 맺는다. 입가심하라고 내어드린 차와 과일이 바닥을 드러내고, 두 분은 나란히 공원으로 바람 쐬러 가신다.

이렇게 말동무로 사근사근했던 명희 할매가 안 계시니 시어머니의 혼잣말이 깊어진다. "에이, 그렇게 징징대더니..." 베란다에 나가 밖을 내다보는 시간도 길어지셨다.

알뜰이 지나쳐 짠내가 난다고 놀리던 앞집 구서 할매도 떠나셨고, 새댁 시절부터 바람을 가득 품은 남편이 집안살림은 나 몰라라 하고 나비가 되어 다른 꽃을 찾아다녀도, 억척같이 살림 꾸려 사 남매를 번듯하게 키워냈던 여장부 상미 할매도 떠나셨다. 이젠 친한 친구가 없다. 친구 대신 노치원에 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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