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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저씨 3

by 청초마녀

언제부터인가 나의 여행지는 '산'을 중심으로 편성되었다. 아무리 가고 싶었던 곳이라도 그 지역의 산을 오르지 않으면 무언가 허전했고, 하루를 통째로 내어 산에 다녀오면 20첩 밥상 한 끼를 먹은 것 같은 든든함이 느껴졌다. 다른 근사한 장소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포만감. 태백도 마찬가지였다. 고생대자연사박물관, 이라는 아이들 데리고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 있었지만, 장거리 운전을 감당하기에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고, 태백산이 마음에 스며들고 나서야 숙소 검색 단계에서부터 파생되는 스트레스를 껴안을 수 있었다. 누군가는 여행 떠나기 전, 둘러볼 곳과 맛집을 검색하고, 여행지에서 입을 옷을 요일별로 세팅하는 과정 자체가 즐겁다고 말하지만, 나는 아이들 옷과 속옷을 챙기다가 '부족할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면, 쇼핑이고 뭐고 다 귀찮고 빨랫비누 하나 챙겨 넣는 여자이니 말이다.



이런 내가 왕복 4시간 30분 코스의 산을 오른다고 비상식량을 바리바리 준비할 리 없었다. 아이들에게 추가로 껴입을 양말 한 켤레와 핫팩 하나씩 제공하고, 그들이 차에서 내릴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가방에 에너지바, 사과 2개, 물 3통 정도만 챙겨 넣었다. '장갑 하나 더 챙길까? 목에 두르는 건?' 내가 걱정한 건 손가락 발가락이 잘려 나갈 것 같은 추위로부터 어떻게 하면 내 말초신경을 보호하고 해동된 상태로 하산할 수 있느냐였지, 배고프다 부르짖는 어린 짐승들의 아우성이 아니었다. 게다가 아이들 데리고 산에 오르다 보면, 노키즈 존에 나타난 아이들을 보는듯한 경이로운, 때론 다정한 시선으로 아이들을 챙겨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딱히 걱정될 것도 없었다. 안녕하세요, 인사 하나면 초코바 정도는 자동 득템! (시킨 거 아닙니다) 되려 너무 많은 간식을 받아서, 주시면 주시는 대로 그 자리에서 해치우는 아이들이 신경 쓰일 정도였는데, 나는 이런 호의가 썩 나쁘지 않았다. 낯선 사람이 베푸는 정을 감사히 잘 받는 것도 교육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산에서 얻는 것이 비단 먹을 것뿐이랴. 이날 태백산에 오른 어린이라곤 우리 아이들이 유일무이해서, 스쳐 지나간 모든 어른의 관심을 받음과 동시에, "대단해!" "멋있다!" 같은 칭찬도 넘치게 받았다. 물론 내 귀에 가장 달콤하게 들렸던 칭찬은, 너희들 엄마 잘 만났다, 좋은 엄마 둔 걸 감사해라, 같은 나를 치켜세우는 말들. 이런 얘기를 들으면 어쩐지 내가 아이들을 잘 키우고 있다고 인정받는 것 같아서, 가끔은 일부러 걸음을 멈추고 뒤따라오는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우리 아이들을, 아니, 나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유치한 작전을 벌이기도 했다. '여러분! 제가 이렇게 대단한 엄마랍니다! 보이세요? 그럼 가시는 길에 칭찬 한마디 해주세요!' 하고 말이다. 그런데 실제로 이런 나와 아이들을 좋게 보시고 적극적 의사소통의 신호를 보내오는 분들이 있었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다 하더니, 두어 시간 만에 천제단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이 제단 안쪽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게 보였다. 사진 찍는 사람, 제 올리는 사람, 바람 피하는 사람(우리). 아이들에게 각자 원하는 간식을 나눠주고 나도 절하고 소원 빌려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 분이 가방에서 막걸리와 과일을 꺼내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오래 걸리시려나?' '가만…, 대표님이 제 올릴 때 투명한 병에 든 맑은 술을 준비하라고 하셨었는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는데, 괜히 아는 척하느라 옆에 있던 사람에게도 이 얘기를 떠벌리고 말았다. 삼색 과일과 가래떡을 준비하라는 세세한 설명과 함께. 그게 호기심을 자극한 건지, 아니면 그냥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밥 한 끼나 먹읍시다'하는 순수한 마음인지는 몰라도, 알고 보니 제를 올리는 분과 일행이었던 두 아저씨는 우리를 따뜻한 국물이 있는 육개장 파티에 초대해 주셨다.



"여기서 조금만 내려가면 라면 파는 곳 있어요. 라면 사줄 테니까 그리로 와요. 김밥이랑 편육 싸 온 것도 있고!"



마음은 감사하지만 제안을 넙죽 받아들일 의향은 없었다. 일단 라면을 그렇게 찾아서 먹지도 않을뿐더러, 에너지바로 곱게 단장한 위장을 어울리지 않는 면발로 혼란스럽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당골광장으로 내려가는 길목에서 자리 잡고 계시던 아저씨들은 우리 몫의 육개장을 내밀며 자리에 앉을 것을 권했고, 어쩌다 보니 라면으로 묶인 우리의 인연은 어느새 라면만 먹고 가볍게 헤어질 수 없는 사적인 선을 넘고 있었다. 화장실 가려고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사랑스러운 아드님들이 나의 신상 정보를 조잘조잘 얘기했던 것이다. "집은 익산이고요, 우리 엄마 청초 마녀(필명) 고요, 책 쓰는 작가예요."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가 아니라, 사람들은 작가라는 말을 들으면 관심을 보이지. 그랬다. 올해 나의 책이 출간될 예정이라 말하니 그분들의 관심 또한 1% 상승했고, 배려의 마음에서 출발한 호의가 연락처를 물어보기에 이르렀을 땐, 무난하고 정중한 거절을 하느라 시간을 더 소비해야 했다.



내 마음의 경계에 위배되는 행동이라고 해서 사람들의 언행을 과도하게 해석하거나,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냐고 내치는 것은 아니지만,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었다. 육개장 하나에 상대방 회사의 여직원 얘기, 사업 얘기를 담기엔 면발 익는 시간은 짧고, 먹는 시간은 더 짧으니까. 이런 게 늘 어려웠다. 적당할 때 끊을 수 있는 용기. 하지만 하산길마저 그들과 보폭을 맞추고 싶지는 않았기에, 자리를 얼추 정리하고 서둘러 빠져나왔다. "해지기 전에 내려가려면 갈 길이 멀어서 저희 먼저 갈게요." 그렇게, 육개장 한 사발 말아주신 선량한 어른으로 기억하고 싶었던 아저씨를, 결국 하산길에 다시 만날 수 있었고, 역시나 투명한 술 얘기 너머에 존재하는 '점신'을 알고 싶어 하셨지만, 그런 건 없다고 딱 잘라 얘기할 수밖에 없었다. (무속인이 알려준 게 아니라고요!)



그런데 말이다. 당골광장에 도착하면 택시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모 인터넷 카페의 정보와 국립공원 측의 안내는 허위 사실이었는지, 택시는커녕 인적마저 드문 광장을 바라보며, 내가 지금 아저씨들과 거리 두기할 때가 아니구나, 라는 판단이 들었다. 앞에는 직원분이 잘 닦아놓은 차가 탑승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었고, 내가 차를 세워놓은 곳까지 태워다 주겠다 공언하셨던 아저씨도 계셨다. 사람이 참 간사하기도 하지. 내 돈 주고 내가 택시 타더라도 신세 지지 않겠다는(귀찮은 일을 피하겠다는) 마음은 어디로 가고, 차 한 번 얻어 타려고 담배 피우는 아저씨의 말벗을 자처하고 있다니…. 뭐, 그래도 괜찮다. 다 괜찮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고 했으니, 이 정도의 변심은 귀엽게 봐주시겠거니 믿는 수밖에. 아저씨, 3천 원이나 하는 라면도 사주시고, 태워다 주기까지 하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사업 대박 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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