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에서 저녁 식사를 마칠 즈음이었다. 사시사철 티브이 소리가 흘러나오는 용인집과 달리, 우리 집엔 티브이가 나의 감시 체계와 '시청 허용 시간'이란 삼엄한 경계를 뚫고 지나가야 하는 곳에 놓여 있어서 좀처럼 보기 쉽지 않은 〈우리말 겨루기〉. 작가라는 사람이 보는 세상은 책 쓰기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지는지, 이전에는 심심풀이로 재미 삼아 보았던 프로그램이, '(아직 출간 전이지만) 나 이래 봬도 책 한 권 마무리한 작가야, 작가!'라고 정체성을 증명하려는 수단으로 둔갑해버려서, 아들에게 헛된 공약을 하기에 이르렀다.
"엄마, 저기 한번 나가볼까?'
하지만 누가 알았을까. 생활 밀착형 언어를 쓰고 지우는 작업을 반복하면서도, 그 '의미'까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단어는 드물고, 맞춤법 검사기를 수없이 돌려보면서도, 매번 틀리는 띄어쓰기는 또 틀린다는 사실을. 문제가 여럿 지나가는 동안 '어렵다아아~'만 반복하고 맞추는 문제는 하나도 없자, 결국 옆에 있던 아들의 소중한 의견 하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엄마! 그냥 나가지 마!"
순간, 아들이 그 말을 하기 전까지는 건조하고 지루했던 공간이 단숨에 '웃음이 가득한 집'으로 변해버린. 고맙다, 아들아. 너의 한 마디에 이 애미는 물론,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빵 터지게 해주어서. "그냥 서 있으면 뭐해. 나가지 마!"라는 2차 공격으로 현실 직시하게 해주어서. 그런데, 문제가 너무 어려운 거 아닌가? 존나, 존내, 조낸, 졸라. 이 말들의 어원은 무엇일까요? 이런 문제는 알 것 같기도 한데…. 아무튼, 아들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우리말 겨루기는 깔끔하게 포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