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은 해결이 아니라 흡수다.”
회의가 깨질 것 같으면 내가 먼저 웃고, 내가 먼저 사과하고, 내가 먼저 정리한다.
문제는 그대로인데, 나는 점점 얇아진다.
대처: “이건 이슈입니다”라고 말하고, 사람 대신 문서에 올려놓기.
“내가 하면 빠르다. 그래서 내가 한다.”
처음엔 효율이었다가, 어느 날부터는 기본값이 된다.
결국 ‘빠른 사람’이 아니라 ‘남는 사람’이 된다.
대처: “제가 할 수 있는 건 2개까지만”을 기본 문장으로.
“결과물보다 관계를 먼저 살린다.”
시안이 엉망이어도, 먼저 사과하고 기분부터 맞춘다.
그 다음부터 기준은 사라지고, 감정만 남는다.
대처: 감정 얘기 나오면 “다음 액션 1개”로 강제 착지.
“무례를 요구사항으로 번역한다.”
욕을 들으면 ‘내가 더 잘하면 되지’로 바꾼다.
그러면 무례는 사라지지 않고, 시스템이 된다.
대처: “원하는 기준을 문장으로 주세요”라고 되묻기.
“없는 사람도 있는 걸로 친다.”
인력이 없으면 일이 줄어야 하는데, 이상하게 일정만 늘어난다.
그래서 나는 없는 인력을 상상하며 계획을 짠다.
대처: 계획서에 ‘미확보 리스크’ 칸을 공개로 넣기.
“불안해야 움직인다.”
불안이 내 엔진이 된다.
문제는 엔진이 꺼지면 삶도 멈춘다는 것.
대처: 불안 없는 날에도 가능한 ‘10분 루틴’만 남기기.
처음엔 무작정 좋다가 시간이 지나면 무덤덤해진다.
연락이 안 되면 불안해진다.
손에서 놓으면 일이 멈춘다.
배터리가 닳을수록 성격이 나빠진다.
기능이 많을수록 쓸 사람만 쓴다.
잘 돌아가면 당연하고, 한 번 멈추면 난리 난다.
화면이 깨져도 일단 쓰게 된다.
최신형이 나와도 당장 바꾸진 못한다.
“너 없으면 안 돼”라는 말을 가장 자주 듣는다.
과하게 쓰면 발열이 올라간다.
조용하면 불길하다.
결국 바뀌는 건 기계가 아니라, 쓰는 사람의 수면이다.
처음엔 설레서 밤을 새운다.
초반엔 상대의 장점만 보인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건 왜 이래?”가 늘어난다.
결국 핵심은 디테일인데, 디테일 때문에 싸운다.
상대는 “감동”을 원하고 나는 “논리”를 준비한다.
잘 되면 서로 덕을 보지만, 안 되면 내 자존감만 깎인다.
“딱 하나만 더”가 나오면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마지막엔 “우리 내부에서 심도 깊게 논의했는데…” 같은 문장이 온다.
그 문장을 읽고도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었는데”를 생각한다.
헤어지고 나면, 제일 기억나는 건 단점이 아니라 내가 했던 노력이다.
구멍이 많을수록 일이 몰린다.
원래는 분배하려고 존재한다.
근데 결국 한 쪽에 다 꽂힌다.
과부하가 와도 불꽃이 튀기 전까진 티가 안 난다.
“너 아니면 안 돼”는 칭찬이 아니라 연결 요청이다.
누가 뽑아가면 그때서야 다들 난리 난다.
불안할 때는 더 많은 걸 꽂는다.
그리고 멀티탭이 아니라 사람이 탄다.
교체는 쉽지만, 정리는 아무도 안 한다.
멀쩡해 보일수록 안쪽은 뜨겁다.
설명은 못 하지만 체감은 된다.
흐리면 다들 말이 짧아진다.
맑으면 모든 게 해결된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내일 다시 변한다.
예보를 믿으면 큰일 난다.
준비가 아닌 운을 요구한다.
우산이 있어도 비는 맞는다.
결국 중요한 건 날씨가 아니라 옷이다.
그리고 젖는 건 늘 같은 사람이다.
제출하기 전엔 늘 미완성처럼 보인다.
제출하고 나면 오탈자만 보인다.
열심히 한 부분보다 틀린 부분만 피드백받는다.
“왜 이렇게 했어요?”는 늘 나중에 온다.
기준은 공개되지 않고, 결과로만 알려준다.
빨리 내면 대충한 것 같고, 늦게 내면 늦은 게 된다.
결국 중요한 건 정답이 아니라 ‘채점자 취향’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점점 안전한 답을 쓴다.
안전해질수록 재미는 줄어든다.
그래도 점수는 반드시 필요하다.
나올 땐 해방감인데, 밤이 되면 불안해진다.
버릴 게 많다는 걸 그때 알게 된다.
버리는 게 아니라 ‘정리’라고 부르고 싶어진다.
상자에 넣을수록 내 물건이 아니라 내 과거가 된다.
주소는 바뀌는데 습관은 따라온다.
다음 집을 찾는 동안 제일 무서운 건 공백이다.
근데 공백이 있어야 새 가구가 들어온다.
결국 남는 건 공간이 아니라 내가 고른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