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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차장 그 사람

by 청초마녀

"오빠! 세차장 그 xx 봤어. 지금 마트에 있어!"


한가한 시간을 마트에서 어슬렁거리며 보내던 날, 마트 산책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과자 코너를 지날 때였다. 검은색 롱패딩을 입고, 검은색 마스크를 써서 얼굴을 다 가려도 절대 잊을 수 없는 눈빛 하나가 거기에 있었다. '그 새끼'라 불러도 시원찮고, '그'에서 'ㅡ'를 빼고 'ㅐ'를 갖다 붙여도 해소되지 않는 분노가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를 직접 체험하게 해준 당사자를 마주친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나를 벌써 잊은 건지, 못 알아본 건지, 보고도 모른 척한 건지, 나란 존재는 모자이크 처리해버린 채 계산대 앞으로 걸어갈 뿐이었다. '지금, 나만 떨리는 거야?'


그때도 그랬다. 세차장에 도착하자마자 매트 세척기를 돌리고, 먼지를 빨아들이고, 내부 손걸레질을 하는데 날씨가 너무 추워서 꼼꼼하게 닦기가 불가능했다. 대충대충, 빨리빨리가 관건. 게다가 저녁엔 어머니 댁에서 식사하기로 해서 남편과 아이들은 이미 도착해 있던 터라, 여유 부릴 시간도 많지 않았다. 아니다. 이쯤에서 솔직히 밝혀두자면, 날씨만 허락했더라도 걸레로 외부 세차를 하지 말라는 금기 사항을 어기고, 쓱쓱 한 번 문질러줬을 거다. '나도 안 되는 줄 알았다니까? 걸레로 광내고 있는 사람들 보면 저래도 되나 싶었다니까?' 하고 나 자신을 위한 변명을 제작하면서 말이다. 그런 식으로 한 번 해봤으니까, 넘지 말라는 선을 넘어봤는데 별 탈 없었으니까, 눈치껏 닦고 눈치껏 사라져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었다.


집에서 대야를 가져온 건 전적으로 편리성을 위해서였다. 세차장 수돗가에 묶여있는 것은 엑스스몰 사이즈라 먼지 한 톨 걸러내기에 쉽지 않았기에. 그런데 대야와 고무장갑을 꺼내는 모습이 세차장 규율을 어지럽히는 유력한 용의자로 보였는지, 실내에서 CCTV로 지켜보던 사장은 내가 걸레로 운전석 창문 쪽을 닦자마자 득달같이 달려와서 나를 현장범으로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설마설마했는데 지금 이렇게 걸레를 빨아 차를 닦는 건 남의 재산을 훔치는 짓인 걸 아냐고, 이건 절도라고, 당장 사과하라고 말이다. 다른 때 같으면 변명할 자리에 미안하다는 말 한 줌부터 먼저 뿌릴 텐데, 그의 공격적인 언사로 불쾌해질 만큼 불쾌해져서 그대로 수긍하고 싶지 않았다. '절도? 그거 내가 해 봐서 아는데, 왜 그때만큼 수치심이 들지 않을까?' 방어할 수 있는 말들을 그러모아 던지고 쳐내고 다시 던지기를 몇 번. 하지만 그때마다 돌아온 건 그의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뿐이었다.


"이것 봐. 사람이 경청할 줄도 알아야지. 자기 말만 해."


사장님, 지금 계속 혼자 얘기하고 계시거든요? 라고 말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의 흥분된 언어에서 '왜 이렇게까지 무례하게 구는가'에 대한 속 사정을 조금은 헤아릴 수 있었다. 새벽에 와서 바가지로 물 뿌리며 세차하는 사람, 온갖 잡동사니 다 버리고 가는 사람 등. 그동안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을지 이해되는 측면이 있어서 '이 사람, 쌓인 게 많구나. 지금 그걸 나한테 풀어내는구나!' 하고 받아넘기려 했다. 하지만 '아무 말'이나 견뎌내는 면역력에도 한계가 있었다. 내가 가는 곳마다 쫓아다니며 무적의 논리를 내세우는 것도 모자라, 걸레 하나 빨던 것도 빼앗으며, "이 물, 내가 내 돈 주고 보일러 돌리고 트는 거니까 사용하지 마!"라는 말을 들을 땐 기가 막혀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이없음에 넋을 잃고 바라보기만 할뿐.


조용히 입을 닫았다. 서둘러 흩어놓은 매트를 챙기고 시동을 켰다. 그렇게 지질함과 지질함이 맞부딪히는 공간을 빠져나가려는데, 차를 가로막고 핸드폰으로 자동차 전면 사진을 찍으며 "신고해도 되죠? 신고합니다~" 하며 끝까지 열 올리는 그 앞에서, 나의 밑바닥을 마주하는 것도 괴롭지만 타인의 어지러움을 지켜보기도 쉽지 않은 일이란 걸 겪어냈다. 서둘러 자리를 뜨긴 했지만, '세차 미수' 사건의 전말을 되돌아보았을 때 과도한 히스테리 폭격을 받은 것 같아 몸 안에 흐르는 분노 에너지를 적절히 흘려보낼 길이 없었다. 그래봤자 남편에게 전화해 "나 화났어!"라고 알리는 것뿐. 솔직히 남편에게도 사실 그대로의 정황을 밝히지는 못했다. 한 번의 팔 휘저음으로 깨끗해진 창문을 가리키며, 손 닿는 데까지 깨끗히 닦아내려던 의향은 숨기고, 물에 적셔놓은 '남은' 걸레가 아까워 쓱싹쓱싹했을 뿐이라고…. 어차피 짐짓 알고 있을 변호를 해 가며 함께 응징할 것을 촉구했다.



나의 잘못도 일부 인정하기에, 혹은 해코지가 무서워 한발 물러서긴 했지만, 당시 즉석에서 하지 못한 말들은 쉼 없이 잔열을 내뿜고 있었다. '사모님은 좋은 분이던데, 당신 같은 남편을 만난 게 안타깝네요' '아드님이 00 초등학교에서 00 수업 듣죠? 아드님은 아빠를 안 닮길 바라요' 이런 인신공격성 말들이 나뒹구는 걸 보면 꽤 내상이 깊었던 것 같긴 한데, 사실 나 자신도 별반 다를 바 없는 인물이라는 걸 알기에 누군가를 쉽게 원망하고 탓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다가가려다 말았다. "고소하신다면서요, 경찰서에서 연락 오길 기다리고 있어요"라고 맴도는 말은 내부 자체 필터로 걸러버렸다. 긁어 부스럼 만들어봤자 나올 건 글 한 편밖에 없으니까. 아니다. 이미 건진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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