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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하는 달라 Feb 26. 2024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시작이 두려운 당신에게


첫 학교는 걸어서 20분 거리였다. 2월 말, 발령장을 들고 교장 선생님을 만났다. 인자한 미소로 반겨주시며 5학년 담임이라는 역할을 주셨다. ‘알겠습니다’하고 고개를 조아리고 교장실을 나왔다. 그렇게 띠동갑 아이들의 담임이 되었다.


아이들을 만나는 첫날. 설렘 같은 것은 없었다. 내일을 위해 빼곡히 수업내용을 준비했지만 마음은 초조했다. 입으로 중얼거리며 시뮬레이션을 했다. 혹시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어떡하나 두려움에 떨다 보니 충혈된 눈으로 출근을 했다.


한기가 가시지 않은 교실처럼 우리의 만남도 차가웠다. 긴장한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 말투는 더 딱딱해졌다. 첫날이니 소개하는 시간도 가지고, 규칙도 정했다. 교실을 꾸밀 것도 만들었지만, 시간은 참 더디 흘렀다. 아이들보다 내가 더 시계를 자주 보았다. 겨우 4교시를 끝내고 아이들을 보낸 후 녹초가 되어 한숨을 쉬었다. 하루가 무사히 지나간 것에 감사했지만,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매일 진한 화장과 정장으로 무장을 하고 교실로 향했다. 하지만, 나의 허술함은 금방 들통나고 말았다. 교실은 이내 혼란에 빠졌다. 가장 큰 문제는 꼼꼼하게 체크하지 못하는 데 있었다. 숙제를 해오지 않은 학생에게 ‘남아서 쓰고 가!’라고 으름장을 놓지만, 수업이 끝나고 나면 아이는 도망가고 나는 까맣게 잊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다음 날 아이를 만나 꾸중을 해보지만 효과는 없었다.


앞뒤를 재지 못하는 의욕도 문제였다. 주 2회 일기 쓰기를 했다. 월요일과 목요일이 검사하는 날이었다. 글을 써오는 아이들보다 검사하는 내가 더 힘들었다. 아이들이 가고 나면 다음 날 교재 연구도 하기 바쁜데, 참 교사 흉내로 하나하나 답을 달아주다 보니 검사를 못하는 날도 생겼다. 점점 기운을 잃어가는 댓글에 아이들의 글도 짧아졌다.


요령 없이 몸으로 해결하려니 운동장에 나가는 것도 힘들었다. 호기롭게 ‘앞으로 나란히!’를 외쳐보지만 앞의 몇 명만 시늉을 할 뿐이었다. 장난치는 아이들에게 다가가 한 명씩 간격을 넓혀 줄을 세우면 앞쪽 줄이 다시 엉망이 되었다. 키도 작아 아이들 틈에 들어가면 보이지 않으니 옆에서 지켜보시는 선생님들이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 외에도 업무라는 큰 산이 있었다. 내게 배정된 업무는 진로교육과 학부모회였다. 참고 자료로 받은 것은 작년 공문이 묶여있는 노란 파일 두 권이 다였다. 전임자로부터 인수인계는 받았지만, 계획서를 작성하는 법도 공문을 보내는 법도 배운 적이 없는 나에게는 시작부터가 난관이었다. 당장 학부모 총회가 3월인데 진척이 없는 것을 아시고 교감 선생님께서 부르셨다.


“선생님, 학부모회 업무가 버거운 것 같으니 6학년 3반 선생님께 넘기세요. 내가 말해 두었으니 작년 자료 가져다드리면 됩니다.”


허우적대고 있던 나는 염치도 챙길 줄 몰랐다. 그저 얌전히 ‘알겠습니다’ 대답하고 교실로 올라왔다. 같은 층을 사용하고 있는 6학년 3반으로 향했다. 선생님께서는 문도 열어놓은 채 컴퓨터 앞에 앉아 바쁘게 업무를 보고 계셨다. 허리가 절로 숙여졌다.


“선생님, 교감 선생님께서 자료를 전달해 드리라고 해서 가지고 왔습니다.”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선생님께서 손은 그대로 움직이며 나를 흘끗 쳐다보았다.


"어휴, 거기에 놓고 가세요.”


차가운 말투가 마음에 꽂혔지만, 홀가분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임용고시를 합격하면 저절로 교사가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과 달랐다. 27명 아이들에게는 구멍 많은 선생님이었고, 동료 교사에게는 한 사람 몫을 하지 못하는 손 많이 가는 신규였다. 그야말로 민폐였다.


어느덧 지나온 시간보다 남은 시간이 짧을 만큼의 경력이 쌓였다. 그 시절 이야기는 같은 학교에 근무했던 남편과의 술자리 안주가 되었다.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던 초임 시절은 어쩌면 나에게는 첫 번째 좌절이었던 것 같다. 다행히 좋은 선배님과 동료들을 만나 아이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법을 배우고 익힐 수 있었다. 이제는 과하게 과제를 내서 서로를 괴롭히거나 댓글로 힘을 빼지 않는다. ‘줄 서자’ 한 마디 해 놓고 여우 부리는 아이들을 보며 웃음 짓기도 한다. 한 사람 몫은 당연히 해내는 선배 교사가 되었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처음은 어려운 것이 당연하다. 실수와 좌절의 시간이 켜켜이 쌓이면 지식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몸의 노하우를 터득할 수 있다. 술통에서 오랜 시간 숙성시켜야 맛과 향이 더해지듯 아이들과 함께하는 우리의 시간도 그렇게 익어간다. 그러니 두려워할 필요 없다고, 당신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 dbmartin00,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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