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게으르지만 게으르지 않다.
나는 용서한다.
게으른 나를.
지난주에 글쓰기 첫 문장이 주어졌다.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은 충분했다. 하지만 글은 진척 없이 원고 제출일이 코 앞이다. 그동안 뭐 했냐고 묻는다면. “생각을 모았다.”라고 말하겠다. 절대 게으르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는 게을러서 글을 다 못 쓴 것이다.
레오 니오니의 그림책 <프레드릭>에는 오래된 돌담 옆 헛간에 사는 들쥐 프레드릭이 나온다. 프레드릭은 낭만적이고 따뜻한 마음을 가졌으며, 수줍음을 많이 탄다. 늦가을 무렵 다른 들쥐들은 겨우살이 준비에 여념이 없다. 그러나 프레드릭은 겨울이 다가와도 다른 들쥐들처럼 양식을 모으지 않는다. 태양의 따뜻한 온기와 여름에 볼 수 있는 찬란한 색깔, 그리고 계절에 어울리는 낱말을 모은다. 다른 들쥐들이 볼 때 게으르고 공상만 즐기는 답답한 들쥐처럼 보인다.
나도 처음에는 프레드릭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다. 프레드릭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린이들에게 감동을 선사해야 할 그림책에서 게으른 프레드릭이 웬 말인가? 겨울이 되어 저장해 놓은 먹이가 떨어지자, 들쥐들은 배가 고파 재잘댈 힘조차 잃어버린다. 그때 시인 프레드릭은 가을날 모아둔 자기 양식을 꺼내 다른 들쥐들에게 나누어 준다. 쥐들은 프레드릭이 모아 놓은 햇살과 색깔과 아름다운 낱말에 추위와 배고픔을 잊고 행복해한다. 프레드릭은 사회가 원하는 기준으로 보았을 때 게을러 보였을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엔 멋진 삶을 추구하는 주인공이다. 자신의 기준을 세워 묵묵히 자기가 가고자 하는 길을 간 프레드릭을 따라 해 보고 싶다.
올해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는 어른과 어린이에게 울림이 있는 그림책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 머릿속으로만 생각하고 전혀 하지 않는다. 이래도 될까? 걱정도 되지만 프레드릭처럼 내 주변에서 따뜻한 이야기,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모으고 있다. 나는 게으르지만 게으르지 않다.
나는 게으른 완벽주의자이다. 뭐든 할 거면 제대로 하고 싶다. 그래서 실수 없이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크다. 너무 커서 회피하고자 자꾸 일을 미루게 된다. 그림책 쓰기도 그렇다. 그랬던 나를 용서한다. 게을러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자신과 삶을 돌볼 여유를 가지는 것이 더 창의적이고 효과적으로 살아가는 방식일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천천히 잘 가고 있다. 다른 사람의 기준으로 가지 않고, 나의 속도로 잘 가고 있으니까 괜찮다.
게으른 내가 오늘 생각한다.
‘그림책 첫 문장은 뭐가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