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 프레임’에 중독된 언론, 건강한 보수를 죽였다
국민의힘 대변인이 시각장애인 김예지 의원을 앞에 두고 “국민의힘에는 장애인 할당이 많다”고 말했다. 그 한 문장은 장애인을 동등한 동료 의원이 아니라, 시혜와 배려의 대상으로만 보는 인식이 고스란히 드러난 반인권적 발언이다.
만약 똑같은 말을 민주당 대변인이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다음 날 모든 조간신문 1면에 이 발언이 박제됐을 것이다. 종편과 방송사들은 하루 종일 “인권 감수성 붕괴”를 외치며 패널들을 불러 모았을 것이다. 장애인 단체들은 민주당사 앞에서 규탄 집회를 열었을 것이다. 민주당은 최소 일주일 동안 ‘위선 정당’이라는 낙인을 뒤집어쓴 채 언론의 융단폭격을 견뎌야 했을 것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례를 보면 이 편파성은 더 또렷해진다. 조국 전 장관 딸의 입시 의혹이 불거졌을 때 언론은 “공정”과 “정의”를 내걸고 세상을 뒤집듯이 보도했다. 가족의 과오까지 낱낱이 파헤치며 매일같이 새로운 의혹을 생산해냈다. 반면, 국민의 힘이 여당 시절 임명한 심우정 검찰총장 후보자의 딸을 둘러싼 취업 특혜 의혹은 상대적으로 조용히 지나갔다.
숫자는 이 차이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민언련에 의하면 조국 전 장관 딸 관련 보도량은 5,757건이었다. 심우정 후보자 딸 관련 보도는 255건. 무려 23배의 차이다. 한쪽은 현미경을 들이대 모공 하나까지 확대해 난도질하고, 다른 한쪽은 망원경으로 대략 윤곽만 훑고 지나간 셈이다. 이 상황을 두고 “양쪽 다 문제 있다”고 말하는 건 쉽다. 그러나 이것을 ‘공정한 보도’라고 부를 수 있는가.
왜 이런 극단적인 차이가 반복될까.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안 되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된다.”라는 말이 있다. 언론의 시각에서, 국민의힘의 부정부패, 특권, 안하무인적 태도는 이제 ‘개가 사람을 무는’ 일상이다. 기대치가 낮으니 놀라움도, 분노도 덜하다. 뉴스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다.
반면 민주당은 다르다. 스스로 공정과 정의, 개혁을 내걸어 온 정당이다. 따라서 민주당에서 발생하는 흠결은 단순한 잘못이 아니라, 그들이 앞세워 온 가치에 대한 배신이 된다. “사람이 개를 무는” 드문 사건, 곧 높은 뉴스 가치가 붙는다.
바로 이 지점에서 언론이 즐겨 쓰는 칼이 등장한다. ‘위선 프레임’이다. 언론은 부정부패나 범죄 그 자체보다 ‘위선’에 더 큰 도덕적 형벌을 부과한다. 국민의힘이 저지르는 일은 그냥 ‘범죄’이지만, 민주당이 저지르는 일은 ‘위선적 범죄’가 된다. 이 프레임이 작동하는 순간, 민주당은 동일한 행위를 해도 몇 배의 도덕적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구조에 갇힌다. “입으로는 정의를 외치더니 뒤로는 똑같다”라는 조롱이 덧붙는 순간, 비판은 배가된다.
언론이 이처럼 민주당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이유는 흥행 때문이다. 언론은 스스로를 ‘심판자’라 부르지만, 실제로는 ‘중계자’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무너지는 게임은 흥행에 실패한다. 시청률이 떨어지고, 조회수가 줄어든다. 언론이 먹고 사는 것은 클릭이다.
그래서 언론은 양측이 피를 튀기며 싸우는 ‘호각세’를 연출하려 한다. 그래야 자신들의 존재감도 커진다. 한쪽이 도덕적으로 우위에 서 있으면, 언론은 어떻게든 페널티를 부여해 그 우위를 깎아내린다. 그래야 다른 한쪽이 상대가 가능해지고, ‘게임’이 성립된다. 이건 공정성의 영역이 아니라 기계적 균형, 더 정확히 말하면 흥행 조작의 영역이다.
언론은 이렇게 반박할지 모른다. “우리가 민주당에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게 한국 정치에도 나쁘지 않다”고. 어쨌든 민주당을 긴장시켜야 더 건강한 정치를 만들 수 있다는 말인 거 같은데 과연 그럴까? 이렇게 뒤틀린 정치지형에서 건강한 정치가 나올 수 있을까?
현재 한국 언론은 공정하게 감시하는 ‘워치독’의 역할을 사실상 포기하고 양쪽의 무게만 억지로 맞추는 ‘균형추’ 노릇에 몰두하고 있다. 이 비정상적인 압력의 결과, 민주당은 진보적 의제뿐 아니라, 국민의힘이 포기한 ‘건강한 보수’의 역할까지 떠맡고 있다. 복지와 인권만이 아니라 민족이나 재정 등 보수 의제까지 동시에 감당해야 하는 기형적인 위치에 서있다.
문제는 건강한 보수가 빠져나간 국민의 힘 내부 공간이다. 그 공간을 막말과 혐오, 음모론과 선동의 극우 세력이 차지해버렸다. 언론의 기계적 균형이 극단주의 세력이 기생하고 번식할 수 있는 광활한 영토를 제공한 것이다.
요즘 중앙 보수 언론들조차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하며 궤변과 혐오를 쏟아내는 극우 유튜버들 때문에 곤혹스러워하는 눈치다. 그러나 그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산소를 공급한 것이 누구인가. 한쪽에는 유난스러울 정도로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고, 다른 한쪽에는 끝없이 면죄부를 발급해준 바로 언론들이다. 당신들이 민주당을 ‘위선’ 프레임으로 집요하게 사냥하는 동안, 국민의힘의 뒤편에서는 혐오와 극단이 자라났다. 당신들이 건강한 보수를 죽였다. 그래서 극우가 탄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