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심과 정의, 어느 쪽이 소중한가?

[마이클 샌델의 하버드 명강의 JUSTICE] 11회

by 차미레
두 개의 선이 충돌하는 순간,
도덕적 판단은 가장 깊은 물음 앞에 서게 된다.
애국심과 정의의 긴장은 바로 그 딜레마의 핵심이다.


Q1. ‘선과 선의 충돌’은 왜 정의 논쟁에서 핵심 주제인가?

A.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도덕적 딜레마는 ‘선 vs 악’의 대립처럼 보이지만,

실제 삶에서 더 고통스럽고 어려운 순간은 두 개의 선이 충돌하는 상황이다.

샌델은 이것을 도덕적 비극(moral tragedy)라고 부른다.

어떤 선택을 해도 한쪽의 중요한 가치를 포기해야 하고,

결과적으로 “완전한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애국심 역시 ‘충성’이라는 가치와 ‘정의’라는 가치가 충돌할 때

도덕적 비극을 드러낸다.



Q2. 애국심은 미덕인가, 아니면 도덕 판단을 흐리는 감정인가?

A. 샌델은 애국심을 단순한 감정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애국심이 연대·책임·공동체성 같은 중요한 도덕적 요소를 포함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점에서 애국심은 ‘미덕’의 성격을 가진다.

하지만 동시에, 애국심은 아주 쉽게 맹목적 충성으로 변할 수 있다.

특히 다음과 같은 순간에:

- 국가의 결정이 부당함에도 “국가니까 맞다”라고 여길 때

- 타국이나 타 집단에 배타적 태도를 취할 때

- 비판을 ‘비애국적’이라고 낙인찍을 때

따라서 샌델에게 애국심은 미덕일 수도, 위험일 수도 있는 양면적 감정이다.

판단 기준은 딱 하나:

그 애국심이 정의를 더 크게 만드는가, 아니면 가리는가?



Q3. 애국심과 정의가 충돌할 때,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해야 할까?

A. 이 지점에서 샌델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정의를 다시 불러온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정의는 그 공동체가 추구하는 목적(telos)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렇게 바뀐다.

- 국가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 그 목적을 실현하는 데 충성이 필요한가?

- 또는 보편적 정의가 더 상위 목적에 가까운가?

샌델은 이 질문을 회피하지 않는다.

애국심이 국가의 목적을 실현하는 데 기여한다면 미덕이지만,

그 목적을 왜곡한다면 정의보다 우선할 수 없다.



Q4. 국가가 부당할 때도 애국심을 지켜야 할까?

A. 샌델은 ‘충성’의 조건을 명확히 한다.

“정의를 훼손하는 공동체는 충성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부당한 정책이나 전쟁, 차별을 비판하는 시민은

애국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은 차원의 충성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샌델에게 진정한 애국심은

국가를 무조건 옹호하는 태도가 아니라,

국가를 더 정의롭고 책임 있게 만들려는 비판적 헌신이다.



Q5. 가족·공동체·국가에 대한 특별한 의무는 보편적 정의와 항상 충돌하는가?

A. 특별한 관계는 도덕적 삶의 필수 요소다.

하지만 이 관계적 의무는 보편적 정의의 요구와 충돌할 때가 많다.

샌델은 이 충돌을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이것이 도덕적 삶의 본질적 긴장이며, 우리가 선택할 때 남는 책임·후회·성찰이

정의 논의의 깊이를 만든다고 말한다.



애국심과 정의는 둘 중 하나를 버려야 하는 가치가 아니라,
늘 긴장 속에서 서로를 비추어보아야 하는 두 개의 선이다.



[생각해보기]

나는 ‘충성’과 ‘정의’가 충돌할 때 어떤 기준으로 판단해 왔을까?

내가 속한 공동체(가족·직장·국가)에 대한 특별한 의무는 어디까지 정당한가?

국가를 비판하는 행위는 ‘비애국적’인가, 아니면 더 깊은 애국심의 표현인가?

애국심이 정의를 가릴 때와 드러낼 때의 차이는 무엇일까?

내가 믿는 ‘국가의 목적(telos)’은 무엇인가? 그 목적은 나의 선택에 어떤 기준을 제공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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