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슬이 된 한국의 정규직

한국 노동시장 비정규직 차별은 과거제의 망령

by 김욱

지난 4월 9일, 이재명 대통령은 “같은 조건이라면 비정규직의 보수가 더 많아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고용이 불안정할수록 더 많은 보상이 붙는 것이 상식이라는 설명이었다. 사실 이 말은 노동의 원리로 보면 당연한 말이다. 불안정성과 위험, 낮은 예측 가능성은 그 자체로 비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정반대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25년 6~8월 기준 월평균 임금은 정규직이 389만6000원, 비정규직이 208만8000원이었다. 불안정성이 더 큰 쪽이 오히려 더 적게 받는 구조가 이미 굳어져 있는 셈이다.


이 발언을 둘러싼 반발도 거셌다. 특히 공정과 능력주의에 민감한 젊은 세대에서 반응이 두드러졌다. “힘들게 공부해서 정규직이 됐는데 왜 비정규직이 더 많이 받아야 하느냐”, “그럴 거면 누가 치열하게 준비해서 정규직 시험을 보겠느냐”는 식의 불만이 쏟아졌다. 그러나 이 주장엔 문제가 있다. 공정을 경쟁의 입구에서만 이해하고 이후의 보상 질서에는 적용하지 않고있다. 공정이란 선발 절차의 투명성만이 아니라, 동일하거나 유사한 노동에 대한 대가가 얼마나 합리적으로 책정되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들은 기성세대의 권위주의와 낡은 관습을 향해서는 “유교적 꼰대 문화”라고 비판하지만 비정규직 문제 앞에서는 전혀 다른 얼굴을 보인다. 정규직이라는 좁은 관문을 통과했다는 사실만으로, 이후 수행하는 노동의 내용과 무관하게 더 높은 보상과 더 큰 존중이 따라야 한다고 여긴다. 이 감각은 놀라울 만큼 조선시대의 과거 중심주의와 닮아 있다. 시험을 통과했다는 사실이 곧 사람의 격을 나누는 기준이 되는 사고방식, 바로 그것이다.


조선의 과거제도는 단순한 관료 선발 장치가 아니었다. 그것은 합격과 동시에 신분이 수직 상승하고 가문의 위상까지 달라지는 통로였다. 급제는 능력의 증명인 동시에 평생의 특권을 보장하는 자격증이었다. 그 특권은 “공정한 경쟁을 통과했다”는 명분 아래 정당화되었다. 능력주의는 평등의 언어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합격 이후의 거대한 불평등을 승인하는 장치이기도 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조선의 과거제와 오늘의 정규직 우대 논리가 만난다. 무엇을 얼마나 잘하고 있는가, 어떤 위험을 감수하는가, 얼마나 불안정한 조건에서 일하는가보다 먼저 “어떤 관문을 통과했는가”가 대우의 기준이 된다. 임금이 현재의 노동에 대한 가격이 아니라, 과거의 입직 시험에 대한 포상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물론 현실의 모든 임금 격차를 단순화해서 볼 수는 없다. 정규직 임금에는 장기 근속, 숙련 축적, 조직 책임, 승진 구조 같은 요소도 반영된다. 그러나 같은 일을 하거나 유사한 수준의 책임을 지는 상황에서도, 오직 고용 형태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큰 격차가 지속된다면 그것은 노동시장 논리라기보다 신분 질서의 잔재에 가깝다. 특히 비정규직이 더 큰 불안정성과 해고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더 낮은 보수를 받는 구조는, 합리적 계약 질서라기보다 관문 통과자의 특권을 옹호하는 문화에 의해 지탱된다고 봐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취업은 벼슬길이 아니다. 직장은 계약에 따라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를 받는 공간이다. “같은 일을 해도 내가 정규직 시험을 뚫었으니 더 받아야 한다”는 감각은 자유계약 사회의 원리와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과거급제 사회의 잔향에 더 가깝다.



여기서 특히 흥미로운 것은 일부 젊은 세대가 전통을 대하는 이중적 태도다. 일상 속 유교적 예절과 가족주의, 위계적 문화는 낡고 비합리적이라며 비판하면서도, 정규직이라는 기득권을 방어할 때만큼은 전통이 남긴 관문주의를 성실하게 계승한다. 자신에게 불편한 전통은 타파해야 할 적폐가 되고, 자신의 이익을 지켜주는 전통은 공정한 질서가 된다. 전통에 대한 비판의 언어는 현대적인데, 이해관계를 방어하는 본능은 놀라울 만큼 조선적이다.


과거제가 나쁜 전통은 아니다. 오히려 과거제적 경쟁 문화는 오늘의 한국을 만든 강력한 동력이기도 했다. 오랜 세월 이어진 입신양명의 열망과 교육 숭상은 전 사회를 치열한 학습 경쟁으로 몰아넣었고, 그 결과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의 인적 자원과 교육열, 평균적 교양 수준을 만들어냈다. 한국의 압축 성장과 높은 노동 경쟁력 뒤에는 분명 이 전통의 힘이 있었다. 문제는 그 유산을 어디까지 계승하고 어디서 멈출 것인가이다.


장점이 컸다고 해서 그 원리와 부작용까지 함께 숭배할 수는 없다. 시험을 통한 선발은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선발의 정당성이 곧 선발 이후의 특권까지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과거급제가 신분을 부여하던 시대는 이미 끝났다. 정규직 합격 역시 현대 사회에서 하나의 고용 계약일 뿐 신분 증서가 아니다. 긍정적 유산은 이어가되, 입직이 곧 신분이 되는 낡은 감각은 이제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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