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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하는 달라 Apr 04. 2024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그럼에도 선생님


'둘, 넷, 여섯, 여덟, 열…… 남학생 열한 명 중에 한 명 빠졌으니 열 명이 맞고, 둘, 넷, 여섯, 여덟…… 여학생 열 명 중에 두 명 빠졌으니 여덟이 맞고…….'


들떠서 삐뚤빼뚤 줄지어 이야기를 나누는 아이들의 머릿 수를 세며 속으로 오늘의 학생 수를 읊조렸다. 큰 소리로 아이들에게도 상황을 이야기했다.


"얘들아, 오늘은 남학생 열 명, 여학생 여덟 명이야. 서로 챙기자."


"네!"


"그럼, 버스에 타 볼까? 남학생부터 먼저 올라오고 선생님이 지정해 주는 자리에 앉으면 됩니다."


하나 둘 버스로 올라오는 아이들을 순서대로 자리에 앉히기 시작했다.


"맨 앞자리는 위험하니까, 두 번째 줄부터 앉자."


두 명씩 짝을 지어 자리를 정해 주는데, 남학생 한 명이 짝이 없다.


"어? 왜 한 명이 없니?"


순간 등골이 오싹하며 없는 아이를 찾느라 눈이 바쁘게 움직였다.


"얘들아, 세모 어디 갔니? 나올 때 있었는데?!"


세모는 도움반 학생으로 돌발 행동이 있어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 아이가 보이지 않으니 또 가슴이 철렁했다.


"세모는 맨 앞자리에 앉았어요."


한 아이의 대답에 고개를 돌리고 보니, 세모가 당당하게 앞자리에 앉아 안전벨트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휴…….'


한숨을 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세모에게 다가가 옆자리에 앉으며 한마디 했다.


"세모야, 밖에 나왔을 때는 말없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안 돼. 선생님이 놀라잖아. 미리 말해 줘."


"네"


세모가 금방 수긍하고 대답했다.



3학년 아이들을 데리고 학교 밖으로 나가는 첫 번째 날이다. 오전 중에 가까운 거리의 수영장에 다녀오는 비교적 가벼운 일정이지만, 대형 버스를 타고 20분은 가야 했기에 긴장감이 몰려왔다. 교실이라는 닫힌 공간과 달리 학교 밖의 열린 공간에서는 아이들이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에 예측 불가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이들의 머릿 수를 셀 수밖에 없는 특별한 경험이 있다.



교직생활 10년 차에 맡은 6학년 학생들과 수학여행을 갔을 때 일이다. 2박 3일의 수학여행은 시작부터 긴장의 연속이었다. 출발 시간에 늦지 않게 버스 탑승 시키기, 휴게소에서 내릴 때 교통안에 주의 주기, 체험 활동 중 아이들 챙기기, 숙소 생활 지도 등 교사 입장에서는 말로 다할 수 없는 극기 훈련의 시간이다. 혹시라도 문제가 생길까, 아픈 학생이 생길까 노심초사하며 이틀 밤을 보내다 보면 마지막 날은 정신이 멍해지기도 한다. 그 사건도 이틀간의 여행을 잘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발생했다. 마지막으로 들린 휴게소에서 몇 명의 학생이 화장실에 가겠다고 버스에서 내렸다. 약속된 시간이 지나고 자리를 쓱 돌아보고는 '전원 탑승 완료'라고 판단한 나는 기사님께 출발해 줄 것을 부탁했다. 버스가 휴게소 출구를 빠져나와 고속도로에 진입했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


"선생님! 저희  안 탔어요!"


여학생 맨 뒷자리에 앉았던 두 명이 버스에 타지 않았던 것이다. 


"기사님! 멈춰주세요!"


급하게 차를 세우고, 아이들과 통화를 했다.


"일단 주변에 어른이 있는가 보고 선생님 좀 바꿔줘."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상황을 수습하려 노력했다. 다행히 옆에 있던 마음 좋은 어른께서 아이들을 우리 차가 있는 곳까지 태워주셨다. 버스에 다시 올라탄 아이들을 보며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이틀간 힘들었던 시간은 잘 이끌어놓고 마지막에 이런 실수를 하다니. 아이들을 나무랄 수 없었다. 확인을 철저히 하지 않은 나의 잘못이었다. 버스가 사라진 것을 안 아이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오히려 당황하지 않고 빨리 전화를 해서 상황을 수습한 아이들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학교에 도착해 아이들을 보내놓고, 부모님과도 통화를 했다. 지금 같으면 내가 부모님께 백번 사죄해야 할 사건인데, 그 당시 부모님께서는 오히려 내 걱정을 해주셨다. 어른의 마음으로 이해해 주신 부모님이 계셨기에 지금은 글로 남기는 이야기가 되었지만, 그때의 기억은 나태해진 나에게 큰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그 후 나는 교실에서도, 이동하다 복도에서도, 야외 활동 중에도 자주 아이들의 숫자를 세는 버릇이 생겼다.



오늘은 열여덟 명의 올망졸망한 3학년 아이들을 이끌고 수영장에 다녀오는 일정이니 어찌 보면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긴장감을 늦출 수 없다. 버스에서 내려 다시 줄을 세우고 머릿 수를 세고, 수영장으로 이동해 다시 확인하기를 반복했다. 탈의실에 들여보내 놓고 수영복을 갈아입고 입장하는 아이들을 보며 다시 머릿수를 세었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상황에 대비해 양말을 벗고 바지를 걷어올린 채 생존 수영교육을 참관했다. 수영 강사님의 말씀에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눈빛으로 레이저를 쏘며 두 시간여를 지켜보니 금세 교육이 끝났다. 아이들이 샤워를 마치고 하나 둘 나오기 시작했다. 머리를 말리고, 수영복 주인을 찾아주고, 물 마시겠다는 아이와 화장실 다녀오겠다는 아이들을 챙기는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니 다시 정신이 혼미해졌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정신을 차려야 한다. 정리를 마친 아이들을 수영장 입구에 줄 세워 두고 빠진 학생이 없는지 다시 확인했다. 이제 돌아가는 버스에 오를 시간이다. 버스까지 이동하면서도 나는 뒤로 걸었다. 아이들이 잘 따라오는지 수시로 살펴야 했다. 버스 탑승이 시작되었다. 역시나 남학생 한 명이 비었다. 세모는 올 때와 마찬가지로 친구 짝꿍 대신 내 짝이 되는 것을 선택했다. 학교에 도착하니 다른 학년은 배식을 마치고 운동장에 나와 놀고 있었다. 아이들과 교실로 이동해 빠르게 준비하고 배식을 마쳤다. 마지막으로 내 식판에 음식을 담으며 그제야 숨이 쉬어졌다. 


"휴, 이제야 끝났네. 다행이다."


© notethanun,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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