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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메레오 Aug 07. 2023

바람피는 고독한 부자

부자가 되어도 해결할 수 없던 문제들

     칠곡에서 일을 마치고 전주로 이동하는 차 안이었다. 그 차 안에는 본청 대표님과 내가 타고 있었다. 밤 9시나 10시쯤 되었을까 싶다. 유난히 도로는 조용했고, 라디오마저 나오지 않아 정적이 흘렀다. 정적을 먼저 깬 건 본청 대표님이었다.  

   

     “태훈씨는 왜 이렇게 돈을 벌려고 노력해?”

     “그야, 자유롭잖아요? 헤헤”    

 

     나는 해맑게 대답했다. 그러자 본청 대표님은 달리는 차의 창문을 열고는 숨을 깊게 들여 마셨다. 잠깐의 정적 뒤 본청 대표님이 말을 이어갔다.   

       

     그 시점으로부터 약 5년 전, 나는 100억대의 부자 아줌마에게 부자수업을 들었던 적이 있다. 부자가 되기 위한 마음이나 방법을 배웠던 때였다. 그때도 이랬다. 지금처럼 똑같은 질문에 나의 한결같은 대답. 그 수업의 끝나갈 때쯤, 그 아줌마가 내게 했던 말이 잠시 뒤 본청 대표님이 했던 말과 정확하게 같았다. 얼마 전 ‘더 글로리’라는 드라마가 히트 쳤는데 그 드라마에서도 나온 대사였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가장 쉬운 문제야.”   

  

     그리고는 본청 대표님은 머리를 감싸시더니 마치 깨달았다는 표정을 하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세상을 다 가진 권력자처럼 힘차고 당당한 목소리로 수화기 넘어 누군가에게 말했다.

     

     “여기 전주 OO호텔인데, 12시에 아가씨 2명 맞춰줘요. 아가씨 아니면 내 많이 섭섭한 거 알제? 잘 부탁해요.”     


     전화를 끊은 본청 대표님은 전화를 끊은 후에도 뭔가 고민에 잠겨 있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쓰읍’하며 공기를 들이마시더니, 세상을 열심히 살면 살수록 외로워지는 법이라고 말했다. 오늘 같이 힘든 날은 사랑하는 사람 품에 안겨 있고 싶은 순간이라고 다 알지? 태훈씨도 불러줘? 라고 말했다.


     나는 거부감이 있던 터라 웃으며 손사래쳤다.

  

     밤 12시. 전주의 한 호텔.


     예정된 시간에 우리는 호텔에 도착했다. 본청 대표님은 서로 간 시간을 존중해주자고 말을 하면서 쿨한 만화 속 캐릭터처럼 고급스위트룸의 한 객실로 들어갔다. 나는 새벽부터 12시까지 열심히 일했기에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는 채 아침을 맞이했다.


     다음 날 아침, 본청 대표님과 약속된 시간에 만나기로 한 장소에 본청 대표님이 나오지 않았다. 나도 별달리 보채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런데 시간을 보니, 곧 퇴실 시간이 임박한 터라 나는 호텔 로비로 향했다.


     “OOO호실이요. 오버타임 될 거 같은데, 괜찮을까요?”


     정장을 입은 로비 직원은 컴퓨터를 몇 번 두드리더니, 가능하다며 내게 카드를 달라고 했다. 결제를 마치고 로비 한쪽 의자에 앉아 있다가 문득 자리가 불편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 이렇게 기다리는 것보다 그냥 해야 할 일을 하고있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상황을 보자니 먼저 간다고 전화를 하는 편도 썩 좋을 것 같지 않아 조용히 일을 하러 떠났다.


     오후 2시쯤일까? 핸드폰이 울렸다.


     “이야~ 태훈씨는 센스가 좋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단 말이지! 아 우리 회사에는 자네같은 인재가 없네. 인재가 없어~ 허허허. 많이 기다렸는가? 식사하러가시제!”


     본청 대표님에게 온 전화였다. 나는 꼭 해야할 일이 있어, 실례스럽게도 먼저 나왔다고 얘기했다. 그날 나는 운전하는 차 안에서 큰 고뇌를 했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가장 쉬운 문제일까?’ 하는 생각이었다. 나는 그 후로도 그런 생각을 꾀 자주 해왔던 것 같다.


     그로부터 2년 후, 나는 내가 원하는 자동차를 타고 다니고, 원하는 집도 사게 되었다. 부족하지 않을 만큼 벌게 되었고, 어느 정도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생겼다. 어느 정도 준비가 끝나면 지금 만나는 사람에게 청혼해야겠다 싶었는데, 30대의 시작은 그리 순탄치는 않았다. 다시 떠오르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가장 쉬운 문제였다는 걸 느끼게 된 것이 30대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내가 원하는 바를 어느 정도 이뤄냈을 때 나는 알았다.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의 크기는 정말 다르다는 것을. 그 깨달음은 내게 생긴 3가지의 사건으로 인해 알게 되었다.


     첫째로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 기다리고 있었다. 내 마음은 변하지 않았지만, 더 많은 사람을 만나보고 싶어서 바람핀 그 사람의 마음을 나는 어찌할 수 없었다. 더 노력했다면, 됐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다.


     둘째로는 부모님의 건강 악화가 기다리고 있었다. 암 수술을 해야했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의사의 오진으로 수술이 잘못되게 되었다. 그리고 차선책으로 항암치료를 이어가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이 문제 또한 돈으로 해결할 수 없었고, 나의 노력과는 무관한 문제였다.


     셋째는 거래처, 의리의 배신이 기다리고 있었다. 입금하기로 한 날짜에 입금은 되지 않았고 부도처리에 도산까지 당하면서 받아야 할 돈을 받지 못했다. 분명 노력은 죽어라고 했는데, 노련함이 부족해서였을지는 몰라도 그 문제 또한 돈이나 노력으로 해결하기엔 어려웠다.


     아아, 마지막으로 하나 더 있다면 개인적인 건강 악화가 있었다. 하얗게 불태운 나의 몸은 더 이상 업무를 견뎌내지 못했고, 나는 피똥을 싸고 빈혈로 쓰러져서는 응급실에서 눈을 떴다. 이 모든 일이 연달아서 터진 건 1개월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 모든 문제가 단순히 돈이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나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자기 배우자와 크게 다투었다는 것이다. 최근에 자신이 벌어오는 돈에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투덜거리는 배우자가 너무 미워서, 너 같은 애랑은 못 살겠다고 막말을 쏟아부었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외람되게도 나는 그때가 되어 알았다. 돈이 문제인 것은 문제가 정확히 보이고, 명확한 목표가 보이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는 모든 것이 불확실해서 훨씬 더 어려운 일이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집으로 돌아가기 싫은 마음이 왜 생기는지, 허공에 몸을 맡기고 싶다는 마음이 왜 드는 건지 알게 되었고, 그런 행동을 실천하는 것은 그다지 큰 힘이 들지 않겠다는 것도 본능적으로 알아가고 있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는 어느 날 밤이었다.


     창백한 푸른 점이라고 아는가?


     지면으로부터 61억 킬로미터를 떠난 인공위성 보이져 1호가 있었다. 보이져 1호는 우주를 탐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인공위성이어서 수명이 다 되는 순간까지 우주 바깥을 봐야한다. 그런데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라는 사람이 갑자기 이런 의견을 낸 것이다. 보이져 1호의 마지막 순간에 고개를 돌려 지구를 찍자고. 인공위성의 궤도, 고개를 한 번 돌리는 비용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제안이었지만, 위대한 천문학자 칼세이건은 그대로 보이져 1호의 머리를 돌려 지구를 찍었다. 그리고 그 사진에 이름을 붙이길, 창백한 푸른 점이었다.


     훗날 칼 세이건은 이렇게 말했다.


     “지구는 이 광활한 우주에 떠 있는 보잘 것 없는 작은 존재에 불과함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라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지구에서 서로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내세우며 우쭐하지도 더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서 남을 죽이거나 해하는 일도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일인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창백한 푸른점이라는 사진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줬다.


     창백한 푸른점을 다음으로 나는 에리히 프롬이 적은 책을 보았다. 그 책의 내용은 사랑에 대한 내용이었다.


     인간은 원래 고독한 존재이며, 평생 고독을 안고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운명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하는 책이었다. 그래서 이러한 고독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진실된 사랑이 전부임을 말하는 책이었다. 나는 그때, 탕! 하고 무언가에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30대는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목표가 생기기 시작했다.


    20대 때, 나는 대학교에 입학하고 ‘돌아가고 싶은 10대, 후회 없는 20대’라는 책을 적었던 적이 있다. 그 책은 남들의 눈치만 보며, 대단한 사람이 되려고 했던 10대를 후회하며, 20대에는 어떻게 살고 싶다고 다짐하는 책이었다. 원하는 곳, 원하는 물건, 원하는 경제력을 하나씩 적어간 책이었다.


     10년이 지나 그 책을 꺼내 보면, 정말 책대로 살아 온 것 같다. 그 책을 적을 당시까지만 해도 나는 뜬구름이나 잡는 사문철(사회학, 문학, 철학)이라 삿대질 받았다. 그 책을 쓰는 시간에 자격증 하나를 더 따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라는 주변의 삿대질이 많았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확실하게 보이는 것은 남들에게 정확히 측정되는 사람이 되려 했다면, 지금 이룬 모든 것들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따지고 보면 나에게 삿대질하던 사람들은 나보다 훨씬 경제적으로도 실패했다. 그리고 이번에 난 다시 그 사람들을 만났을 때, 삶에서 정말 중요한 문제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들은 나에게 손가락질 했다.


     하지만 그들은 잘 모르고 있다. 돈을 벌고 집에 돌아왔을 때, 가족이 반기지 않는 것은 적게 벌어왔기 때문이 아니라, 가족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 없어서임을 모르고 있다. 가부장적인 태도로 꼰대 짓을 가족에게 서섬치 않으면서 가족이 자신을 반겨주길 원한다면, 아무리 부자가 되어도 본청 대표님처럼 고독한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돈이 반겨지는 사람이 아니고 사람이 반겨지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 창백한 푸른점에 존재하는 인간들의 진정한 문제다.


     그래서 이번에는 반겨지는 사람이 되고, 또 필요한 사람이 되고, 사랑을 나눠주는 사람이 되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할 것이다. 30대, 40대, 50대에 걸쳐, 과거로 다시는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잘 살기 위한 내용을 준비했다.


     100억을 가진 부자아줌마는 말했다. 기본만 지키면 알아서 돈은 따라오게 되어있다고. 그러나 마음의 중심을 찾는 일은 준비가 되지 않으면, 모든 것을 잃게 한다고 말했다. 만약 내가 이 말을 그때 흘려듣지 않았다면, 분명 정신도 더 튼튼하고 풍요로운 삶을 맞이했을 것이다. 내게 준비되지 않았던 것은, 넓고도 맑은 마음과 사랑이었다. 그래서 이 책은 내가 더욱 반겨지는 사람이 되고, 또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 어떻게 사랑을 나눠주는 사람이 되면 좋을지, 또 그러한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의 엄청난 격차에 대해서 다루어보았다. 그럼 본청 대표님의 이야기로 다시 이야기를 이어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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