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꿈이 있었다. 콘크리트로 둘러싸여 외부와 단절된 아파트 말고, 하늘과 바람과 비와 햇살을 지척에서 만날 수 있는 자연을 향해 열려있는 집,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에 나오는 자연의 일부가 된 오두막과 '타샤 튜더'의 소박하고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서울도 아닌 인천에 분양하는 아파트 한 채도 대출 없이 사기 힘들었다.
이사할 집을 알아보던 중 청라에 단독주택 용지를 분양한다는 말을 듣고 구경이나 해보자며 시큰둥한 남편을 졸랐다. 100평 남짓한 땅을 구획해서 단독주택을 지을 수 있게 조성된 부지였는데 당시 그 돈이면 아파트 한채를 살 수 있었으니 당장 들어가 살 집값도 부족한 나에게 그림의 떡이었다. 남들이 다 그렇듯 신축 아파트를 사서 이사를 했다. 나의 꿈은 그렇게 꿈틀거리다 조용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2020년 코로나가 창궐하고 사람들의 삶이 달라졌다. 너도나도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마스크를 쓰고 한산하다 못해 스산한 거리를 지나 서둘러 안전한 집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불편하고 낯설었지만, 어느새 사람들은 삶의 방식을 바꿨고 금세 익숙해졌다. 코로나가 우리에게서 많은 것을 가져갔지만 의도하지 않게 되돌려준 것도 있었다. 집에 고립되고,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밖에서 놀거리를 찾던 사람들이 집에서 혼자 또는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집은 이제 숙식을 해결하는 곳이 아니라 일상을 즐기는 공간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사람들로 북적이는 도시보다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교외에 집을 마련하거나 '5도 2촌'(5일은 도시에 2일은 시골에 사는 생활 방식) 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5도 2촌' 그 말을 듣고 내 꿈은 다시 꿈틀대기 시작했다. 도시에 땅을 사서 주택을 마련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저렴한 시골 땅을 사는 것은 가능할 것도 같았다. 위치는 어디가 좋을까? 집에서 가까운 김포, 파주, 강화가 떠올랐는데 김포는 가격이 이미 많이 올랐고 파주는 좀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화는 가깝고, 바다도 있고 산도 있어 자연경관이 좋았다. 무엇보다 수요가 있어 매물이 많았다. 공인중개업체가 운영하는 유튜브에는 실시간으로 매물이 끊임없이 올라왔고, 마음에 드는 매물은 농지, 대지, 임야를 가리지 않고 저장해두었다가 주말이면 임장을 갔다. 2년 정도 다니다 보니 업체가 알려준 대략의 위치와 동영상만 봐도 네이버 지도, 토지 이음 등 지도 앱을 이용해 매물의 번지를 찾아낼 수 있었다.
코로나가 끝나가 '5도 2촌'도 시들해지고 농막 규제 등 상황이 좋지 않아 땅값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기회다 싶어 저렴한 땅을 찾아다녔다. 평소 잘 다니지 않던 지역에 대지로 지목 변경된 100평 정도의 땅이 저렴하게 올라왔다. 인연이 닿았는지 주말이라 바로 임장할 수 있었다.
가을이었다. 추수를 마친 들녘이 나지막한 산등성이를 병풍 삼아 펼쳐져 있고,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위로 쇠기러기 떼가 V자인지 Y자인지를 그리며 머리 위로 수도 없이 날아왔다가 사라졌다. 분양하는 6개 필지 중 우리가 계약한 땅은 30미터도 족히 되어 보이는 늘씬한 소나무들이 바람에 몸을 맡기고 살랑살랑 춤을 추는 야산을 등에 지고, 앞으로는 너른 들판이 내려다보이는 그런 곳이었다.
요즘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세컨하우스가 있다고 하면 열에 여섯은 "와! 부자시네요." 한다. 그러면 나는 돈 빌려달라는 것도 아닌데 손사레를 치며 "다 빚으로 지었어요. 제가 미쳤지요." 한다. 진짜 남는 돈이 있어 세컨하우스를 짓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설령 남는 돈이 있어도 꿈꾸지 않는 사람은 절대 투자가치 없는 것에 돈을 쓰지 않는다. 어떤 이는 시골에 집 지었다가 되팔고 돌아온 지인 이야기를 들려주며 주변머리 없는 나를 꾸짖기도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 않다. 나를 위해, 내 꿈을 위해 생애 처음으로 가성비 따지지 않고 무용한 것을 선택했다. 이런 내가 대견해서 자다가도 웃음이 난다.
26살 어린 나이에 첫사랑과 결혼해 연년생 남매와 3살 터울의 막내까지 세 아이를 키우며 같은 직장에 27년을 다녔다. 남들보다 뒤떨어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시간을 저당 잡힌 사람처럼 바쁘게 살았다. 그런데도 말단공무원인 나와 남편의 급여통장은 비는 날이 많았다. 물건을 살 때도 여행을 갈 때도 하물며 집을 살 때도 가장 저렴하고 가성비 있는 것을 찾았고, 손해보지 않기 위해 때로는 날 선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서 '김희성(변요한 분)'이 "나는 원체 아름답고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오. 달, 별, 꽃, 바람, 웃음, 농담, 그런 것들..." 이라며 웃는 모습을 보고 나도 그렇게 살고 싶었다. '5도 2촌'의 꿈을 이룬 지금, 적어도 그곳에 가면 무용한 꽃을 가꾸며 대가 없이 주기만 하는 자연을 마주한다. 이른 아침 숲속을 독차지하고 지저귀는 새들이 인기척에 달아나지 않도록 숨을 죽이고, 건물 벽에 네 다리를 착 붙이고 앉은 청개구리들이 놀라지 않도록 조심조심 문을 닫는다. 나는 그렇게 조금씩 자연의 일부가 되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