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프면 남도 아프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이스라엘군의 잔학 행위를 비판하며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내가 아프면 타인도 그만큼 아픕니다. 나의 필요 때문에 누군가 고통받으면 미안한 것이 인지상정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스라엘 외무부가 즉각 반발하며 외교적 마찰을 빚기도 했으나, 이 메시지는 낯설면서도 신선한 울림을 주었다. 그동안 한국의 지도자들이 국제 인권 이슈에 대해 철저히 외교적 중립을 지키거나 원론적 입장만 표명해 온 전례를 떠올려 보면, 중동의 민감한 분쟁 한복판을 향해 던진 이 발언은 새로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내가 아프면 남도 아프다’는 이 대목은 서구 오피니온 리더들의 발언과 결이 많이 다르다. 그들은 대개 정의, 권리, 원칙 같은 추상적 언어로 말하지만, 이 발언은 몸으로 먼저 느끼는 감각에서 출발한다.
불의를 규탄하는 서구의 정치인이나 지식인들이 사용하는 수사학을 들여다보면,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과 다른 지점을 볼 수 있다. 평생을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 철폐에 바친 노벨 평화상 수상자 데스몬드 투투 주교는 "불의의 상황에서 중립을 지킨다면 당신은 억압자의 편을 택한 것이다"라고 일갈했다. 마틴 루터 킹 목사 역시 "어디서 발생한 불의이든 그것은 모든 곳의 정의에 대한 위협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이 발언들은 불의에 대항해 연대를 촉구한다는 점에서 이재명 대통령 메시지와 궤를 같이 한다. 그러나 그 연대의 매개체가 개별 인간의 '고통'이 아니라 '정의'라는 추상적 가치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러한 서구 수사학의 이면에는 인권의 근원을 초월적 존재에서 찾는 오랜 철학적, 종교적 전통이 깔려 있다. 서구 인권 사상의 뼈대가 된 미국 독립선언문이 모든 인간이 창조주로부터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다고 명시한 것처럼, 서양 문명에서 절대자에 대한 경외는 도덕과 권리를 성립시키는 궁극적인 기준점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인권 유린은 단순한 신체적 타격을 넘어 창조주가 부여한 질서를 거스르는 신성모독적 범죄다.
반면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문명은 보편적인 추상 원칙이나 신의 명령보다는 철저히 자기 몸의 감각에서 도덕의 출발점을 찾는다. 인권 침해는 추상적인 법의 위반이 아니라 당장 내 몸이 느끼는 아픔으로 인식된다. 이는 동아시아 문명이 초월적 신이 아니라 '인간'을 도덕의 궁극적 기준으로 삼아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도덕의 기저에는 수천 년간 동아시아인의 정신세계를 지배해 온 유교적 사상과 정서가 깊게 흐르고 있다. 맹자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타인의 고통을 차마 외면하지 못하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을 품고 있다고 보았다. 더 나아가 내 마음을 미루어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추기급인(推己及人)’의 자세를 강조했다. 공자가 강조한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 즉 '자기가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행하지 말라'는 가르침 역시 나를 기준으로 타인의 처지를 헤아려 보라는 상호성의 요청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국제사회를 향해 던진 “내가 아프면 타인도 아프다”는 말은 바로 이러한 공자와 맹자의 사상을 담고 있는 언어다.
유교 윤리는 서구의 윤리처럼 파편화되고 독립된 개체로서의 투쟁적 자아를 상정하지 않는다. 대신, 타인과의 복잡한 관계망 속에서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형성되어 가는 '관계적 자아'를 전제한다. 군신, 부자, 부부, 형제, 붕우라는 오륜(五倫)으로 대변되는 이 촘촘한 관계 속에서 개인은 배타적 권리만을 주장하는 권리 주체라기보다는, 상호 돌봄과 배려의 책임을 다해야 하는 도덕적 행위자로 존재한다.
정치 지도자의 짧은 소셜미디어 메시지 하나에도 이처럼 오랜 문명의 흔적이 지문처럼 새겨져 있다. 서구의 정치인들이 이성과 법률, 그리고 보편적 절대자의 질서를 호명하며 불의와 싸울 때, 한국의 지도자는 내 몸이 느끼는 고통을 타인의 찢긴 삶에 투영하며 멈춤을 호소했다. "내가 아프면 남도 아프다"라는 말에는 너와 내가 분리되어 대립하는 개체가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라는 강력한 선언이 담겨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한국 휴머니즘의 원형을 세계에 잘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