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즐겨 보는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매주 금요일 밤, JTBC에서 방영하는 '연애남매'이다. 어디서 저런 선남선녀를 찾았을까. 감탄이 나오는 젊은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설렘과 낭만 가득한 시간을 만들어간다. 스펙도 좋고 모습도 화려한 그들이 마냥 예쁘고 때로는 질투가 나기도 한다. 방송에서 보이는 환한 모습의 그들을 봄에 활짝 핀 꽃처럼 감상했다.
하지만, 지난 토요일 방송을 보며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라는 정현종의 시구가 떠올랐다. 이번에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그들의 삶이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엉뚱하고 맑은 모습으로 보는 사람을 웃음 짓게 했던 재형, 세승 남매에게도 어머니의 암 투병이라는 커다란 고비가 있었다. 매력적인 세승의 초승달 눈이 웃음으로만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알았다. 혹독했던 사춘기와 함께 사라져버린 상냥함을 후회하는 재형에게서 내면의 고뇌를 읽을 수 있었다.
일찍 해외 유학을 떠나 차갑고 도도한 도시 여자의 이미지로 무장한 지연에게도 버텨야만 했던 시간이 있었다. 자녀들의 유학 자금을 위해 밤낮없이 일하면서 암을 얻게 된 어머니는 '자식을 치열하게 살아온 것을 자부심으로 여겼는데, 나의 병으로 자녀들에게 상처를 주었다'라며 힘들어하셨다. 아이들의 성장기를 함께 보내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를 쏟아내실 때는 애끓는 모정에 같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이야기를 듣고 보니 지원을 둘러싸고 있는 단단한 껍질 안의 속 깊은 그녀가 보였고 내 눈이 선명해지는 느낌이었다.
아픔을 공유한 출연자들은 서로를 위로하며 이제는 가족이나 다름없는 사이가 되었다고 말한다.
요즘 주말을 TV 앞에 묶어놓는 드라마가 있다. 일요일에 방송된 '눈물의 여왕' 12화에서도 아픔을 공유하며 서로를 이해하는 모습을 보았다. 용두리에서 지내고 있는 고모 범자(김정난 분)는 치매 어머니를 찾는 영송(김영민 분)을 도와준다. 평상에 앉아 있던 범자는 어머니 잠자리를 돌보고 나온 영송에게 아픈 아버지를 뵙지도 못하고 후회만 남은 아버지와의 관계를 한탄하며 눈물 흘린다. 이에 영송은 자신과 어머니와의 관계를 고백한다. 어릴 적 저를 버리고 집을 나간 어머니를 치매에 걸린 후에야 요양원에서 모셔와 돌보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러며 범자를 위로한다.
"인생엔 각자 안고가야하는 돌멩이들이 있는거죠. 세상 편해보이는 사람들 주머니에도 자기만의 무거운 돌멩이가 있는겁니다. 그러니까 누구 부러워할 것도 없구요. 또 너무 자책할 필요도 없어요. 아버님도 그쪽 마음 아실겁니다."
그제야 농사일도 마다하고 한량처럼 집에서 시간을 보내던 영송의 속 깊음이 보인다. 영송을 바라보는 범자의 눈빛이 깊어졌다.
'옥중 서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신영복 선생님은 '불행은 불행끼리 위로가 된다'라는 말을 했다. 각 동의 장기수, 사형수들과 인사를 나누며 각자의 아픔에서 위로를 받는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인다면 '누가누가 더 불행한가' 이야기 배틀이 벌어질지 모른다. 털어놓으면 그것만으로도 후련하지만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슬픔을 덜어낸 자리에 안도가 자리한다. 결국은 '그래도 잘 버티고 있잖아. 같이 힘을 냅시다'하며 서로의 어깨를 두드릴 것이다.
각자의 때와 상황에 따라 고통의 경중이 다를 뿐, 삶의 무게는 누구에게나 무겁게 느껴진다. 청소년들도 그들 나름대로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힘겹고, 독립된 삶을 만들어야 하는 성인들도 버티고 이겨내는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 조금은 편안해질 줄 알았는데, 마르지 않는 샘처럼 솟아나는 걱정거리들에 '삶은 고통의 연속'이라는 쇼펜하우어의 말이 이해되고 말았다. 하지만, 감옥에서조차 서로의 불행에서 위로를 찾고 있지 않은가. 자유롭게 움직이고 생각할 수 있는 우리도 충분히 서로를 위로하고 북돋을 수 있다.
그 시작은 '소통'이다.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부끄러운 이야기일 수 있고 상대의 반응이 두렵기도 하지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의외로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이미 더한 상황을 이겨낸 사람도 쉽게 만나게 된다. 그들의 경험을 통해 희망을 얻을 수 있고 삶에 대한 불씨도 다시 태울 수 있다. 불행을 보며 희망을 생각한다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불행을 공유한 인간관계는 돈독함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